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기피자의 신상은 누구를 위해 공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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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기피자의 신상은 누구를 위해 공개하나
  • 백승덕 (징병제 연구자)
  • 승인 2015.01.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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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1일부터 병무청 홈페이지에 병역기피자들의 신상이 공개된다. 작년 말 국회에서 예산안 심사를 두고 여야가 합의를 본 직후에 미뤄두었던 법안들을 한꺼번에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도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성범죄자들에게 하듯이 사회에 신상을 까발려 병역기피를 근절하겠다는 법안이다. 애초에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이 내놓았던 개정안은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부 특권층의 병역기피로 논란이 일자 그에 호응하여 내놓은 법안이었다.

논란은 스포츠 스타들에 대한 병역면제 과정에서 불이 붙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던 박주영이 해외 체류자 신분으로 병역을 연기하던 중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여 병역을 면제받자 비난이 쏟아졌다. 이러한 비난 여론에 호응하여 해외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스타들의 병역이행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송영근 의원의 개정안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외 체류 병역불이행자들을 합법적으로 사회에서 모욕을 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국외 체류자들을 대상으로만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국내 병역기피자들까지 포함하도록 수정되었다. 이에 따라 종교적·정치적 병역거부자들 또한 신상공개 대상에 포함되었다. 엄격한 법의 논리에서는 병역거부자들 역시 병역법을 위반한 병역기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군대 다녀온 예비역들이나 가족·애인 등을 군대에 보내본 사람들이 병역기피자들에게 느끼는 분노는 자연스럽다. 고위공직자 자제들의 병역기피 의혹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평소에 건강함을 뽐내던 예체능 스타들이 몸이 불편해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소식이 공분을 사기도 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병역이행자들이 호소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어떤 면에서 정당하기까지 하다. 처음 개정안을 내놓았던 송영근 의원도 이러한 박탈감 때문에 인터넷 신상공개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 체류하면서 여러 방법을 통해 귀국을 하지 않는 이들은 특권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관성 없이 적용되는 ‘엄격한’ 법의 논리

 

젊은 날의 2~3년간을 병영에서 보내야 했고 또한 보내야 할 이들이 특권층의 병역기피에 대해 느끼는 분노가 엄격한 법의 논리와 만나 ‘병역기피자 인터넷 신상공개’ 제도를 창조해냈다. 국방부 기무사령관 출신으로 비례대표를 통해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된 송영근은 병역이행자들의 박탈감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병역기피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정책도 제안했다. 한편, 국회의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은 송영근 의원의 개정안을 심사하면서 엄격한 법의 논리에 따라 형평성을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는 해외 체류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법안을 국내의 병역기피자들에게도 적용했다. 이에 따라 병무청이 홈페이지에서 병역기피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깊은 함정이 있다. 지난 5년 간 병무청에서 적발한 병역기피자 119명 중 연예인, 체육인이 55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법안 심의 때문에 국회에 출석한 병무청차장은 병역을 기피하는 체육인들의 성격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체육인은 거의 1부 리그에서는 별로 유혹을 안 받습니다. 상무를 가든 어디를 가든 충분히 자기가 활동하는데 문제는 마이너리그에 있는 애들이 문제입니다. 전부 이쪽 애들이, 군에 가면 자기 인생이 끝나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의원들이 병역이행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달래기 위해 중점관리하기로 했던 병역기피자들이 사실은 특권층이 아니라는 증언이다. 지난 5년 동안 적발된 병역기피자의 절반이 연예인, 체육인이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마이너리거’였던 것이다. 듣고 있던 법률안심사소위 위원장 윤후덕 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아니, 인생 끝나는 애들을 뭐 하러 군에 데리고 가요.”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인터넷에 신상이 공개될 병역기피자들 중 상당수가 “군대 가면 죽는 애들”일 가능성이 높다. ‘병역기피자 인터넷 신상공개’ 법안을 쉽게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에게서 책임윤리가 실종되었다. 228명 찬성에 1명 기권으로 통과되었으니…. 개정안은 대상자들에게 소명기회를 주겠다고 명시했지만, ‘정당한 사유’의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국회가 만장일치로 청와대의 인권의식에 이 사안을 맡겨버린 것이다. 병역기피자의 인터넷에 신상을 공개한다는 발상도 그렇지만,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사안을 무책임하게 다룬 국회의 행태도 놀랍다.

더 큰 문제는 엄격한 법의 논리마저도 일관성 없이 임의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병역기피자 인터넷 신상공개’처럼 병역이행자들의 박탈감을 달래보려는 이유로 같은 시기에 제출되었던 다른 제도를 심의하는 과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방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은 고위공직자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병역사항을 중점 관리하는 제도를 신설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내놓았는데, 여기에는 연예인, 체육인도 포함되었다. 고위공직자와 함께 연예인, 체육인이 특권층으로 분류된 것은, 지난 5년 간 병무청에서 적발한 병역기피자 119명 중 이들이 55명으로 절반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제도를 제안했던 진성준 의원은 여기에 연소득 3억 이상인 최고세율 부과 대상자를 포함시켰지만, 국방부는 고소득자를 제외하는 수정안으로 고쳐 제출하였다. 납세자들의 신상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병역사항 중점관리 대상을 고위공직자 및 그 직계비속과 연예인, 체육인으로 국한시켰다.

기본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고소득자는 제외하면서도, 기존의 고위공직자에 더해 연예인과 체육인들을 중점관리 대상에 새로 포함시키는 까닭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국방부는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연예인, 체육인들이 병역을 기피했을 때 사회에 주는 충격과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러한 영향력을 기준으로 한다면 재벌 3세 등을 제외할 이유가 없다. 국방부안을 보충설명했던 병무청차장은 연예인, 체육인들을 중점관리대상에 포함시켜도 밖으로 공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기에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고소득자들만을 제외할 이유가 더더욱 없다.

 

누구를 위한 기본권인가

 

한국에서 병역기피자로 낙인찍히고 신상을 고발당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특히나 가진 것 없는 ‘마이너리거’들은 사회적 죽음에 더욱 취약하다. 반면에 병역을 이행했다는 사실은 그리 큰 힘을 주지 못한다. 군대에 다녀왔다고 취직이 바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누구보다 군인들을 챙길 것 같았던 박근혜 정부는 전역장병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국고로 지급하겠다던 희망준비금 제도를 병사들 스스로가 월급을 아껴 돌려받는 식으로 고쳐버렸다.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보장받는 권리는 이처럼 조삼모사식이다. 통치자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더욱 약한 고리를 찾는다. 병역기피자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는 발상은 그렇게 태어났다.

SBS가 송영근 의원실을 통해 받은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서울에서 병역 기피자가 가장 많았던 곳은 강북구(14명)였다. 통념과 반대로 강남·서초·송파구의 병역기피자 수는 강북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득권층에 대한 박탈감을 의식해서 만든 제도이지만 그 효과는 예상과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한편, 병무청은 병역기피자 인터넷 신상공개에 앞서 소명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매우 특별한 재능을 뽐내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마이너리거’들은 이제 병무청에 나가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때에만 사회적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탁월한 스타도 아니면서 왜 계속 꿈을 포기하지 않느냐고 묻는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하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억울한 상황이다.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상황이지만 법의 논리는 이에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병역중점 관리대상에서 고소득자들을 제외할 때에는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한다. 법의 논리는 대체 누구를 위해 기본권을 고려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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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징병제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