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맞닿아 있는 혐오의 맥락들-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하는 이유
상태바
서로 맞닿아 있는 혐오의 맥락들-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하는 이유
  •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
  • 승인 2015.05.29 1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5월 16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IDAHOT(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 day 행사 한편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팅을 벌인 이들의 모습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최근 몇 년 동안 '혐오'는 한국사회의 심각한 화두가 되었다. 개인적인 정서나 감정의 문제를 넘어,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심각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IS로 간 김군의 경우나, 일베 등이 온라인 공간 밖에서까지 행동에 나서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서울의 시청광장부터 광화문 광장까지의 길에서는 '종북, 세월호, 동성애 척결'이라는 구호의 현수막이나 일인시위 장면들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이른바 '애국보수'를 자칭하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보수 개신교 조직들은 지난 해 퀴어퍼레이드 행사에 집단적으로 몰려와서 참가자들에게 혐오와 독설, 폭력을 쏟아내며 행진을 가로막기까지 했다.

퀴어문화축제와 퍼레이드는 일년에 단 하루, 사회의 차별과 혐오로 인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던 성소수자들이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며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준비되는 자리이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조차 참가자들은 하루종일 자신들에게 저주를 퍼붓거나 회개하라는 목소리, 온갖 혐오의 말들을 듣고, 심지어 물병 등을 집어던지거나 퍼레이드 차량 밑에 압정을 깔아놓는 등의 폭력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이와 같은 혐오폭력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을 경험한 많은 인권, 시민사회 단체들과 여성단체, 성소수자 단체들은 혐오에 대응하는 목소리를 함께 모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단체들과 페미니스트들은 성소수자 혐오에 함께 맞서야할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성소수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며, 폭력을 가하는 구조들은 결국 여성을 통제하는 구조들과 깊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여성과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여성혐오와 맞닿아 있는 성소수자 혐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오랫동안 특정 지역이나 '종북/빨갱이'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심했지만 최근에는 이주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맥락에서 여성혐오와 맞닿아 있다. 이주민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결국 남성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이성애 가족 질서를 통해 사회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구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기득권을 폭력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구조가 강할수록, 그리고 그 기득권 세력들의 기반이 정당하지 못하거나 불안할수록, 사회는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를 강화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처벌을 가한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수단은 바로 성을 통제하는 것이다.

남자란/여자란 어떠해야 하고, 어떤 옷을 입으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누구를 사랑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결혼은 언제쯤 해야하고 아이는 얼마나 낳아야 하는지 등 우리의 일상에 촘촘히 박혀서 우리 삶을 규제하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성적 규범과 통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이런 기준들은 다분히 비장애인, 이성애자, 성인, 남성들에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성에 대한 정보가 통제되고 성적 규범과 통제가 강할수록 여성, 아동/청소년,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게 만든다.

IS는 이러한 통제와 폭력을 가장 극단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모든 전쟁에서 여성들을 강간하고 자신들의 것으로 취하거나 살해하는 행위가 점령의 상징적 방식으로써 자행되듯이, IS 대원들은 여성들을 혐오하도록 교육받고, 남성 동성애자는 가차없이 학살한다.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여성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남성만이 시민될 권리가 있는 강한 남성이며, 사회는 이들을 중심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계속해서 심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IS는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의 극단화된 압축판일 뿐이다. 이러한 폭력과 살해는 사회적 규범과 통제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처벌로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과 세계 곳곳에서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다. 2012년 WHO(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35% 이상의 여성살해가 (전)/남편, (전)/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미국에서는 살해당한 여성들 중 40~50%의 여성들이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살해를 당했고, 한국에서는 보도된 사건으로만 통계를 내 보아도 거의 2~3일에 한 번 꼴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동이나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는 종교적, 문화적으로 규제되는 가부장적 성규범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는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족들에 의한 명예살인이 벌어지기도 하고, 지참금을 위해 살해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살해들은 정확히 통계로 잡히지도 않는다. 그런가하면, 낙태나 피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국가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원치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옷걸이 등을 이용한 자가낙태를 시도하거나 안전하지 못한 불법시술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이렇게 사망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매년 7만여 명에 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들과 동시에 한편에서는 계속해서 남성 동성애자의 공개 처형이나, 레즈비언 여성에 대한 '교정강간'과 살해, 트랜스젠더 살해가 벌어진다. 이 모든 일들이 바로 성을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적 처벌로써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혐오와 차별의 정치권력화

 

