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포함해서 본인을 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강의를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일이고요, 영화학을 전공해서 작년에 박사를 끝내고 계속 시간강사를 하고 글을 쓰고 있어요. 공부한 것을 가지고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발기인부터 해서 땡땡책협동조합을 만들고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고, 행동하는 일들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어요. 그렇게 활동하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세월호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사건으로 침몰한 채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계기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모든 국민이 세월호의 당사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말로 당사자인가?”라는 질문을 하거든요. 당사자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이걸 대할 수 있는가가 제일 큰 고민이고, 그 고민 안에서 4.16인권선언 성안팀 활동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2. 인권선언 외에 세월호 관련해서 한 활동이 있었나요?
인권선언 말고는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아요. 광화문 광장에 나가서 가끔 앉아 있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것들을 했어요. 땡땡책협동조합원으로서 했던 것은 문화연대에서 한 기억하는 행동? 정확하게는 이름이 생각 안 나는데, 매주 토요일 4시 16분에 광화문 광장에 모여 책을 읽는 모임을 문화연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조합원 중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고 저는 꾸준하게 나가지는 못했지만 몇 번 나가서 같이 책을 읽고, 매주 책에 어떤 구절을 뽑아서 읽고 나누고 이걸 왜 세월호 광장에 와서 나누고 싶었는지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어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광장공포가 있어서 사람 많은데 못 나가고 어떤 사건들이 터져도 몸을 움직이는 편이 아니거든요. 입이랑 머리랑 손가락을 움직이는 편이지. 그런데 그 때 몇 회 나가는 행사를 했어요. 실제로 내 몸이 놓일 자리를 바꾸는 사건이구나, 그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구나라는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3. 추진단에 함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304회의 풀뿌리 토론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세월호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이야기하거나 혁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 실제로 어떤 불같은 계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거나 광장으로 뛰쳐나오거나 이런 단발적인 일들로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요.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태도라든지, “저게 뭐가 되겠어?”라는 태도라기보다는 저런 방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편 그렇게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과 공부하는 사람이 담론을 만지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층이면서 함께 가야하는 것이니까 각자의 몫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도보를 하거나 광장에 모이거나 이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세월호 뿐만 아니라 각각의 사안이 있을 때마다 광장에 나가는 편은 아니거든요. 추진단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중요한 이유는, 세월호를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고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고민을 덜 하는 사람들과 304회에 걸쳐 면면이 만나고 다닌다는 것, 어떤 사건을 팡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는 과정이 사회를 바꾼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4.16인권선언을 쓰기 위해서 토론을 한다는 과정 자체가 시간을 들이고 무엇보다 정성을 들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지금 인권선언을 쓰고 있는 작업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에 저한테 그냥 인권선언을 같이 쓰자는 제안이 왔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거예요. 선언문을 써서 발표하는 것만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선언문을 쓰는 과정이 이렇게 여러 번의 토론을 조직해서 그것들을 모아내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선언문이 안 써져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4. 풀뿌리 토론에 실제로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참가한 토론이 추진단 워크샵과 서대문416네트워크 토론이었어요. 이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이나 세계관이나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인 토론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언어를 충분히 갖추고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아는 사람들과의 토론이라서 제가 배울게 많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지만,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우리가 정성을 들여서 서로 생각이 섞이고 어느 다른 지점으로 가고 있다기보다, 이미 우리는 어느 지점에 가 있는 상태에서 만나서 서로 위로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의미가 없다는 게 전혀 아니고 토론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서로 위안을 받기도 하고 에너지를 받을 수 있지만, 제가 304회 풀뿌리 토론을 상상했을 때는 세계관을 바꿔내는 작업이 컸던거죠. 그래서 그런 재난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국가주의, 발전주의라는 우리한테 일상화 되어있는 세계관을 뒤집어서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써 인권선언이 힘을 가진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 사고방식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의미가 클 거라고 상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풀뿌리토론에서는 저와 이미 비슷한 자리에 와있는 분들이 많구나, 내가 훨씬 배울게 많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학교에서 늘 가르치니까 어딜 가도 알려줘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풀뿌리 토론에 가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지난번 서대문 토론에 갔을 때 강의를 했는데, 내가 지금 다 알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같은 이야기들을 반복하고 있고 이분들에 비해서 고민이 얕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강의하느라 힘들었고, 실제로 강의 끝나고 토론 시작했을 때도 재차 확인했던 것 같아요. 고민이 훨씬 깊은 분들이 와있구나. 그런 우리를 서로 확인하는 것도 토론의 의미라는 생각을 그 때 했고, 서대문 토론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그냥 토론으로 끝난 게 아니라, 앞으로 구체적로 어떤 실행, 실천을 할 건지 그 자리에서 또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고 일정까지 정하는 거였어요. 진짜 곳곳에서 촘촘하게 다양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구나, 세월호는 끝나지 않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5. 인권선언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사실은 최근까지 선언이 뭐가 됐으면 좋겠다는 그림은 없었어요. 안 나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과정에 충실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인권운동이 아니라 여성영화제 같은 데에서 문화운동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운동의 성격자체가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영화를 통한 여성주의 문화운동이라는 것은 영화를 소개하고, 극장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운동이 새롭게 시작되는거죠. 우리는 영화를 보여줬고 그 사람의 삶의 변화는 우리의 손을 떠난 문제인거죠.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게 되거나 삶의 변화를 얻거나, 관객의 몫으로 남은 운동을 해왔어요. 인권선언도 안 나와도 그만이고 과정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보니까 그런 문제는 아닌 거 같고, 명백하게 304회의 토론을 통한 결과물이 선언문으로 나오고 이 선언문이 앞으로 이런 재난이나 위기가 터졌을 때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명백한 기준이 되는 문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선동하는 선언문이었으면 좋겠고, 분노하게끔 했으면 좋겠고, 굉장히 부조리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가진 선언문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풀뿌리 토론이 전부 진행이 안 된 상황이고 올라오고 있는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는데, 이걸 보면서 이 토론에 참여하는 분들은 무엇을 원하는지의 결을 읽어야할 것 같아요. 굉장히 아름답고 도발적이면서 선동적인 선언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6. 앞으로 풀뿌리 토론을 할 추진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추진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몇 번 토론에 가보기도 했고 토론결과물을 보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이라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가 거의 흡사하고 그나마 제일 참신한 게 ‘박근혜에게 수첩을 뺏을 권리’ 같은 것인데, 그게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상상력을 펼쳐야 하는 것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다른 참가자들도 그렇고 “신자유주의가 문제야, 자본주의가 문제야” 이렇게 말하는 건 쉽잖아요. 그런데 배가 가라앉은 것에는 신자유주의적 작용이 있었다고 하기보다는, 이런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토론 안에서 나오면 제일 근사한 일일 것 같거든요. 그게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인데, 앞에서 강의를 해버리면 제가 가진 생각과 제가 뱉어낸 말이 토론에 스며들거든요. 마이크의 영향력이 그런 것이라고 고민을 했어요. 워크샵도 했고, 토론의 가이드도 있기 때문에 토론이 진행되는 거지만, 어떻게 보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나 새로운 권리에 대한 상상력을 좁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슷한 것이 올라오는구나 생각하면서. 그래서 토론에 오시는 분들의 틀을 깨는 완전히 새로운 상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토론을 우리가 상상해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아주 다른 선언문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어느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에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포착할 수 있으면 풀뿌리 토론부터 시작해서 선언문이 나오는 과정 안에 제일 빛나는 순간이지 않을까. 앞으로의 운동에도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