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대량살상무기 택배는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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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대량살상무기 택배는 처음이지?
  • 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 승인 2015.06.2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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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8일 주한미군사령부 앞에서 열린 <생물무기 반입 미군 규탄 기자회견>

 

택배는 기다리는 건 우리에게 언제나 즐거운 기억이었다. 주한미군의 탄저균 택배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치명적인 생물무기이자 고위험 병원체인 탄저균 국내 반입에 대해 한국 정부는 그 흔한 대국민 브리핑 한 번 없었기에, 지금까지 발표된 주한미군과 미 국방부의 보도자료, 한국 정부의 보도자료, 국회 현안질의 내용, 각종 언론보도 등을 종합하여 구성해보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5/27, 유타 주에 위치한 미 육군 생화학무기연구소인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실수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평택에 있는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민간 운송업체인 페덱스를 통해 보냈다고 미 국방부가 발표했다. 해당 탄저균 샘플은 주한미군 통합위협인식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신규 유전자 분석 장비(PCR) 시연회를 위해 4/25에 발송되어 4/29에 오산기지에 도착했다. 주한미군은 탄저균을 폐기했고 관련 조치를 취했으며, 일반인에게는 어떤 위험도 없고, 이러한 실험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그 후 미 국방부의 추가 발표가 이어지며 탄저균이 배송된 지역은 점점 늘어났고, 미군이 지난 10년간 미국, 한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총 5개국 69개소에 탄저균을 보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탄저균은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서 금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대량살상무기다. 탄저균의 위험성, 특히 살상력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2012년 방위사업청이 인용한 국방과학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10kg의 탄저균은 최대 60만 명을 살상할 수 있다.

한편 한국 정부의 어떤 부처도 주한미군으로부터 탄저균 반입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이 원래는 비활성화된, 즉 살아있지 않은 탄저균 샘플을 반입할 계획이었으므로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5월 28일 현장 조사에서 차단된 실험실의 외관을 살펴보고, 주한미군의 설명만 듣고 돌아왔다고 한다.

 

바보야, 문제는 탄저균 자체야

 

‘화학무기ㆍ생물무기의 금지와 특정화학물질ㆍ생물작용제 등의 제조ㆍ수출입 규제 등에 관한 법률(생화학무기금지법)’에 따르면 생물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탄저균 수입과 보유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예방법)’에 따르면 고위험 병원체인 탄저균 반입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내법 어디에도 ‘살아있는’ 탄저균만 신고해야 한다는 언급은 없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사전 통보하지 않은 탄저균 반입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이다.

국내법 위반은 차치하더라도, 비활성화된 탄저균이라고 무조건 안전할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번 사건에 대해 6/5 조사보고서를 발표하여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탄저균 비활성화를 위해 감마선을 사용해왔는데, 포자의 양이나 밀도에 따른 조사량의 변화 없이 감마선을 일괄 적용한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미군의 탄저균 비활성화 조치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활성화된 탄저균이라도 주변 환경에 따라 활성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탄저균이 살아있는지, 아닌지는 쟁점이 아니다. 문제는 탄저균 자체인 것이다.

 

이번이 정말 처음일까?

 

2015년 5월 7일, 미국 방산협회에서 진행한 <화생 방어능력 증강에 대한 포럼>에서 미 육군 화생방어합동참모국의 대니얼 매코믹은 주한미군의 주피터(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 위협 인식, JUPITR) 프로그램에 대해 발표했다. 미군의 생화학 방어 전략의 일부인 주피터는 북한의 생화학무기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2013년부터 한반도에서 시행되었다. 이번 탄저균 샘플 또한 독소나 병균을 감지·식별하는 훈련을 위해 반입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발표 자료에는 주피터가 시행되고 있는 실험실이 위치한 기지로 용산, 오산, 평택, 군산 미군기지가 특정되어 있으며, 탄저균보다 훨씬 강력한 독소로 알려진 보툴리눔 역시 탄저균과 함께 독소 분석 1단계 실험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리고 주피터를 이끄는 미 육군 에지우드 생화학센터는 주피터가 한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2014년에 발표한 바 있다.

미군의 탄저균 반입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탄저균 실험 및 훈련이 오산기지뿐만 아니라 다른 기지에서도 진행되었으며, 탄저균뿐만 아니라 다른 위험물질도 반입한 것은 아닌지, 더불어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각지에서 미군이 생화학전 대응 실험 및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생물무기는 공격용, 방어용을 구분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방어용 실험에 사용되는 탄저균은 언제든 공격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모두 가입하고 비준한 생물무기금지협약에서 탄저균의 개발·보유·운송·사용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국방부가 탄저균 반입을 몰랐다고만 답변하는 것도 의아한 점이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생물무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2011년부터 한미 연합 생물방어연습을 진행하고 있고, 2015년 완료를 목표로 한미 공동 생물무기 감시 포털을 구축하고 있다. 생물무기 방어와 관련하여 이렇게 밀접한 협력을 맺고 있는데, 미군이 어떤 물질을 반입하고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상황일까?

하지만 한국 정부는 몰랐고, 이번이 처음이고, 그 첫 실험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한미군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보낸 공개질의서에 이미 홈페이지에 공개된 보도자료 링크 2개를 보내주는 것으로 답변했다. 주피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모두 정부나 미군의 발표가 아니라, ‘구글링’으로 찾은 것이다.

 

 

▲ JUPITR에 대한 화생방어포럼 발표 자료

 

친구니까 봐주자? 더 나쁜 애가 있으니까 봐주자?

 

지난 6/16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주피터에 대한 진성준 의원의 질의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의원님의 말씀이 마치 주피터가 우리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로 들립니다. 주피터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고...”라고 답변했다.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에도 “주피터는 대한민국 국민 방어와 한미동맹군 보호에 필요한 주한미군사의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임”이라고 답했다. 미 국방부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 탄저균이 반입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미군이 진행하는 생화학전 대응 실험 및 훈련의 자세한 내용과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는데 “좋은 거니까 봐줍시다”라고 하는 꼴이다.

‘북한의 위협’이라는 성역 앞에서는 어떤 합리적인 문제 제기도 무력화되고, ‘한미 동맹은 언제나 옳다’라는 명제가 신앙처럼 강요되면 법도, 절차도, 알 권리도, 시민의 안전도, 모두 설 자리를 잃는다. 국가의 가장 강력한 물리력인 군대의 운영은 그것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그 어떤 영역보다 엄격하고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단순한 배달 사고가 아니다

 

탄저균 반입은 단순한 배달 사고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이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여 만에 꾸려지는 한미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피터 등에 대해 제기되는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검증해야 한다. 국내법과 국제법 위반 여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7월에 열릴 한미 SOFA 합동위원회에서 SOFA 개정을 비롯한 관련 대책을 철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이 탄저균이 아니라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위험한 배송이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