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사 붐이다. 작년 11월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국정 교과서의 집필 방향을 밝히는 가운데 상고사를 강화하겠다고 이야기한 뒤부터다. 당시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동북아 역사왜곡을 바로잡고 한민족의 기원과 발전을 올바르게 기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후부터 상고사 관련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논란은 ‘상고사’라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한다.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시대 이전을 통칭해서 고대사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고조선이 중국본토를 지배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이들은 고대사 이전을 떼어서 ‘상고사’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상고사 주장에 대해 그간 무대응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학계는 정부의 상고사 강화 정책을 계기로 상고사 논란에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최근 계간지 <역사비평>이 이들을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고, 한국고대사학회도 고대사에 대한 학계의 통설을 설명하는 ‘고대사 시민강좌’를 열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아예 매 분기마다 '한국 상고사의 쟁점'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첫 토론회가 열렸는데, 토론회장 안에는 고성과 야유가 가득했다고 한다.
상고사 논란의 중심에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있다. 그는 최근 법정에서 명예훼손 선고를 받았다. 자신의 책에서 고려대 김현구 교수가 쓴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를 두고 식민사관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의 지지자들이 ‘학문의 자유 침해’라며 사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
이덕일과 그의 지지자들은 일찍부터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제작 사업에 대해 문제제기해왔다.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은 고대에서 근대까지 한민족의 영토를 시대별로 지도에 표기하는 사업이었다. 2008년부터 47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 국책사업이었다.
이덕일 등은 중국동북공정에 대항한다던 취지와 달리 결과물이 중국 측 주장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고조선 지역에 세워진 낙랑군의 위치가 요동이 아니라 평양에 그려졌기 때문에 고조선의 영역을 그만큼 축소시켰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역사학계의 주류가 식민사관을 버리지 못해 <환단고기>식의 상고사 서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난해왔다. 이덕일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노론이 식민지 시기 친일파를 구성한 중심 세력인데, 이들 노론 출신 친일파들이 아직도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환단고기>식의 상고사를 신뢰하기 어려운 까닭
상고사 논란은 어느 쪽으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문헌이나 유물 같은 사료가 아직도 부족하기 때문에 상상으로 빈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쟁점이 되는 사료를 해석하기 위해선 웬만한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진입장벽도 높다. 다만, <환단고기>식의 상고사를 주장하는 이들이 ‘동북공정 적극대처’, ‘민족말살 위기’, ‘북한 급변 시 개입근거’ 같은 이유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과하다고 느끼기에 개인적으로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노론 출신 친일파가 역사학계를 장악했다는 식의 음모론을 주장하는 걸 보면 그들의 다른 이야기들도 믿기가 어려워진다. 총독부의 조선사 편찬에 참여한 조선인 역사학자의 조상이 노론이었고, 친일파 중에 노론이 많았다는 것인데, 이 같은 논리대로라면 전주 이씨나 안동 김씨가 식민사관의 뿌리라고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노론이 식민사관의 뿌리라는 주장은 조선판 프리메이슨 음모론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프리메이슨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 3분의 1이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고 주장한다. 프리메이슨이 미국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나 노론 출신 역사학자들이 한국의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 모두 그렇고 그런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
<환단고기>식의 상고사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이 급속히 크게 된 배경으로 유신정권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를 꼽는다. 1973년 국정 교과서 체제가 출범하자 소위 재야학자들이 국정교과서의 영향력을 느껴 결집했다는 것이다. 1974년 한국고대사학회가 국사교과서에서 단군의 위상을 축소한 점 등을 지적하는 성명서를 낸 것이 상고사 논란의 시작이었으니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다.
역사학계의 바벨탑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비판은 이덕일과 그 지지자들을 비판하는 선에서 멈춘다. 『환단고기』 식의 상고사가 얼마나 비과학적이며 정치적인지 이야기할 때 보여주던 시원함이 끝에 가선 뭔가 찜찜함을 남기고 만다.
이러한 역사학자들의 경향은 <역사비평>에 실린 기경량 강원대 강사의 ‘사이비 역사학과 역사 파시즘’이란 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환단고기>식의 상고사가 자료를 조작하고 대중선동에 주력한다는 점에서 ‘사이비 역사학’라고 비판한다. 또한 그들이 정치권의 힘을 빌어 자신들의 주장을 교과서에 넣으려 한다는 점에서 ‘역사 파시즘’도 우려한다.
그는 국정교과서가 이러한 움직임을 자극해서 상고사 논란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상고사를 둘러싼 논란은 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나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처럼 국책사업이 진행된 직후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었다. 국가의 힘을 등에 업고 쌓은 바벨탑을 '유사역사학'이 탈취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벌어졌던 갈등이었다.
그런데 기경량은 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동북아역사지도 제작 사업은 적극적으로 보호한다. 국가가 나서서 ‘정전(canon)’을 쓰는 사업이라는 점에선 두 사업이 전혀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국정교과서가 단 하나의 ‘올바른 역사’를 요구하기에 문제라면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사업 역시 마찬가지 위험이 있다. 국가가 나서서 제작하는 지도는 교과서처럼 정전 역할을 할 것이다. 마치 국가가 나서서 단 하나의 ‘올바른 지도’를 강요하는 것과 같다.
학계 교수들이 ‘사이비 역사학’의 공격으로부터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사업을 지키려다가 오히려 학문적 원칙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작년 4월 국회 동북아특위에서 독도 표기가 빠진 부분에 대해 추궁을 당하자 지도제작에 참가한 책임자는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과거 자료에서 독도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더라도 현재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선 그려 넣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곧 반영되었고, 사료에서 언급되는 것과 관계없이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박스로 묶여 강조되었다.
사정이 이쯤 되면 저들에게만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이야기하기가 곤란해진다. 이런 모순은 일차적으로 역사학계에게 있다. ‘사이비 역사학’에 대해서 공격을 할 때는 더할 시원하지만 정작 역사학의 본령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
역사학계든 유신정권이든 이덕일이든 누구나 국정교과서, 동북아역사지도 같은 바벨탑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힘을 손에 넣으려 안간힘을 써가며 무리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고사 논란에서 보듯 그러한 힘 싸움이 학문의 근간을 갉아먹는다. 학계가 자신의 바벨탑을 끌어안고 놓지 않으면 영원히 소모적인 갈등만 반복될 것이다.
*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논란이 되었다. 연이어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이 당사자의 요구와 오랜 운동의 결을 살피지 않고 막무가내로 진행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역사란 무엇이고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 글을 시작으로 연속기고로 다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