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개방의 위기를 농업회생의 일대전기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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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개방의 위기를 농업회생의 일대전기로 만들자!
  •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
  • 승인 2014.10.2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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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개방 반대

쌀은 주권이요, 생명이다. 대책 없는 정부의 쌀 전면개방을 반대한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으로 인한 무분별한 농축산물 수입은 국내 농축산물 가격의 폭락을 낳고, 농축산물의 가격폭락은 농민생존과 농업기반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이는 하느님 창조질서 보전과 식량주권, 먹을거리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대참사의 예고편이다.

농축산물 수입개방, 특히 쌀을 중심으로 시장개방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대흉년으로 쌀 생산량이 급감하자(쌀자급율 66.2%), 1981년부터 외국쌀을 수입하게 된다. 우리가 소비하는 단립종(자포니카)쌀 생산국이 많지 않아 당시 주 수입처인 미국 쌀도 모자라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호주, 스페인에서도 쌀을 수입하였다. 쌀 수입 가격도 문제(국제시세의 2.5배)였지만 수출국의 장기도입계약 요구로 1981년 당시 필요량(120만톤)의 2배 가까운 224만5,000t을 수입하고도 1984년까지 추가 수입이 계속되었다. 그 여파로 1990년대 초반까지 재고미 문제로 국내 쌀 정책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 1993년 12월 9일, 서울대교구청 별관 회의실에서 열렸던 기자회견

 

1992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쌀 개방 반대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자 “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12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고 한국도 이에 동참하면서 쌀시장 개방은 현실로 다가왔다. 다만, 쌀과 같은 식량안보 관련 품목은 관련국의 반대 여론을 고려해 '유예'를 인정받게 되고 한국도 유예 국가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쌀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일정량의 외국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부분 개방으로 신장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쌀 시장 개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쌀 의무수입물량이 1995년에 약 5만톤, 2004년에는 20만4천톤, 2004년 재협상의 결과로 매년 2%씩 의무수입물량을 늘린 것이 2014년에 40만 9천톤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14년 9월 30일 정부는 각계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세율 513%로 WTO에 쌀 개방계획을 최종 통보했다. WTO 쌀 관세화 협상과 별도로 FTA와 TPP에서 언제라도 쌀에 대한 관세철폐나 우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도 정부와 여당은 513% 고율관세로 충분히 우리 쌀을 지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의 의지대로 쌀 관세화가 추진된다면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 이후 20년 만에 마지막으로 남은 쌀이 전면개방 될 상황에 놓였다.

“쌀은 주권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처럼 쌀은 우리의 주식이므로 다른 농산물과는 달리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이해당사국들과 협상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고, 야당과도 협의 없이 정부가 마음대로 쌀 관세화(전면개방) 하겠다고 선언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식량안보의 문제를, 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 국민적, 사회적 합의 없는 쌀 관세화 결정은 무효다.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기후변화로 인해 일상화된 이상기후는 쌀을 비롯한 농업생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2007~2008년 국제곡물가의 폭등으로 인한 식량위기가 세계 37개국에서 식량관련 폭동을 촉발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식량이 무기화되는 시대는 이미 도래되었다. 한국농업에서 쌀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나라에서 쌀은 국내 여러 농산물 중 하나의 품목이 아니라 한국농업의 근간이며 식량자급의 원천이다. 쌀은 전체 농업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쌀 재배면적은 전 경지면적의 60%, 쌀 재배농가는 전 농가수의 75%에 이른다.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동안은 100%이상 자급하던 쌀 덕분에 25%내외의 식량자급률을 지켜왔지만, 쌀 자급률이 83%(2012년 기준)로 떨어지면서 전체 식량자급률은 23.6%, 쌀을 제외하면 3.7%로 대한민국의 먹을거리 현실은 이미‘참사’다. 그래서 쌀 개방은 백번 천번이라도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쌀 개방이 아니더라도 지난 20년간 2004년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발효를 시작으로 2014년 현재 한-미, 한-EU, 한 -아세안 등 49개국과는 협정발효, 3개국과 협정타결, 14개국과 협상진행, 협상준비 21개국 등 이미 전 세계 주요 교역국들과 모든 분야에서 시장개방은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산물 분야도 한-중 FTA를 올해 안에 끝내자는 대통령의 의지로 볼 때 양허제외 품목 10%에 농산물을 대부분 포함시키겠다는 대책 정도로는 농산물시장 전면개방의 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렵다. 농산물 시장개방이 전면화 된 지금, 우리 농업을 유지발전 시키기 위한 대책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나라의 주권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농업을 지키고 살리는 일을 더 미룰 수 없다. 식량자급율 법제화, 농지 및 종자보존, 농업 후계인력 양성, 농가단위 기본소득 보장, 학교급식 및 공공급식의 확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농민의 권익을 지켜 줄 법적기구(농업회의소) 설립, 친환경 유기농업의 확대 등 식량주권을 지키고 한국농업이 지속되도록 농민과 소비자, 정부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한국농업, 농촌, 농민을 지키고 살릴 대책을 찾는데 집중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가톨릭농민회가 1993년 12월 UR협상으로 쌀 수입개방 저지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당시 쌀 개방의 위기를 농업회생의 일대전기로 만들자는 취지의 기자회견(사진 첨부)에서 “ 쌀 수입개방과 한국농업의 진로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쌀 수입개방 저지와 농업 대개혁 운동’을 촉구하였다. 함께 한 故김수환추기경은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의 경쟁에서 이겨내는 근본적인 농업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히고, 그러기 위해서 “우선 우리 국민 모두가 신토불이가 구호가 아니라 실천, 우리쌀 먹기 운동 ․ 우리농토살리기운동을 펴야한다”고 강조했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농민운동 선배들의 혜안이 그대로 담겼다. 지금 한국농업을 걱정하는 모든 이들이 되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멈추지 않으리라”(창세 8,22) 라는 창세기의 한 구절처럼 우리 농민들은 오랜 세월동안 묵묵히 땅과 함께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해왔다. 그리고 대한민국 농업, 농촌, 농민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60년대 말부터 산업화, 저곡가정책으로 농촌에서 쫓겨나 산업역군이라는 미명하에 도시빈민으로 살아야했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농민들은 늘 희생양으로 살아왔다. 우리 사회에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지만 농민들만큼 억울하게 가난한 사람이 없다. 자신의 나태함과 무지 때문이 아니라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가난한 삶을 살아야하는 것은 참으로 정의롭지 못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복음의 기쁨 48항에서 밝힌 “ 우리 신앙과 가난한 이들 사이의 떼어 놓을 수 없는 유대”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 농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찾아야한다. 이 길이“함께 살고 모두를 살리는 길”이며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 지난 달 9월 2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우리농, 도시생활공동체 활동가들과 가톨릭농민회 농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