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해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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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해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 김혜진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
  • 승인 2014.10.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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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안전사회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어렵다. 누군가는 빨리 세월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아직도 10명의 승객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왜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규제완화를 통해서 더 위험한 사회를 만든 이들은 그 어떤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반성과 성찰을 통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진실이 규명되지 못하고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는 한 우리는 아직 세월호 안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 벌어진 침몰사고, 홍도 유람선 사고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연안여객 관련한 안전 지침을 만들고, 안전규제 완화를 중단하며, 국가안전처를 만드는 등 안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목소리를 가두고,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 보장을 외치는 가족들과 시민들의 바람을 외면해왔던 정부는 안전대책에서도 전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또다른 사고를 앞에 둘 수밖에 없고, 그 때에는 정부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혹은 운에 의해 생명을 구해야만 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홍도 인근의 유람선 침몰사고였다.

9월 30일 오, 전남 신안 홍도 인근 해상에서 유람선 바캉스호가 침몰했다. 이 사고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캉스호는 일본에서 선령이 지나 운항을 포기한 선박을 들여와 개조한 것이다. 27년 된 낡은 선박이었다. 바캉스호의 정원은 350명인데 허가과정에서 495명으로 늘어났다. 이 배는 세월호 참사 다음 날 안전점검을 통과해서 운항 허가를 받았다. 홍도 주민들이 이런 노후선박을 관광선으로 이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운항허가를 불허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되었다. 6개월 전에 안전점검을 통과했는데도 구명뗏목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정부는 아무 것도 달라지 않았고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관리감독을 하는 당국도 변한 것이 없다. 결국 이 배는 세월호와 똑같이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캉스호와 세월호의 차이라면 이 배의 선원과 승객 109명 전원이 침몰 직전 신속하게 구조되었다는 점이다. 바캉스호 침몰 직전 근처를 지나던 유람선이 곧바로 배를 사고선박에 붙인 후 승객들을 구조했고 어선들도 승객 구조에 일조했다. 해경이 아니라 홍도 주민들이, 정부가 아니라 어민들이 승객들을 구조한 것이다. 민간어선의 구조를 방해하는 해경도 없었고, 민간구난업체인 언딘을 기다리느라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다. 승무원들과 민간 배들만이 세월호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었고 그래서 신속하게 사람들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의 구조시스템은 위험상황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부의 안전대책은 안전산업 활성화 대책

5월 19일 정부는 담화문 발표를 통해서 해경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등 정부조직을 재편하여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해경해체는 충격요법에 불과하며, 국가안전처가 과연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안전관리를 담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조직이 어떤 명칭을 갖는가가 아니라 콘트롤타워 기능을 할 수 있는 단위의 전문역량과 안전과 관련한 예산의 투여, 일상적인 훈련, 현장책임자의 권한 강화 등이다. 그러나 여전히 예산편성에서 일상적인 훈련과 안전장비를 갖추는 것 등은 뒷전이고, 안전 관련 업무를 외주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조직 개편으로 사회 전체의 안전이 보장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정부는 8월 26일 ‘국가안전 대진단 및 안전산업 발전방안’을 내놓는다. 이것을 내놓은 주체는 그동안 규제완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국민경제자문회의였다. 이 방안에서는 안전대진단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기관이 독점적으로 실시하는 안전점검과 교육에 민간을 참여시키는 등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대책은 제대로 수립되지 않는 반면 안전산업 육성방안의 후속조치만 신속하게 만들어진다. 9월 19일에 ‘안전산업육성지원단’이 만들어져서 1차 회의를 했고, 심지어 원력의료까지 안전산업에 포함시키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민간 재난보험 상품을 재발하고 방재컨설팅 업무를 보험사의 부수업무로 허용하기로 했다. 9월 23일 정부가 발표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기본방향 및 향후 추진계획’에서도 안전인프라에 대한 민간투자 확대 유도 방안이 나와있다. 결국 안전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가 결국 사고를 만들었고 통제되지 않는 기업의 탐욕과 그것을 부추기고 방조한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서 참사로 확대되었고, 안전을 정부의 책임을 여기지 않는 무책임함으로 인해 아무도 구조되지 못했는데도, 또다시 언딘과 같은 기업을 만들고, 정부가 담당해야 할 안전관리의 책임을 민간에게 떠넘기겠다고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사라지고, 위험이 많을수록 안전산업은 더 활성화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안전산업을 위해서 불안은 더더욱 조장될 것이다. 안전산업이 활성화될수록 돈 없는 사람들은 안전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안전산업이 아니라 안전의 권리가 필요하다

그토록 큰 참사를 겪고도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은 이 정부는 얼마나 안일한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 정부는 얼마나 무책임한가. 심지어 안전마저도 기업의 이윤을 위해 던져주는 이 정부는 얼마나 끔찍한가. 정말로 이 정부 아래에서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기업과 정부에게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맡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안전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자력구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정부는 안전산업을 만들어서 ‘돈을 내고 안전을 사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정부와 기업이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요구해야 한다. 우리가 권리를 찾자는 것은 기업과 정부가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시민들에게 알 권리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위험요소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안전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지금은 ‘기업비밀’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되어 있는 유해위험물질에 대한 정보도 공개되어야 한다.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원자력 발전소의 문제점도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알 권리를 토대로 하여 위험에 대한 통제에 시민들이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가 제대로 안전관리가 되고 있는지 감시할 수 있어야 하고 대중교통수단 등에 시민안전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위험을 알게 되었을 때 작업을 멈출 수 있어야 하고 그 위험에 대해서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보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이 존엄과 안전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산업이 아니라 안전의 권리이다.

4월 16일 이전과 이후가 결코 같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존엄과 안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알고 감시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나서자. 그리고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들어나가자. 이것이 억울하게 죽어간 304명에게 바치는 우리의 진정한 애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