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알려주지 않은 32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일어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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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알려주지 않은 32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일어난 일들
  • 김기원 (유엔인권정책센터 활동가)
  • 승인 2016.08.31 0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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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우리나라가 유엔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 의장국이 됐다며 세간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외교부는 “(대한민국이) 세계 인권 증진에 기여해 온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며 자축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권이사회를 처음 들어보는 듯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상황은 인권과 관련한 정부의 국제적 처세와 국내적 상황 간의 괴리를 일면 본뜬 것이었다. 여전히 국내 사회구성원들은 국제적 차원의 논의와 그 결과들에 대해, 그리고 한국 정부의 국제적 입장과 활동 내용에 대해 제대로 정보를 제공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인권이사회에서 보여진 국제적 흐름들

지난 1일 폐회한 32차 인권이사회에서도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6월 회기는 여성인권에 집중하는 시기로, 여성폭력과 여성차별, 트래피킹을 개별적으로 다루는 회의들과 더불어 여성인권에 관한 연례 종일토론도 진행됐다. 올해는 개발권선언 채택 30주년과 새로운 개발의제의 채택이 맞물리면서, 성평등과 여성 및 여아의 권한강화에 관한 5번 목표의 이행을 위하여 특히 여성 빈곤과 동등한 경제 참여, 여성폭력 철폐, 성적 및 재생산적 건강과 권리의 보장,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가 부각되었다.

 

5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분쟁도 여전히 뜨거운 논의 의제이다. 폭력적 극단주의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 이번 회기에서는 근본주의와 분쟁 상황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그 위험성이 증대되는 트래피킹이 다뤄졌다. 이슬람권 국가들은 특정 종교를 표적한 논의라며 방어적 입장을 취했지만, 바로 이러한 오해가 편견과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유엔 특별보고관들은 폭력적 극단주의와 근본주의가 종교와 무관하지는 않으나, 오로지 종교적 이유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차별과 배제, 불평등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이 결국 뿌리에 있는 문제이며 다양한 사회구성원과 집단 간의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 자유와 민주적 가치들이 더욱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는 역으로 국가 안보의 명목으로 그를 위축시키고 있는 국가들의 테러방지 전략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점차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또 하나의 큰 흐름은 온라인 상에서의 인권 보호이다. 지난해 프라이버시권에 관한 특별절차 신설에 이어, 이번 회기에서 의사표현의 자유는 온라인상 표현의 규제, 감청과 디지털 보안의 문제 등을 다뤘고 교육권은 디지털 격차, 디지털 기술과의 상호 영향 및 관계에 집중해 다뤄졌다. ‘인터넷 상에서의 인권 증진, 보호 및 향유에 관한 결의안(A/HRC/RES/32/13)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 결의안은 모든 국가들이 기본적으로 오프라인 상에서의 모든 권리를 온라인 상에서 동등하게 보장하고 디지털 문해와 젠더 격차를 개선하며, 특히 장애인 접근성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방해 공작에도 이번 회기에 통과된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기반한 폭력과 차별로부터의 보호에 관한 결의안(A/HRC/RES/32/2)은 그 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표현해내기 어렵다. 이로써 유엔 내 최초로 성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공식적인 절차가 생겼다. 여전히 국제적으로 논란이 존재하는 이슈이나,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는 너무도 명백한 문제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하여 그 어떠한 이유도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

 

물론 모든 국제인권규범은 차별금지사유에기타의 지위(other status)’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 아동, 이주민, 장애인, 노인, 그리고 최근엔 알비니즘을 가진 사람들까지 특정 집단에 관한 절차들이 굳이 만들어져야했던 이유는 동일하다. 결과적으로 부차적이고 단편적으로, 그리고 산발적으로 다뤄질 뿐, 포괄적이고 심도 있게, 그리고 전문적으로 문제를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를 보장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국가들의 아량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과 존엄한 삶의 문제다.

 

 

▲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관련 결의안 투표 결과

 

한국 정부 발언은 그림의 떡?

이번 회기에서는 올해 초 한국을 방문한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최종 보고서 발표도 있었다. 한국 정부는보다 정확한 언급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 바빴는데, 핵심은 집회·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국내법은 국제기준을 준수하고 있으며 (작년에 딱 4번만 한) 물포 사용과 정당 해산 등의 국가행위는 적법하고 정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정부의 발언 내용에 일일이 대응하기 보다, 특별보고관이 한국 인권·시민단체가 주최한 부대행사에서 직접 얘기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시위에 대한 권리는 특권이 아니라 권리이다.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권리가 아닌 특권이 되는 것이다. 권리는 국가가 주는 선물이 아니다.

둘째, 평화적 집회에 대한 권리는 개인적 권리이다.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개인들이 집단으로 모이는 것이다. 이는 내 동료가 폭력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나는 나의 권리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역할은소수가 공격적이었으므로 해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사람들은 분리하되 다른 이들은 권리를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폭력적인 시위는 없다. 오직 폭력적인 시위들이 있을 뿐이다.

셋째, 시위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폭력적인 시위자들은 집회에 대한 권리에 따른 보호는 잃을 수 있으나, 여전히 다른 권리는 유지한다. (일례로) 생명에 대한 권리는 유지한다. 물대포도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되는 것이다. 물대포를 사람들에게 쐈을 때, 반드시 폭력적이지 않은 사람도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사용이 물대포가 잘못된 이유다.

넷째, 국가와 경찰의 역할은 권리의 행사를 촉진하는 것이다.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특별보고관의 권고사항을 최대한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 대신, “유념하고충분히 고려할 것이라는 한국 정부의 답변에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외 이번 회기에서 한국 정부는 전반적으로 발언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여성폭력에 관한 주제회의에서는 “(여성) 폭력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회의에서 국내 인권단체들은 최근 발생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에 비추어 정부가 여성혐오와 그에 기반한 폭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현실과 기본적으로 여성폭력에 대한 법적 정의와 포괄적인 자료수집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을 비판했다. 또한, 당사자와의 협의 없이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한일위안부합의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현재의 대응이 무관용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라면, 한국 정부는 더 나아가 무자비해져야 할 것이다.

 

더 세심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인권이사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데, 함께 갔던 동료는 다른 것보다 제네바의 대중교통 체계에 감동했었다. 물론 장애인 접근성이 거의 완벽하게 보장되는 것도 대단히 놀라운 일이나, 그가 주목했던 것은 다름 아닌 문 열림 버튼이었다. 내리겠다는 신호만 보낼 수 있는 우리나라 버스와 달리, 제네바의 버스와 트램에서는 이용자가 버튼을 누르면 주행 중인 때를 제외하면 언제든 문이 열린다.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버튼을 눌렀는데도 정거장을 지나치는 통에 소리쳐 다시 세우거나, 출입하는 과정에서 문에 부딪히거나, 문이 닫힐까바 허둥지둥 서둘러야 하는 법이 없다. 어려운 일도 아니며 큰 차이도 아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저 사람들이 보다 안전하게, 존중 받으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관점을 달리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권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적어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