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해직자와 함께하는 것, 위법이 아니라 인간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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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해직자와 함께하는 것, 위법이 아니라 인간된 도리다.
  • 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
  • 승인 2014.07.3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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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에 의해 희생된 0.015%의 해직교사를 이유로 25년 전교조를 무력화시키고자 한 박근혜 정권

전교조에는 9명의 해직교사가 있다. 정부는 이들이 실정법을 위반한 문제교사로 몰아가지만, 전교조 조합원들에게 이들은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아름다운 교사들이다. 정부는 이들을 도로교통법, 공직선거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죄가 있다고 하지만, 이들에게 죄가 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은 죄’이다. 사학비리를 보고 눈감지 않은 죄, 성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한 학교장과 맞선 죄, 교육개혁과 통일운동에 앞장 선 죄이다. 9명의 해직교사들은 양심과 도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노동조합의 실천을 가장 앞장서서 실천했을 뿐이다.

 

지난해 정부는 9명의 해직교사를 전교조의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15년간 합법지위를 유지해온 전교조를 법 밖으로 내몰았다. 9명의 해직교사를 조합에서 내치면 전교조의 합법지위를 유지시켜주겠다고 협박했지만, 6만 조합원들은 총투표를 통해 9명의 해직교사들과 함께 참교육의 길을 가겠다고 결정했다. 비록 가시밭길을 선택했지만, 우리는 가장 선생님다운 선택을 했다고 자부한다. 전교조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준 순간, 제자들에게 스승의 발자국을 따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연대로 맞서는 모습이 가장 전국교직원노동조합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6만 조합원들은 총투표를 통해 9명의 해직교사들과 함께 참교육의 길을 가겠다고 결정했다

 

노조라는 곳의 역할은 고용 관계에 있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해직자를 다시 복귀시키고 그들의 노동권을 보호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노조의 역할이다. 노조의 결정에 가장 앞서서 실천하다가 해직된 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노조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해직자를 내치지 않으면 노조의 자주성이 훼손된다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박근혜 정권은 준법을 가르쳐야 할 교사가 법을 어긴다고 나무란다. 그러나 우리는 법을 어긴 적이 없다. 존재의 근거도 없는 시행령을 무기삼아 해직교사를 쫒아내라고 하기에 그럴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헌법, 국제 규범, 양심에 근거하여 박근혜 정권의 패륜적인 요구를 당당히 거부한 것이다. 정작 법치주의를 허물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대통령에게 되묻고 싶다. 국정원 선거 부정의 혜택을 입은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의 허물은 덮어 버린 채, 악법에 의해 희생된 0.015%의 해직교사를 이유로 25년 전교조를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그들의 논리라면 국정원 선거 부정이 선고되는 순간,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아님을 통보받아야 하고, 부정선거로 국회의원에서 해고된 이들을 당원으로 남겨두고 있는 정당은 법외정당의 통보를 받아야 한다.

 

노조의 결정을 실천하다가 해직된 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노조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것

 

행정 관청이 마음만 먹으면 노조를 해산시켰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 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표적인 노동 악법이라 불렸던 노조 해산 명령이라는 법이 있었다. 구 노동조합법 제32조(해산명령 등) 1항은 “행정관청은 노동조합의 노동관계법령에 위반하거나 공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노동위의 의결을 얻어 그 해산을 명할 수 있다.” 노조해산명령이라 불렸던 이 법은 87년 민주화 운동의 결실로 11월 국회에서 전격 삭제되었다. 그러나 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불과 10여 일 앞둔 4월 26일 노태우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개최해 기습적으로 노조해산명령을 ‘시행령’으로 부활시켰다. 그것이 바로 15년 합법지위를 유지해온 전교조를 하루 아침에 법 밖으로 내몬 근거인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적어도 민주화된 90년대 이후 한 번도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시행령이다. 박근혜 정권은 30년 전에 폐기된 노조해산명령을 되살리면서까지, 해직자 9명을 노조에서 품고 있다는 이유로, 25년 교원노조를 법 밖으로 내몬 셈이다. 사법부가 행정권력을 견제하지 못하고 승인해 준 것이 지난 6.19 행정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이다.

 

악법에 의해 희생된 0.015%의 해직교사를 이유로

25년 전교조를 무력화시키고자 한 박근혜 정권

 

박근혜 대통령의 전교조에 대한 미움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2005년 개방이사 도입과 족벌사학 규제를 골자로 한 민주적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며 장외투쟁을 이끈 장본인이 바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영남대 이사장 출신이었던 당시 박 대통령은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 전교조가 사학을 장악한다며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대통령 후보 TV토론에서도 전교조를 학교혼란을 일으키는 이념집단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출범 이후에도 대통령의 역사인식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과 불채택 운동을 주도한 것도 전교조 교사들이었다. 우리는 이번 법외노조 조치가 전교조를 눈엣가시로 여긴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직자 9명을 문제 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전교조를 문제 삼고 싶은 것이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사실상 전교조 탄압의 일환 일뿐이다. 탄압의 근거는 수도 없지만 한 가지만 봐도 금방 드러난다. 정부는 노조법 2조를 근거로 해고자가 노동조합의 자격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한국노총에 3천여 개의 기업별노조가 있고, 민주노총에 2천여 개의 기업별노조가 있지만, 해고자를 노동조합에서 배제하는 노조는 하나도 없다. 그것이 엄연한 노동현실이고, 인간의 도리다. 유독 전교조에게 이 법을 적용한 것이다. 이것이 전교조 탄압이 아니고 어떻게 해석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같은 교원노조인 뉴라이트 소속의 자유교원노조도 규약으로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가시밭길이지만, 가장 선생님다운 선택을 했다고 자부한다

 

전교조의 합법화는 96년 OECD가입의 전제약속이었다. UN보다도 오래된 국제노동기구 ILO 사무총장은 지난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중단을 요구하며 2차례에 걸쳐 긴급개입을 했고, 올해 3월 ILO 기준적용위원회는 조합원의 자격을 노조 스스로 정하도록 한 국제기준을 준수하라고 권고했다. ILO의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183개 회원국 중 한국, 중국, 몰디브, 마샬제도, 브루나이, 피지, 투발로 등 7개 나라 밖에 없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해고자를 노동조합에서 내치라고 강요하는 나라는 없다.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연대로 맞서는 모습이 전교조다운 모습

 

혹자는 전교조가 해직자를 9명을 일단 내보내고, 해고자를 인정하는 교원노조법 개정운동에 나서라며 충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 5분이라도 해고자를 내보는 것은 노동조합의 가장 소중한 연대정신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어용노조를 선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전교조에게 동료를 내치라는 패륜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를 거부한 전교조를 법 밖으로 내몬 것이다. 이를 비판한 교사들을 형사고발 한 것이다. 무엇이 먼저여야 할까? 잠시 눈감고 동료를 내치는 패륜을 저질러야 할까? 패륜을 요구하는 악법을 바꿔야 할까? 노조가 해직자와 함께하는 것, 위법이 아니라 인간된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