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 총회 개최국의 국격은 가리왕산을 지키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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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 총회 개최국의 국격은 가리왕산을 지키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배보람 (녹색연합 정책팀장)
  • 승인 2014.09.3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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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의 의장국인 한국, 총회 개최지 평창에서 단 3일의 경기를 위해 500년 원시림을 파괴하고 있어
ⓒ박용훈

지금 이 시간에도 15분에 한 가지씩 생물종이 사라지고 있다 한다. 하나의 생물종이 사라지는 것은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일지라도 그들이 살아가던 하나의 세계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생물다양성을 높인다는 말은, 그들의 세계를 지킨다는 말이다. 그리고 인간인 우리와 풀 한포기, 새 한 마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말이기도 하다.

생물다양성이란 말을 둘러싸고 강원도 평창에서는 양립 불가능할 것 같은 두 개의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500년 원시의 세계 가리왕산이 단 3일의 스키 경기를 위해 잘려나가는 동안, 전 세계의 국가와 국제기구 등이 모여 생물다양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논의 하는 자리인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가 진행된다.

 

500년 보호구역을 해제해 스키장을 지으면서, 보호구역 확대방안을 논의하는 한국 정부

 

오는 9월 말부터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는, 생물다양성 보전 등을 위해 구체적 목표를 논의를 통해 결정하고 각국이 이를 어떻게 이행할지에 대한 전략 수립을 요구한다. 생물종이 급속도로 감소하는 것을 막아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역시 협약 당사국으로, 지난 총회의 결정사항에 따라 2020년까지 국토 면적 대비 보호구역 확대를 달성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이를 규정한 아이치목표6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육상 보호구역 면적을 현행 10.3%에서 17%로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부와 강원도는 보호구역 확대는커녕, 있는 보호구역도 해제하며 단 3일의 경기를 위해 500년 원시림을 자르고 있다.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르기 위해서는 가리왕산밖에 없다 주장하지만, 국제스키연맹의 규정은 2Run이라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기존의 스키장을 활용하여 동계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 정부가 발 벗고 나서 IOC를 설득하고 가리왕산을 지켜도 모자란데, 정부가 나서서 숲을 파괴하고 있다.

 

500년 원시의 숲 가리왕산, 그야말로 생물다양성의 보고

 

붉은 꽃을 피우는 철쭉이 사람 키보다 높이 선 것을 본적이 있는가? 봄마다 붉은 꽃을 피워내기를 무려, 지난 100년 동안이나 이어온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관공서 화단에서나 보던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두 팔 활짝 벌려서 한품에 안을 수 없는 나무를 본 적은 얼마나 있을까? 이 산에는 그런 나무가 셀 수 없이 많다. 주목, 마가목, 왕사스레나무 등 희귀수목이 500년 동안 살아온 숲이다. 조선시대부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오던 평창과 정선 사이에 위치한 원시림이 바로 가리왕산이다.

가리왕산은 지난 500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채 지켜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호가치가 높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에는 자연림이 매우 드물다. 일제시대와, 전쟁, 산업화와 70년대 맹위를 떨친 산판에 남아 난 자연림은 손에 꼽았다. 그 혼란을 넘겨온 숲들도 9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골프장에 잘려나가기 일수였다. 꽤나 높다고 소문난 산에는 어김없이 스키장이나 관광단지 따위가 들어섰다.

이 질곡의 시기를 비껴 올 수 있었던 가리왕산은 지난 500여년의 역사를 하나로 품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 숲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오래된 나무부터 이제 막 나무의 모양새를 갖춘 어린 나무까지, 희귀수목의 연대기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취약해 나무의 싹이 틔워지지 않아 백두대간에서도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주목의 어린 것들도 이 숲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나무의 연대기가 가리왕산에서 펼쳐지는 이유가 있다. 가리왕산은 나무의 뿌리가 흙속에서만 만나지 않고, 너덜지대의 돌과 흙이 뒤엉켜 만난다. 너덜지대 사이사이에서 여름이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불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풍혈지역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난 500년 동안 기후변화에 취약한 희귀식물까지 숲에 자리할 수 있었다. 가리왕산의 풍혈지대를 통해 나무와 나무가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숲 전체가 하나의 군집이다.

따라서 가리왕산은 생물다양성이 매우 높다. 산림청은 지난 2008년 가리왕산 일대를 희귀식물자생지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환경부 지정 생태자연도 1등급, 극상림, 원시림에나 해당한다는 녹지자연도 8-9등급이다. 법적으로 국가와 민간의 개발이 일체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특별법을 만들었고 산림청이 보호구역을 일부 해제 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단 3일의 스키경기를 위해서 말이다.

 

생물다양성 총회를 백번 열어도, 500년 숲을 지키지 못한다면.

 

500년 원시림을 이렇게 잘라내면서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를 통해 국격을 높인다는 한국 정부의 이중적 태도에 경악스러울 지경이다. 대체 진정성이라는 것이 있는 정부인가 싶은 절망감이 몰려온다.

가리왕산의 나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야말로 생물다양성은 인류를 포함해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삶과 관련된 전제조건이다. 가리왕산을 잘라내면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정부가 생물다양성을 언급할 자격이 있을까. 생물다양성 총회 의장국으로서의 국격을 지키는 것은 가리왕산 벌목을 중단하고 IOC를 설득해 가리왕산이 아닌, 기존의 스키장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진행하는 것이다.

500년 숲 가리왕산을 지키는 것이야 말로, 생물다양성을 둘러싼 한국정부의 당면과제이다. 가리왕산을 지켜야 한다. 이 숲은 단 3일의 경기를 위해 이렇게 사라지도록 놔둘만한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