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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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
  •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
  • 승인 2015.04.27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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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통일열사 40주기

4.9 통일열사 40주기 추모제가 끝나니 4.16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왔다. 그 사이 성완종이라는 사람이 정치판을 요동치게 만들고 세상을 떠났다. 정치권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하다. 4.9통일열사들의 죽음과 4.16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을 성완종 씨의 죽음과 비교하는 일은 가당치 않겠지만, 단 한 가지 ‘사회적 죽음’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의 면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40년 전 인혁당재건위와 민청학련 사건 재판이 한창 진행될 때 민청학련 사건으로 잡혀온 한 학생은 사형선고가 떨어지자 “영광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또 사형장에 선 이수병 열사는 “내가 죽는 이유는 오로지 민족민주운동을 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4.16참사의 희생자들은 죽음이 닥쳐오는지 모르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거나 핸드폰에 긴급한 상황을 전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성완종 씨가 죽음을 택한 것은 자기가 속한 집단이 엉클어 놓은 세상을 뚫고 나갈 힘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혁당 열사들이 죽임을 당한 것도 4.16참사로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도, 성완종씨가 죽음을 택한 것도 모두 그 원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사회가 생지옥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닥쳐온 현신한 지옥은 모두가 권력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영구권력을 꿈꿨던 박정희가 인혁당 열사들을 죽인 것이며, 권력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자들이 세월호의 참사를 증폭시킨 것이며, 권력의 먹이사슬에 희생된 성완종 씨의 죽음까지 그러하다.

불경에 등장하는 귀신 중에 '아귀'라는 놈이 있다. 이놈은 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빠져 귀신이 되었는데,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먹고 싶은 대로 먹지를 못해 몸이 마르고 음식만 보면 환장하는 놈이다. 그런 아귀와도 같은 권력이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만 것이다.

아귀들이야 생긴 게 그래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귀들을 머리에 두고 살아야 하는 생지옥에 사는 순진한 민중은 어찌해야 할까?

 

부패한 권력들이 빚은 사회적 죽음들

 

현대에 와서 우리가 누리는 이런 민주주의가 아테네에서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교과서에서는 아테네 시민들이 나름대로 공평한 투표권을 행사하여 인민(demos)의 권력(kratia)을 누렸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주의는 노예들이 생산한 생산물이나, 전쟁을 통해 얻어진 노획물들을 어떻게 하면 자기들끼리 불만 없이 공평하게 나눌 것인가를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생산이 빠진 잉여가치를 공평하게 나누려는, 요즘으로 치자면 자본가들끼리 모여 생산물을 사이좋게(진짜 사이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눠 가지는 짓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현대 민주주의의 시효는 1776년 조지 메이슨이 기초한 '버지니아 권리 장전'과 1789년 프랑스 인민대표인 국민의회에서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었다.

이 두 가지 문서는 공히 '자연적이며 양도할 수도 없는 신성한 인간의 권리'를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예를 들자면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동의 유용성에 입각할 때만 가능하다'든지,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리', 또 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만인에게 동일한 법적용, 무죄추정의 원칙, 과도한 벌금 부과 금지' 등, 그리고 출판의 자유에 대해서는 '전체 자유를 지켜 주는 거대한 방파제이며 독재 이외에는 아무도 이를 제지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고대 민주주의와 달리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인간전체의 권리를 실현하겠다는 가치론적 원칙을 분명히 하였다. 그 결과 한 국가를 넘는 보편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시민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인간전체의 권리를 실현하겠다는 원칙을 지닌 현대 민주주의

 

이는 230년 전 인류가 생각했던 일이다. 헌데 왜 아직 그것을 못하고 있을까? 이러한 내용을 매일 강단에서 떠드는 사람만 해도 수천만 명은 될 것이다. 그런 수업을 들은 사람만 해도 족히 수십억 명은 될 것이다.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왜 그것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가? 언뜻 보면 권력을 쥔 놈들을 바꾸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직선제 선거만 하면 다 될 것 같았고, 선거 때만 되면 단일화를 외쳐보지만 이는 로또보다 어려운 일이다. 당첨만 되면 부자가 될 것도 같지만, 당첨이 되는 일도 어려울 뿐더러 당첨이 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 되기 십상이다.

방법은 딱 한가지다. 권력을 누르는 힘을 갖는 것이다. 아귀다툼을 일삼는 아귀들을 손아귀에 잡아채야 한다. 저들이 민(民)이 천(天)인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

권력을 누르는 힘을 민중이 지녀야 한다

 

32년이 지난 다음에야 인혁당 열사들이 무죄를 받았다. 그 긴 시간을 잊지 않고 투쟁해온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일 년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모든 걸 다해주겠다던 대통령이 배신해도, 함께 하는 줄 알았던 야당이 야합을 해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지금도 꿋꿋하게 싸우고 있다.

이 일은 한두 사람이나 한두 집단이 나서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귀들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엄청난 대군이 나서야 한다. 지난 4월 17일 작은 실험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네스북 도전행사가 있었다. 이 일이 시작된 지 딱 2주 만에 달성한 일이었다. 그리고 목표했던 4160명을 훌쩍 넘어 9천여 명이 참여했다. 오락가락하는 여론조사에 흔들려 낙담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행동을 큰 행동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때는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자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