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라는데, 왜 나는 나의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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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라는데, 왜 나는 나의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수 없을까?
  • 진보네트워크센터 신훈민 활동가/변호사
  • 승인 2015.12.1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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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소송, 주민등록법,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등 생소한 단어로 글을 써야 한다. 웃기고 민망한 이야기부터 하겠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13자리 주민등록번호(이하, ‘주민번호’)1975년에 도입되었다(그 이전에는 12자리). 올해로 딱 40년이다. 지난 1112일 오후 2시에 헌법재판소에서 주민번호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주민번호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이 제도가 헌법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꽤 의미 있는 공개변론이다.

 

당일 아침에 변호사들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 모였다. 마지막으로 리허설을 했다. 이미 여러 차례 회의를 했으니 별 문제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만큼 고민한 변호사는 없다. 자신감을 갖자. 민변 근처에서 설렁탕 먹고 헌법재판소로 떠났다. 4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가볍게 커피 한잔 하면서 만담을 나눴다.

공개변론이 최소 2시간이고 더 길어질 수도 있는데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쩌지?” “설마요.” “그래도 긴장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잖아.” “만에 하나 공개변론 중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영상촬영하고 있는데, 재판정 한가운데를 가로 질러서 나가야 할 겁니다.” 몇몇 변호사는 커피를 안 마셨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은 1년에 다섯 번 정도 열린다. 4명 내외의 변호사가 참석한다. 지금 변호사 1만 명이 넘으니, 이들이 모두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을 경험하려면 500년이 걸린다. 변호사들 입장에서도 특별한 경험이다. ‘다른 소송과 달리 긴장하면 어쩌지라는 고민할 법도 하다.

공개변론이 1시간 50분 쯤 지난 후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책상마다 물이 놓여 있는데, 진술할 때 입이 말라서 물을 너무 많이 마셨다. 점심은 설렁탕, 이뇨작용을 촉진하는 커피, 그리고 계속 물 마시기. 긴장 여부를 떠나서, 물을 너무 많이 마셨고 카페인 섭취로 인해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수가. 주님, 이러지 마십시다. 공개변론에 누를 끼칠까봐, 바른 자세로 50여분 동안 이를 악 물고 버텼다. 50여분 동안 많은 장면이 스쳤다.

주민번호가 끊임없이 유출되어, 이 글을 읽는 당신을 포함하여 모든 국민의 주민번호가 유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출된 주민번호로 인하여 신분도용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를 해결하려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찾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11년 처음으로 주민번호 변경을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13년에 헌법소송을 제기했다. 20141월 카드회사에서 1억 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1~2월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대통령조차 주민번호를 대체수단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주민번호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부터 유출된 주민번호 변경까지 폭넓게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약 2년 동안 이 이슈에 결합했다. 인터뷰도 많이 했고, 글도 많이 썼다. 토론회 참석하고, 필요하면 토론회를 직접 기획하고, 의견을 모아 법안을 만들고 검토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헌법소송도 제기했다.

주민번호는 생년월일, 성별, 출생지, 출생신고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생산년도, 특성, 생산지, 생산순서다. 우리가 물건인가?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아니다. 12자리 주민번호가 도입되었던 1968년 언론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람에 대해 번호를 붙이는 것은 사람을 사물과 같이 다루는 격이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해한다(1968. 경향신문 사설).” “헌법상의 개인의 권리를 행정사무의 도구처럼 희생시키는 것. 인권옹호를 생명으로 삼는 일반인의 법감정에 반하고, 이러한 방법이 간첩색출에 과연 성과가 있을지 의문이다(1968. 동아일보 사설).” 포르투갈 헌법 제35조 제5항에서 모든 국민에게 단 하나의 고유번호를 할당하는 행위는 금지한다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화장실 못 간다. 재판정을 가로질러 당당히 걸어갈 수 있지만, 지난 2년간 애지중지 다뤘던 이슈인데 어찌 오점을 남기겠나. 공개변론이 끝나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천천히 퇴장한다. 3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지난 2년보다 길었다. 급히 뛰쳐나가는 모습이 촬영되지 않았기만을 기도한다.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공개변론 영상은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 최근선고·변론사건 -> 변론동영상)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현장(출처 : 헌법재판소 공개 영상 캡처)

 이하에서는 지난 4년간 토론회와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 오갔던 내용을 종합하여 문답식으로 정리한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조 제1호에서 개인정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를 말한다.우리는, 즉 개인은 개인정보에 대한 폭넓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헌법에는 이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고 한다. 쉽다. 단어 그대로 개인정보를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주민번호 변경은 내 정보를 내가 변경하지 못한단 말인가?’ 라는 상식적인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 개인정보에 기반하여 주민번호를 구성하는 것이 큰 문제인가?

