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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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의 문제점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5.01.3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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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의 해산결정을 TV의 생방송으로 보면 최소한 세 번은 놀라게 된다. 앞에서는 너무도 번듯하게 입헌적 민주주의를 설명해 놓고도 뒤에서는 “한국적 특수성” 운운하며 해산결정을 내린 다수의견의 이중성에 먼저 놀라고, 이 황당한 결정에 8명이나 되는 재판관이 동조했다는 억장 무너지는 배신의 놀라움을 겪고, 곧 이어 김이수 재판관의 저 사리분별 분명한 반대의견을 보고도 억지의 논리만 주장하는 8명의 재판관들의 헌법적 무지 혹은 그 무모함에 다시금 놀란다.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이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은 일인당 국민소득 2만불 이상 되는 국가에서는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이룬 나라라면 일개 정당이 폭력을 수단 삼아 그 국가체계를 전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혹은 그러한 정당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민사회에 맡겨 유권자들의 심판에 의해 처리한다. 그래서 심지어 “정당의 무덤”이라 불리던 터키조차도 최근에는 더 이상 정당해산이라는 극단적 처방은 내어놓지 않는다. 현재 극우정당이 발호하는 독일에서도 강제해산 문제가 정쟁거리가 될지언정 연방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헌법재판소의 이 해산결정은 현대의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 해산을 명하는 약 147쪽의 다수의견에 담겨져 있는 내용조차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유추와 편견 혹은 짜맞추기의 억지들로 가득할 뿐이다. 실제 헌법재판소가 변론이 종결된 후 24일만에 결정을 선고하겠다고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은 과연 저 결정이 제대로 된 것일까 의문을 제기하였다. 약 17만 5천여쪽에 이르는 증거자료들에다 십여차례에 걸친 변론과정에서 양측이 진술한 주장이나 의견만 해도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9명의 헌법재판관들이 이 모든 증거와 자료와 진술들을 제대로 읽고 평가하고, 평의를 통해 합의에 이르고, 그 결과를 정리해서 결정문으로 작성하기에 이 24일은 인간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너무도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날림공사는 결정문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해외체류중이던 사람을 국내에서 열린 회합에 참여하였다고 적어둔 것이나, 80년대 학생운동을 정리하는 단순한 토론회에서 한 발제자가 제시했던 변혁이론을 통합민주당의 “숨겨진 목적”이라고 견강부회하는 등 오류투성이의 사실관계로 인해 신랄한 비판을 받는 것은 오히려 약과다. 정당해산에 대한 법이론의 구성 자체가 최악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당해산- 현대의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대체로 정당해산심판에 적용될 수 있는 법이론은 유럽을 중심으로 아주 잘 구성되어 왔다.(정당해산심판제도는 주로 유럽에서 채용되고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도 가입하고 있는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통칭, 「베니스위원회」)는 수차에 걸쳐 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에 의하면 정당해산은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며, 만약 어쩔 수 없이 하더라도 그것은 민주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명백하고도 필연적인 사유” 혹은 “강한 사회적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조심스럽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당이 위헌인지의 여부는 단순한 이념이나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지, 어느 정도인지에 중점을 두어 판단하여야 하며 이는 실질적인 증거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헌법재판소도 이 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기에 정당해산의 요건을 말하면서 초두에는 이런 기준에 비슷한 용어법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뿐이다. 더 이상 나아가게 되면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바꾸자면, 요건에 대한 서술은 최대한 느슨하게 하고 그 틈새를 타고 헌법재판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숨겨진 목적”와 ‘퍼즐 맞추기’와 “주도세력”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들이다. 10만 명에 육박하는 통합진보당의 당원들 중에서 “주도세력”이라 불리는 30여명의 사람들을 골라내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전력을 비롯한 이들의 과거행적이나 언행들을 마치 퍼즐조각 맞추듯 이리저리 짜 맞추어 보니 통합진보당의 숨겨진 목적이 나오더라라는 것이 이 결정문의 주된 내용이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의 공식적인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것도 이런 퍼즐맞추기에 대입해 보니 그것은 “1차적으로는 폭력에 의하여” 실현되었다가 “최종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나아갈 것을 의도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법은 히틀러의 나치시대에서나 통용되었던 국가폭력의 방식에 불과할 뿐, 현대의 법치국가에서 그 어떤 법원도 하지 않았던, 그리고 해서는 안되는 추론방식이다. 헌법재판소는 “주도세력”을 말하지만, 왜 그들이 주도세력이며 그들 아닌 나머지 당원들은 그럼 무엇인지, 당내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달했다는 평을 들었던 통합진보당의 의사결정 절차들은 또 무엇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또 퍼즐 맞추기는 미리 전체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없으면, A라는 그림은 물론 B나 C라는 그림도 짜 맞출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이 퍼즐 맞추기를 통해 얻어지는 A라는 결론이 왜 B나 C보다 더 신빙성이 있는지, 왜 B와 C는 선택하지 않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이 그동안 내놓은 퍼즐조각은 수없이 많다. 민생법률안에서부터 노동, 환경, 소상인보호 등 그 수많은 행동들은 다 제쳐두고 오로지 저 “주도세력”의 언행이나 전력만으로 퍼즐을 만드는 이유 또한 설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이석기등의 “내란관련사건”에서처럼 고등법원에서조차 부정된 R.O와 같은 허상을 전제로 이 강연회의 폭력성을 추출해내고 이것이 곧 통합진보당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징표인 양 퍼즐조각 자체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버린다.

