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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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일까요?
  • 강은주 데보라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 승인 2014.07.31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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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합니다

장애인이라면 시설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고 고마워해야 할까요? ‘그런 시설이 있는 게 어디냐’라는 생각이 든다면 장애인과 복지정책에 대해서 나도 시혜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게 아닌지 반문해봐야 합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게 전부라면 다같이 시설에 들어가서 살겠지만, 우리는 사회 안에서 아귀다툼하며 살아갑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대다수의 사람은 진흙밭 같은 세속의 사회에서 섞여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회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 일정 중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애인 시설인 꽃동네에 방문하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장애인권단체들에서는 지속적으로 기자회견, 교황님께 편지 보내기, 분홍종이배 접기 등을 통해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꽃동네 방문반대 첫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들, 특히 꽃동네에서 장기간 살다가 현재는 그룹홈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발언은 놀랍고 가슴 아팠습니다. 그들은 꽃동네에서 자립생활을 위한 훈련이나 정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꼭 자립생활을 위해서가 아닌, 어디에서 살든 사회적 존재인 사람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도 없었습니다. 꽃동네에서 한글조차도 배우지 못했고, 자립생활에 대해 물어봤을 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또 꽃동네에 봉사자나 방문자들이 와서 장애인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장애인 자신에게는 동물원의 동물처럼 보여지는 것 같아 싫었다고 했습니다.

 

자립생활을 위한 훈련이나, 한글교육과 같은 최소한의 교육도 없었던

그저 ‘수용시설’ 꽃동네

 

또 꽃동네에서 살다가 나온 이들 말고도, 정말 긴 시간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애써온 장애인들에게도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은 절망으로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광화문 농성장은 지난 4월 600일을 지나 이제 700일이 되어 갑니다. 광화문 지하철역 안의 농성장에서 추위와 더위, 사람들의 무관심과 싸워가며 지내왔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이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대표인 박경석 교장은 “그동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행보를 보면서 천주교신자가 아니어도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을 존경한다”면서, “그러나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을 벗어나 살아가는 탈시설을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는데,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 단 한 번만으로 장애인의 시설생활과, 비리로 점철된 꽃동네라는 대형시설의 존재를 용인해주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절망스럽고 허탈하다”고 했습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광화문 농성장에 가끔이라도 들르지 못했던 것을 마음의 짐처럼 갖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오랫동안 싸워온 이들의 무너지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가슴 아팠습니다.

 

장애인권단체들을 비롯한 여러 인권단체들이 함께 바라는 것은 장애인들의 탈시설 자립생활입니다. 자립생활이 가능하려면 더 많은 그룹홈과 활동보조인 서비스 등이 확충되어야 합니다. 장애의 정도에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차등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재의 장애등급제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그마저도 장애등급을 잘못 판정해서 필요한 활동보조서비스를 제대로 못받은 송국현 씨가 지난 4월 화재로 고통스럽게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송국현 씨를 비롯해 장애등급제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세상을 떠난 장애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광화문 농성장 한편의 벽에 빼곡이 놓인 영정사진 속에 있습니다. 또 장애인들을 위한 일자리가 여전히 많지 않아 수입이 적거나 없어서 복지제도를 통해 수급 받으려고 해도 부양의무제 때문에 자신을 부양할 가족이 있으면 수급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가 부양해야할 의무를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지요. 현재의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국가부양의무제’로 바꿔야 장애인들도 가족에게 스스로를 짐처럼 느끼면서 미안해하지 않고 당당히 탈시설 자립생활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하나의 우주를 가두는 시설

 

장애인들의 시설생활을 점점 줄이고 자립해서 사회 속에서 같이 일하고 함께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입니다. 지난 시간 꽃동네가 헐벗고 주린 이들과 음식과 온기를 나누며 고단하게 수행해온 소임이 분명 있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앞으로 장애인권을 위해 우리가 지향할 길은 과거와 현재의 꽃동네와 같은 모델은 더 이상 아닙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꽃동네의 문구는 글쎄요, 인권활동가로서 보기에 참 굴욕적으로 다가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보기에도 누군가를 먹이는 것까지만 도우면 된다고 제한을 두는, 혹은 면죄부를 주는 왜곡은 아닐까 싶습니다. 시각장애인(소경), 하체장애인(절름발이), 나병환자를 격리시켜도 먹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지내며 복음을 주시고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한 장애인권활동가는 꽃동네와 같은 대형시설을 반대하며 말했습니다. “사람은 시설에서 살기에는 너무 거대한 존재”라고. 그 말에 한 마디 더 거들자면 흔히 사람을 하나의 우주에 비유하곤 하니까 시설은 곧 하나,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가두려는, 자연을 거스르는 공간이 아닐까요.

 

사회 안에서 나누어 먹으며 함께 사는 힘! 그것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누구도 장애를 원해서 갖게 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서 함께 살기가 뭐 이렇게 어려운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비장애인들이 얼마나 잘났으면 장애인과 같이 못사나 싶고, 거꾸로 비장애인들이 얼마나 못났으면 같이 못살고 있을까 싶습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기반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부족해서입니다. 꽃동네와 같은 대형시설을 하루 아침에 없애기는 어렵더라도 장애인들의 탈시설로 가는 길을 계속 함께 걸어야 합니다. “사회 안에서 나눠먹으며 함께 사는 힘! 그것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6월 10일 광화문에서 열린 “진짜 꽃은 여기, 광화문역 안에 피어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꽃동네 방문 반대 기자회견 ⓒ정중규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7월 7일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