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대구 간담회”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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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대구 간담회”에 다녀와서
  • 강성규(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성서지회)
  • 승인 2015.07.27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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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멈칫하게 한 인권선언

다들 멈칫했다. ‘인권선언이라는 말에 모두. 세월호 참사로 짓밟힌 인권에는 모두 고개 끄덕이지만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모순 덩어리 참사가 현재 진행형인 가운데 인권선언이라는 말의 효력이 과연 있을 것인가, 갸우뚱해 했다. 지난한 세월호 인양과 진실 규명이 일단락되어 지난 일들을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거리가 비로소 확보되었을 때 세월호 인권 선언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지금은 동네에서 거리에서 서명 받고, 세월호의 고통에 공감하여, 또 무도한 정부의 악랄한 훼방에 맞서 투쟁할 때라고 대구의 세월호 활동가들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인권 선언을 제안한 활동가들의 반론 또한 깊었다. 이 길고 긴 싸움을 무슨 힘으로 할 거냐고. 투쟁의 동력은 어디서 얻을 것이냐고. 투쟁의 전선을 접고 교양 있는 인권으로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 싸울 수 있는 힘을 자아낼 수 있는 대화의 장을 풀뿌리에서부터 마련해 가자는 것이었다. 세월호를 기억에서 지우고 가려는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매개체가 인권이라고도 보았고, 창현 어머니는 이 모든 제안과 반론을 엄마의 마음으로 품어주시는 듯했다.

지난 7월 11일에 열린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추진단 전체회의 모습

에너지를 모으는 그릇의 이름, 인권

나는 생각했다. 뭐든 잡아야겠다고. 세월호 참사에서 발생한 직접적, 문화적, 구조적인 폭력과 무책임을 이야기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사안을 근본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 잡아야겠다고. 여럿이 모여 소리를 치고 서명하고 도보행진하고 노숙하고 노래하고 주먹을 드는 전선의 힘을 공급하는 것은 바로 끊임없는 만남과 토론, 서로서로 상기시키는 것, 각성시키는 것, 현실에 안주하고 지치는 마음을 다잡는 어떤 에너지 공급원이 필요하다는 것에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에너지를 모으는 그릇의 이름이 인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받아들일 수밖에. 동시다발로 수백 명과, 수백의 가정과, 직간접적으로 엮인 많은 사람의 고통을 이간질하고 있는 정부의 악랄함 앞에 서로서로 자기 안으로 웅크리지 않게, 더 마음을 펴게 하는 그릇으로서 인권이 호명된 것이다. 다만, 그 말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활동과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 과정은 바로 지금 세월호 참사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공유하고 전파하면서 긴급한 상황부터 강조하고 절대로 관련된 모든 고통에 주목하고 연대하는 것일 게다.

인권이라는 큰 그릇 안에 칸을 나누어 조금 더 구체적인 생명권, 시신을 수습할 권리, 모욕을 당하지 않을 권리, 긴급하게 생계를 지원받을 권리, 언론의 왜곡에 구제될 권리 등등 수많은 각론의 권리가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궁극에는 진실에 총체적으로 접근할 권리가 충족될 때까지 그 모든 인권에 대한 실질적 내용들은 시냇물이 될 테고.

활동의 피로감은 사람을 무겁게 만들고 말수가 줄어들게 한다. 일상의 시간은 세월호를 잊고 살자 한다. 가방에 세월호참사 인권실태 조사보고서한 권을 넣었는데 등짝이 뜨겁고 가방이 무겁다. 방학 첫 날부터 새 학기 수업 구상에 들어간다. 학생들은 1학기 인터뷰에서 나에게 물었다. 세월호로 희생된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냐고. 리본을 나누고 수업하다가 어떻게든 세월호로 빠지는 선생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너희들 같아서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깊이 연관되어 있고, 그날 가라앉은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고.

정신없이 하다 돌아보면, 그것이 사랑

인권이라는 말 자체는 공허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천의 맥락. 그 말을 둘러싸고 세월호의 현재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다시금 세월호를 현재화할 수 있었다. 다시 신발끈 매고, 아직 언론에 세상의 관행에 덜 오염된 학생들과 나눌 2학기 세월호 수업을 서둘러 준비해야겠다. 정신없이 하다 돌아보면 그것이 사랑이었듯, 세월호 이후 우리의 모든 노력은 인권이라는 그릇에 담길 것이고, 그 그릇은 어디에서든 서로 다른 감성의 사람들에게 대화의 매개체가 될 것이다. 초보적인 감수성을 이미 상실한 이 나라 입법, 사법, 행정 최정상의 권력집단을 제외하고는. 무엇보다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우리에게는 다시금 왜 이 길을 가는지 서로 이유를 묻는 펌프질이 필요했던 것이다. 두서없다.

 

편집자 주

이번호부터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의 이야기가 연속 기고됩니다잊지 않겠다는 다짐행동하겠다는 약속 4.16인권선언과 함께 지켜요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