 

실제 그동안 나치당이나 독일공산당, 그리고 터키의 복지당, 스페인의 바타수나 등의 정당들이 강제해산되었고 이를 유럽인권재판소를 비롯한 서구사회가 어떻게든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들의 사례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통합진보당의 경우는 너무도 가볍다. 나치당이나 독일공산당은 아예 그 공식적인 목표가 전체주의 혹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이었다. 터키의 복지당은 이슬람국가의 건설을 위해 지하드 즉 성전까지도 불사하자고 외치고 다녔고, 바타수나는 바스크분리주의에 입각한 테러집단의 외곽단체로 구성되어 그들의 테러행위에 공공연하게 동조하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목적을 숨기지 않았고 또 대중들을 상대로 드러내놓고 선전, 전파하고 차세대 양성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주도세력”이나 “숨겨진 목적”이나 ‘퍼즐 맞추기’와 같은 귀걸이 코걸이 식의 논법은 전혀 적용되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반면 통합진보당의 경우 헌법재판소도 인정하듯 공식적인 목적이나 활동은 별 무리가 없다. 오로지 문제는 헌법재판관들이나 공안조직과 관련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던, 바로 그 “숨겨진 목적”뿐이었다. 더구나 결정문의 어디를 읽어보아도 이 숨겨진 목적이 결코 통합진보당의 활동이나 혹은 차후 집행할 계획 등으로 구체화된 경우는 없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처럼 그런 목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숨겨진 그대로 잠복해 있었을 따름이다. 우리 사회나 국가에 야기하는 위험은 그냥 잠재적인 것 혹은 잠복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 정당해산의 요건으로 제시하였던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위해를 끼칠 구체적 위험”은 어디를 보더라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서구의 기준처럼 그 위험이 지금 현재 눈앞에서 발생하고 있거나 혹은 긴박한 시간 내에 발생할 개연성이 있을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더더욱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어야 했었다.

 

더구나 여기에 더해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까지 그 의원직을 박탈한 것은 점입가경의 한탄을 피할 수 없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5·16 쿠데타 이후 개정한 1962년 헌법에서 정당이 해산되면 그 의원들도 자격상실된다는 규정을 두었다가 1972년의 유신헌법에서 그 조항을 삭제한 이후 지금까지 이 조항은 없는 상태이다. 이는 정당해산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은 계속 유지시키겠다는 헌법의 의지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정당에 대한 평가는 원래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몫.

그것을 정부와 헌법재판소가 우리 손에서 빼앗아 자신들의 권력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요컨대, 이 해산결정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은 물론, 우리 헌법의 수준에서 추출될 수 있는 정당해산의 요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 한 채 내려진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정당해산심판제도를 두게 된 것은 주지하듯, 1958년 조봉암의 진보당을 해산시킨 자유당정권의 폭력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다. 즉, 우리 헌법은 소수정당을 다수정파의 권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의 기본틀을 구축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제도를 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떠한 정당이라도 폭력에 의하여 체제를 파괴하고자 하지 않는 한 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의 해산결정은 아무리 보아도 반역사적 판단이자 동시에 반민주적 판단이다. 그것은 다원성,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민주주의의 틀을 벗어나 있는 것이자 동시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우리의 현대사를 일거에 부정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는 헌법을 수호하여야 할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위반하고 그 정신을 파괴한 이 결정을 단호하게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뒷걸음질 친 우리의 입헌주의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평가는 원래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우리 시민사회의 몫이다. 그것을 정부와 헌법재판소가 우리 손에서 빼앗아 자신들의 권력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주인됨을 외치지 않을 수 없다. 퇴행해 버린 헌정사와 정치사를 제 자리로 되돌려 놓고, 헌법재판소가 앗아가버린 우리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각성과 노력이 새삼 절실해진다.

 

 

통진당 해산결정 직후 이를 규탄하는 집회가 잇따랐다. 지난 달 27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규탄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청계광장을 향해 행진하는 모습. 정부를 규탄하는 여러 문구의 펼침막마다 '근조 민주주의'라고 적혀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