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아버지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상태바
여전히 아버지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 엄윤상 (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
  • 승인 2014.09.30 2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인권

시작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버지의 눈은 절망에 가까웠다. 아들의 죽음을 애써 담담하게 설명하면서 간혹 눈이 촉촉해지기는 했지만, 기대는 이미 접은 눈이었다.

그의 아들 민 모 이병은 2010년 3월 22일, 완연한 봄날에 현역병으로 입대하였고 2010년 6월 9일 자대에서 전차수리병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10일 밤 영내 창고 뒤편 야산에서 목을 맸다.

자대 배치 후 한 달 여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스스로 목을 맸을까?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민 이병은 자대 배치 후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인 질책과 욕설을 들었고, 군 간편인성검사 결과 우울증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어떠한 관심과 보호도 받지 못했다.

차마 믿을 수 없는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군 관계자들은 아들을 순직으로 처리되게 하겠다는 등 온갖 감언이설로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개죽음’에 다름 아니었다.

 

믿기 힘든 아들의 죽음. 그리고 군 관계자들의 감언이설과 거짓말

 

아버지는 이대로 아들을 보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서울남부보훈지청에 아들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해 줄 것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서울남부보훈지청은 법 상 자해행위는 국가유공자 요건에서 제외되어있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비해당 결정을 하였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 사건을 공익소송으로 진행하기로 하였고 필자에게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망설여졌다. 승소가 불가능에 가까운 사건이어서 유족들을 더 아프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일단 유족을 만나보기로 했고 그렇게 민이병의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많이 지쳐있었고, 눈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렇게 보내면 나중에 하늘에서 아들을 어떻게 보겠느냐며 눈물을 훔친다. 야속하겠지만, 일말의 희망도 거두라는 건조한 말투로 이 사건의 쟁점과 승소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도 아버지의 의지는 강했다. 한 번 부딪쳐보기로 했다.

 

승소 불가능에 가까운 사건이었지만 아버지의 의지는 강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하였으나, 예상대로 기각결정을 받았다. 2011년 12월 1일,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지루하게 지속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잡히는 기일에 아버지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나보다 더 열심히 재판장에게 호소했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눈은 촉촉히 젖었다. 아버지는 증인을 찾아 몇 날 며칠 동안 전국을 헤매기도 했다.

그러던 중, 1심이 진행되는 동안 법이 개정되어 국가유공자 적용 예외조항에서 자해행위가 삭제됐고, 판례도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면 자해행위라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로 변경되었다.

 

죽은지 4년 여 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아들

 

아버지의 눈물이 통한 것일까. 1심은 “망인이 군 입대 후 선임병들의 암기강요, 욕설, 질책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중, 우울증 증세가 발현되고, 소속부대 간부 및 선임병들의 적절한 관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우울증 증세가 악화되어 자살에 이르렀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므로 망인의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며 아버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국가는 항소, 상고를 거듭했으나, 민 이병이 죽고 4년 여 만인 2014년 7월 24일 결국 아버지의 승리로 끝났다.

판결문을 받고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세월호 참사에 더하여 군대 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때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웃지 않았다. “이제 아들 볼 낯은 생겼지만, 아들이 죽었을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는 군대나 사회를 보면 이 땅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여전히 아버지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군대 내 사망사건.

군대가 변하지 않는 한, 부모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이번 달만 하더라도, 9월 2일 밤 10시 30분쯤에는 제13공수특전여단 예하부대에서 이름도 생소한 ‘포로체험 훈련’ 중이던 23살 이하사와 21살 조하사가 질식사했다. 9월 6일 밤 10시 30분 경, 21살 송일병은 자대에서 목을 맸다. 송일병의 머리와 어깨, 무릎 등 7곳에서 피하 출혈과 어깨 인대 파열이 발견됐다.

이 땅에서 아버지의 눈물이 마를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故민00 이병 군의문사 사건 경과>

 

 

■ 1990년

출생

 

■ 2010년 3월 22일

육군 입대

 

■ 2010년 6월 9일

5기갑여단 배치

 

■ 2010년 7월 10일

영내 야산에서 목을 맨 숨진 채 발견

 

■ 2010년 12월 22일

유가족, 서울남부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유족)등록 신청

 

■ 2011년 3월 8일

서울남부보훈지청,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처분

“부대의 소홀한 병력관리와 선임병들의 유형력 행사가 자살의 동기와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우울증에 빠져 삶을 포기하게 할 정도였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자유로운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

 

■ 2011년 3월 17일

유가족,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공익소송 신청

 

■ 2011년 3월 18일

천주교인권위원회 공익소송소위원회, 공익소송 선정 의결

 

■ 2011년 6월 3일

유가족, 행정심판 제기

 

■ 2011년 10월 4일

중앙행정심판위, 청구 기각 결정

“고인의 사망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고인은 자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 판단되고, 청구인의 주장과 같이 고인의 자살은 수인하기 어려운 국가의 가혹행위에 의하여 발생했다거나 정상적인 의사능력 또는 자유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일어난 것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 2011년 12월 1일

유가족, 행정소송 제기

 

■ 2012년 10월 2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단독(문보경 판사), 원고 승소 판결

“망인은 군 입대 후 선임병들의 암기강요, 욕설, 질책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중 우울증 증세가 발현되고, 소속부대 간부 및 선임병들의 적절한 관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우울증 증세의 악화에 따라 자살에 이르렀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므로 망인의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

 

■ 2014년 4월 1일

서울고등법원 제4행정부(재판장 지대운 판사), 항소 기각 판결

 

■ 2014년 7월 24일

대법원 제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 상고 기각 판결(심리불속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