최근 한국에서 더욱 우려되는 사실은 성적 통제의 맥락에서 벌어지는 특정 대상을 향한 차별, 혐오가 종교적 외피를 쓰고, '가족가치를 지키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명분 하에 정치 권력화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얼마 전 교육부에서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 표준안에 따르면 성소수자, 동성애 같은 용어는 사용해서는 안되고, '다양한 성적지향' 같은 용어도 사용을할 수 없다. 동성애에 대한 지도는 허용되지 않고, '다양한 가족 관계'라는 용어 역시 '가족 관계의 이해'로 변경되었다. 이 표준안은 철저하게 '금욕'에 기준을 두고 있다. 성적 욕구에 대한 내용이나 용어는 금기시되고, 성에 관한 내용은 임신 예방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와 같은 표준안은 지금까지 인권과 성평등의 관점에서 꾸준히 발전시켜온 성교육의 관점과 방향들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기에 많은 현장 교사들과 성교육 기관 강사들, 여성/성소수자/인권/청소년 단체들이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성교육은 성을 단지 욕망이나 성행위의 문제만으로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우리 각자의 정체성과 일상,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사회 구조에 깊숙히 연결되어 있는 진짜 문제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금기를 강조하는 성교육은 정보에 대한 판단력을 키우지 못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자존감과 협상력을 가지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사회적 위치에서나 상대방과의 권력 관계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그래서 국제인권기구인 '휴먼라이츠워치 (HRC, Human Rights Watch)'까지 한국 교육부의 이번 표준안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며, 이번 표준안이 학생들의 정보권, 건강권, 교육권을 침해하며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조장한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이런 잘못된 방향의 성교육을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문제로 여기고, 그에 따른 혐오와 차별에 기반해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관직을 맡기 이전에 그는 이미 수년 전부터 '국가조찬기도회'와 '국회조찬기도회'를 주도하는 대표격의 인물이었으며, '한국교계교과서·동성애동성혼특별대책위원회'의 공동대표이자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서울지역 상임고문으로 활동해 왔다. 이 단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며, "동성애를 조장하는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고 교과서에 동성애자의 불행한 삶에 대해서도 서술하라"는 요구를 했던 단체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교육부 장관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에는 그가 교육부의 미혼 직원 현황판을 만들어 자신의 책상과 집무실에 붙여 놓았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가족과 결혼의 가치에 좀 더 무게를 두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석에서는 "미혼자 많은 과장은 국장 못 되게 하겠다"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장관의 이런 행보로 인해, 미혼인 직원이나 결혼을 원치 않는 직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대놓고 벌어지는 결혼 압력과 사실상의 사생활 침해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성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출산에 대한 압박까지 받게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해 오다가 교육부 장관이 된 그가, 앞으로 이러한 행보를 통해 얼마나 더 많은 성적 통제와 사회적 차별을 그의 정책으로써 공식화해 나가게 될 지 심각하게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단 교육부 장관만이 아니다. 지난 해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최이우 목사는 “교과서에 동성애자의 불행한 삶을 서술하라”고 요구했던 ‘미래목회포럼’ 소속의 대표적 인물이었으며, 2011년 종교적 가치관을 담은 정책들을 내세우며 낙선 운동을 벌이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기독교유권자연맹’의 공동대표 김영일 목사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로 임명되었다. 이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이미 수많은 의료, 인권단체들이 전혀 효과도, 할 이유도 없으며 반 인권적이라고 규정한 '동성애 전환 치유/치료'를 내세우는 '탈동성애 인권포럼' 같은 행사가 버젓이 열린다. 이는 그간 보수 개신교계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든든한 조직적, 재정적 기반이 되어 온 결과이다. 보수 정부의 정치적 목적과 보수 종교계의 목적이 만나, 이 두 정권 동안 혐오와 차별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이제는 이들이 정부와 공공기관의 요직을 차지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정책화, 정치화하고 있다.

 

성적 통제와 혐오는 우리 모두의 삶에 연결된 문제

 

성적 차별과 통제에 맞서 평등한 권리를 찾고자 했던 전 세계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성소수자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구조 속에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혐오와 차별, 폭력들이 언뜻 보기에는 특정 집단의 극단적인 주장이나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 모든 일들이 사회적 불안들의 원인들을 모두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돌리고 이들을 통제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적 권력 집단들의 가부장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대로 방관하다가는 더욱 심각한 결과로 치닫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사회가 정해 놓은 통제의 기준에 평생 완벽하게 맞추어 살아갈 수는 없다. 누구라도 태어나면서 정해진 자신의 성별이 자신과 맞지 않아 괴로움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수 있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거나, 살다가 헤어지게 된다거나, 아이를 낳지 않거나 혹은 낳지 못할 수도 있다. 질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얻게 될 수도 있고, 낯선 곳에서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누구라도 살아가는 동안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목소리들은 마치 이러한 일들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벌어지는 일들이고, 그 삶이 그들의 잘못이며, 심지어 사회에 혼란과 불안을 가져오는 일들이라고 떠들어댄다. 혹은, 결혼을 하지 않는 정도의 문제와 동성을 사랑하는 정도의 문제는 마치 심각하게 다른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 사회의 수준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이 차별과 혐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누구라도 같은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권리를 지키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서로의 삶의 방식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침해하고 혐오와 차별을 통해 통제하려는 폭력들에 함께 맞서는 것이다. 지난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에는 처음으로 서울역 광장에서 성소수자, 해고 노동자, 장애인, 여성, 인권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이제 6월에는 다시 퀴어문화축제가 예정되어 있다. 지난 해 퍼레이드를 가로막고 혐오 발언과 폭력을 쏟아냈던 보수-개신교 조직들은 올해는 몇 개월 전부터 서울 시내 곳곳에 집회신고를 내며 조직적으로 행사와 퍼레이드를 방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에 기반한 폭력들이 점점 정치적 힘을 얻어가는 시대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위험한 시대이다. 성적 통제는 결국 삶에 대한 통제를 의미한다. 내 삶을 구획하려는 통제에 맞서 스스로의 삶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광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혐오세력에 맞서 아이다호 참가자들이 준비한 다양한 대응방법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