: 큰 문제이다.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노출시킨다. 개인을 식별하기 위해서 개인정보를 사용할 필요 없다.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로 된 번호를 부여해도 된다. 전국적인 전산망이 없던 시절에 주민번호 중복 부여를 막으려고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주민번호를 만들었다. 생년월일·성별·출생지역·출생신고순서로 주민번호를 부여하면 전국적인 전산망이 없어도 중복 없이 번호를 생성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중복은 더 이상 문제꺼리가 아니다. 카드나 통장번호 발급과 다를 바 없다. 나이, 성별, 지역 차별이 주민번호로 기인한 것은 아니지만, 주민번호가 그런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 인터넷에 유포되었던 전라도 홍어 검색기가 대표적 사례이다. 주민번호에 포함된 출생지역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역으로 주민번호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페이스북에 공개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50%정도의 주민번호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 유출된 주민번호에 따른 현실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 이름, 주소, 전화번호, 통장번호 등 모든 개인정보를 바꿀 수 있지만, 주민번호만은 불변이다. , 주민번호를 중심으로 모든 정보를 엮을 수 있다. 주민번호라는 KEY값이 있기 때문에 편리하지만, 개인의 모든 정보가 통합 관리된다는 위험이 있다. 게다가 불법채권추심, 심부름센터의 사생활 조사, 이동통신사·초고속 인터넷사의 가입자 모집 마케팅, 대출사기, 카드사·보험사의 모집마케팅, 명의도용이나 보이스 피싱 등 2차 피해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주민번호를 도용하여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수십 곳의 병원에서 마약류 처방을 받고 약을 받은 사례가 있다. 마약류 처방자로 기록이 남으면 당사자에게 피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 담배꽁초를 버렸다가 걸렸을 때 다른 사람의 주민번호를 댄 사례도 있다. 과태료 납부까지 이어졌다. 모든 국민의 주민번호가 유출되었기에 명의도용으로 인한 피해는 누구나 죽을 때까지 감수해야 한다.

 

: 주민번호 변경을 가능해지면 간첩 식별 등 국가안보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가?

: 아니다. 주민번호는 인터넷을 통해서 전 세계로 유출되었다. 북한은 당연히 우리나라 모든 국민의 주민번호를 확보했을 것이다. 중국, 일본 등 한국에 관심이 있는 모든 나라가 우리나라 국민의 주민번호를 알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유출된 주민번호로 인하여 유사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행자부(당시 안행부)에서 꾸렸던 주민번호제도 개편을 위한 비공개 전문가 TF’에서도 유출된 주민번호를 바탕으로 국가행정망을 운영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지적하며, 주민번호 전면 개편에 현실적 제약이 있다면 유츌된 주민번호 변경이라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유출된 주민번호를 변경하지 않고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더 위협이 된다. 최근 많은 이슈가 이념 논쟁에 휘말리지만, 주민번호제도 개편은 이념 논쟁에 휘말린 적이 없다. 유출된 주민번호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

 

: 주민번호를 변경해주면, 본인 식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 생기지 않는다. 일본이 가장 최근에 국민식별번호를 도입했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한국의 사례를 들면서 반발했다. 일본 정부가 우리는 한국처럼 하지 않는다. 개인정보가 없는 임의숫자로 된 번호를 부여하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변경해주겠다. 한국처럼 되지 않는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고 한다. 일본 이외에도 주민번호와 같은 국가식별번호를 변경할 수 있는 나라가 많다. 독일과 프랑스는 주민증번호를 10년마다 일괄 갱신한다.

UN은 한국을 전자정부 1위 국가라고 했다. 다른 나라는 변경하면서도 잘 지내는데, 우리만 왜 유독 본인 식별 문제를 고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사 다닐 때마다 주소를 신고하는데, 주소 추적이 안 되는가? 공인인증서는 1년마다 재발급하지만 과거 내역을 모두 추적할 수 있다. 지금도 한해 2만 명이 주민번호를 바꾸고 있다. (생년월일 등 오류로 인한 주민번호 정정으로 유출로 인한 변경과 다름. 연금, 퇴직 등이 문제되어 주민번호를 정정함) 그러나 이로 인한 개인식별 문제는 보고된 바 없다.

