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생명력을 지닌 울림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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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생명력을 지닌 울림이 되도록
  • 박수연 (국제민주연대 활동가)
  • 승인 2015.04.27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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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인권선언 운동
▲ 4월 14일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추진단 구성을 위한 원탁회의가 열렸다

 

비정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이 곳

지난 4월 8일,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대통령령)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나는 기자회견용 현수막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현수막을 들고 경복궁역에서 광화문광장까지 걸어오는 동안 구역마다 서있는 경찰들이 자꾸만 현수막을 주시하는 것을 느꼈다. 내심 말을 안 걸길 바랬지만, 그들은 굳이 다가와 그것을 어디에 쓸 거며, 어디로 갈 건지 물어댔다. 내 손에 든 것이 엄마 잃은 아이의 손도, 흉기도 아닌 걸 알면서도 뻔한 질문을 하는 경찰에 불쾌감을 느꼈고 반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거대한 배가 침몰하는 장면에서 느낀 비정상성이 그렇게 스멀스멀 나의 일상으로 들어온 지도 벌써 1년이다. 노란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로 통행이 제지되고 그곳의 먼발치에만 닿아도 경찰은 길을 지워버린다. 진실을 담은 발걸음은 번번이 차벽에 막혀 허공으로 흩어지고 채워지지 않을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루액이 쏟아진다.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는 사실은 내게 비정상적으로 느껴졌고, 이것이 또 자연스레 일상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그러나 그러한 불안함 속에서도 그것이 일상의 한 장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러한 본능을 알아차린,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이 비정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4.16인권선언의 의미

그러한 시도 중 하나가 지난 겨울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에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현 4.16연대)에서 제안한‘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운동이다. 4.16인권선언 운동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함을 한마음으로 공유하고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인지를 찾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올해 봄부터 본격적인 움직임을 펼쳤다. 인권선언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한국 사회가 단절해야할 것들을 선언하고 구체적인 실천의 목록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으로, 우리들의 목소리로 권리를 말함으로써, 빼앗기고 잊혀진 생명, 안전, 진실, 치유, 구조, 회복의 권리들을 되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4.16인권선언문은 세월호피해자를 비롯하여 많은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인권선언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였고 이것이 밑그림이 되어 헌법과 국제인권법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최종 채택이 되기 전까지 많은 시민들의 의견으로 수정 ․ 보완되어 염원과 소망, 의지와 다짐이 담긴 우리 모두의 선언으로 완성된다. 세월호참사는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는 총체적 인권침해였다. 그렇기에 4.16인권선언은 세월호참사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넘어서는, 유린당한 인간존엄성을 회복하고 한국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이끄는 선언이 되고자 한다. 전문, 전체 5장 24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언이 추구할 가치, 반성과 통찰, 피해자를 비롯해 참사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의 내용, 사회구성원으로서 져야 할 정치적 책임, 국가의 의무를 담았다.

지난 두 달 동안 304인의 추진위원을 전국적으로 모았고 4월 14일에 추진단 구성을 위한 원탁회의를 가졌다. 원탁회의에서는 4.16인권선언에 담길 권리를 실제화하기 위해 각자의 경험을 결부지어 보기도 하고 선언문에 담긴 권리의 실현을 위해 행동과제를 추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변화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이 오롯이 담김과 동시에 선언이 상징에 그치지 않고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선언을 함께 만들어나갈 시민참여의 문은 계속 열어두었다. 추진단은 각각 5월과 9월에 예정된 전원회의에 한데 모여 선언문을 꼼꼼히 살피고 올해 세계인권선언의 날까지 인권선언 최종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각자가 속한 공동체나 영역에서 선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는 토론회도 가지는데 그러면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적어도 304번 이상의 풀뿌리 토론회가 열리는 셈이다. 이렇게 완성된 4.16인권선언은 채택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 들어가 2016년 4월 16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머릿속에서만 떠다니는 인권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피어나려면

선언을 완성시키는 것이 과제이긴 하나 단지 선언문을 완성하는 것만이 4.16인권선언운동의 유일한 목표인 것은 아니다. 4.16인권선언은 선언문을 만들어나가는 길고 폭넓은 여정에서 보다 많은 시민들이 모여 직접 권리를 구성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통해서 인권이 일상의 삶에 스며들기를 추구한다. 그러한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모여 세월호참사 특별법 청원운동에서 600만 서명이 보여주었던 간절한 마음들, 잊지 않겠다는 다짐들은 생명력을 지닌 울림이 될 것이다.

세월호참사 당시 세월호를 둘러싼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많은 이들이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나는 그것이 이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분수령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는 마음만으로는 도저히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1년이라는 긴 시간의 흐름을 되돌려본 후에야 이를 깨달았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인권선언을 만드는 운동에 함께 하고 있다. 인권선언은 힘도 없고 그저 좋은 말 나열에 불과한 것 아니냐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서만 떠다니는 인권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피어나려면 다시 인간의 존엄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존엄을 세우는 이 노력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으면 한다.

 

▲ 4.16인권선언 추진단 구성 원탁회의 안내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