 

: 범죄자 신분세탁이나 사회적 혼란은 없겠는가?

: 없다. 일반인들은 주민번호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식별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주민번호를 알려주는가? 일반적인 식별 수단은 이름이다. 주민번호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식별하려면 주민번호를 대조할 수 있는 DB가 있어야 하는데, 일반인들은 애초에 그럴 능력이 없다. 범죄자 신분세탁 우려는 정부만 잘하면 되는 일이다. 다른 나라는 되는데 우리만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주민번호 변경 이후 절차는 이름을 변경한 이후 절차와 다르지 않다. 2010년 전후 한해 16만명이 이름을 바꾸고 있다. 이로 인해서 사회적 혼란이 초래된다는 보고도 없다.

 

: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공공, 민간분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주민번호를 사용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변경으로 인한 피해가 크지 않겠는가?

: 주민번호 변경과 이름 변경에 따른 후속 절차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는 앞서 했다. 이름이 더 널리 쓰인다. 주민번호 변경이 이름 변경보다 위협적일 이유는 없다. 그리고 작년에 주민번호 수집법정주의를 시행한 이후 금융, 의료를 제외하고는 민간 부분에서 주민번호 수집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정부는 모든 망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주민번호 변경에 따른 후속작업을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미 2008년 정부가 주도하여 주민번호에 오류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괄 정정 사업을 진행한 경험도 있다.

 

: 모든 국민의 주민번호를 변경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겠는가?

: 우려할 만큼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구 번호와 신 번호를 연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프로그램 개발 비용은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의 비용은 새로운 주민등록증 발급하는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은 주기적으로 재발급했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비용이라 보기 힘들다.

그리고 비용이 문제가 된다면 새롭게 번호를 부여 받을 신생아, 번호 변경을 희망하는 사람들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수십년 안에 주민번호 자체로 인한 문제점도 제기될 것이다. 점차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 수십년 안에 주민번호 자체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 1999년에 문제되었던 Y2K를 기억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2100년이 되면 우리나라만 주민번호로 인해 비슷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주민번호 첫 자리 문제이다. 주민번호 첫 자리가 다 찼다. 0·91800년대 남녀, 1·21900년대 남녀, 3·42000년대 남녀, 5·61900년대 외국인 남녀, 7·82000년대 외국이 남녀에게 부여했다. 2100년이 되면 더 이상 부여할 번호가 없다. 0·9를 다시 부여하는 것은 기록상 중복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해결책이 아니다. 새로운 주민번호 부여 방식이 필요하다. 후대에 떠넘길 숙제가 아니다. 주민번호 변경제도 도입 등의 논의가 이루지고 있을 때 개인정보 없는 임의숫자로 된 주민번호를 부여하면서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20141월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주민번호제도 개편을 위한 토론회가 많이 열렸다. 변경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전문가를 찾기가 힘들었다. 매번 화기애애한 토론회였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 정부 측 전문가가 출석했다. 말을 빙빙 돌리기만 했을 뿐, 유출된 주민번호 변경의 필요성에 대해서 부정하지 못했다. 공개변론 영상 확인하시면 된다.

임의번호 부여와 변경제도 도입을 넘어서, 지금과 같은 통합식별번호 체계를 버리고 필요한 영역별로 번호를 도입해야 한다. 해킹이든 내부자 유출이든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은 항상 감수해야 한다. 유출되더라도 지금과 같이 모든 정보가, 그리고 그 정보를 엮을 수 있는 주민번호가 유출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주민번호의 역할을 축소하고 공공, 민간 가리지 않고 고유 영역별로 개별 식별번호를 사용해야 한다. 서울대교구에서 주민번호 대체 고유식별번호를 부여하기로 한 것도 좋은 변화이다.

 

산업이 발전할수록 개인정보는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국가와 기업이 개인의 정보를 필요로 한다.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개인정보가 주민번호라는 유일불변한 번호에 통합되어 있으면, 우리는 국가와 기업 앞에 벌거벗은 채로 지낼 수 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개인정보 통제권 확보에서 출발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