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변화를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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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변화를 상상하며
  •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 승인 2016.09.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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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쇄신 연속기고1.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한국을 다녀가신 지, 이제 꼭 2년이 되었다. 교종께서 방한 기간 동안 남긴 주옥같은 어록들 중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되어야하고 변두리의 사람들과 연대해야한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을 다시 떠올려 본다. 당연하고 마땅한 말씀이면서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하는 그 말들이 나의 몸과 마음을 움직여 주기를 바라면서 그 말씀을 계속 기억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겨우 2년 만에 한국 교회와 한국 사람들은 그토록 열광했던 교종의 메시지들을 다 잊은 듯하다. 물론 나 역시.

프란치스코 교종은 선출 직후부터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즉위 초기부터 다른 교종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우면서도 파격적인 행보가 그 관심과 사랑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시리아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와 함께 단식기도를 바치는가 하면 사제, 수도자, 신자들에게 동성애자들과 이혼 또는 낙태한 사람들 등 그동안 가톨릭교회에서 외면하고 죄악시 대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심과 돌봄을 당부했다. 3살짜리 난민 아일란의 죽음을 목격한 전 세계가 급작스레 난민 문제에 관심을 보이며 호들갑을 떨면서도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고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교종은 로마 교구를 시작으로 유럽의 모든 교구들, 종교 공동체들, 수도원들이 난민 한 가족씩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지침을 내렸다. 언제나 자비롭고 따뜻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는 공허하기 마련이었던 종교의 언어를 훌쩍 넘어선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교회 안에 문헌으로만 존재하던 가톨릭 정신이라는 것이 드디어 현실에서 구현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교종의 모습을 보고 말씀을 듣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교회는 여전히 교종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을까

 

짧은 방한 기간 동안 교종께서 보여 주신 진심과 열정은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우리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는 한 문장만으로도 교종께서 한국사회에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충분했다. 그동안 수많은 갈등의 공간에서 마치 중립을 지키는 중재자의 모습을 하고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눈감고 귀 닫으며 모른 척 했던 한국 가톨릭교회에 대한 꾸지람은 아니었을까. 가난하고 약한 자들, 쫓겨나고 내몰려 고통 받는 이들의 편에 똑바로 서있으라는 교종의 준엄한 가르침을 한국 가톨릭교회는 과연 제대로 듣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가 다녀간 자리, 그가 잡았던 손, 그가 말한 '정의와 평화', '연대와 사람중심'의 정신을 우리 교회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과연 누가 교종처럼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고 있는 가 말이다. 이렇게 더 무거운 책임과 더 진지한 고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음에도 교종 프란치스코를 따라 세월호 가족들과 소외된 이웃들 곁에 왔던 카메라들과 관심은 이미 멀어져갔다. 우리 교회는 어떻게 다시 세상과 사람들의 시선을 가난한 사람들곁에 붙잡아 둘 수 있는지, 그들의 곁을 지키면서 힘과 지혜를 모아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오래전부터 교회의 성찰과 쇄신을 이야기 해왔다. 이제는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생각과 대안을 제시하면서 동의를 구하며 변화를 도모해야한다. 가톨릭교회 공동체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아마도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교회안의 문제들을 드러내는 일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교회의 근간을 흔들어야 하는 커다란 담론들은 끈질긴 노력과 수고를 들이면서 변화시켜나가야 하겠지만 할 수 있는 일들도 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교회 안의 노동의 문제이다.

무엇보다 교회 안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떠한가에 대해 솔직하고 엄격한 점검이 필요하다. 교회내의 수많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계약직, 파견노동 등의 실태는 어떠한가 조사하고 차별이나 부당한 점들은 없었는지 살펴야 한다. 노동조합이 자리 잡지 못하는 교회 내의 오랜 관습을 몰아내고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하여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떨지 않고 노동기본권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 교회의 많은 성직자, 수도자, 자매, 형제들은 해고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철거민 등을 비롯한 소외되고 내몰리는 이웃들의 곁을 지키며 함께 울고 함께 비를 맞아왔다. 많은 현장에서 가톨릭교회의 연대와 노력은 큰 감동을 만들었고 문제 해결의 계기를 제공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가톨릭교회가 교회 내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커다란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아닐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나아져야 하는 부분들을 개선하고 더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고 1년 만에 서울시의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서울시에 재정 파탄이 올 것이라고 저주하던 보수언론과 재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울시는 망하지도 않았고 아무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해보지도 않고 해봐야 소용없다는 사람들이 지켜 온 것은 우리 사회가 아니라 결국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이다.

 

가톨릭교회가 인권과 만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가는 행복한 상상

 

만일 다가오는 추계 주교회의에서 한국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모든 학교, 병원, 출판사,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을 없애기로 하고 그 실태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된다면 모든 일간지 1면과 방송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 할 것이다. 기업과 경영자들은 반발하겠지만 곧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가톨릭교회 공동체가 먼저 교회 안에서부터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이 없도록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네버엔딩 겨울이 끝나는 날은 분명 당겨질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성소수자들에 위한 사목방침을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이들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로 한다면 이 땅에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던 가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설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너무 낭만적인 상상일까. 아니다. 가톨릭교회가 인권과 제대로 만나 새로운 전성기를 시작하는 행복한 상상이고 설레는 기다림이다.

여전히 막강한 국가권력은 마음대로 국민들을 통제하려하고, 잡아가두고, 윽박지른다. 거대 자본들은 이윤을 위해서 온갖 방법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는 다양화되고 변화하면서 인권도 함께 진보하고 있다. 그래서 시대의 변화, 사회의 발전에 걸 맞는 인권이 우리사회에 꼭 필요하다. 권력이나 자본을 가진 이들이 구색 맞추기나 생색내기로 한번 씩 끼워 넣는 인권이 아니라, 어떠한 정권도, 어떠한 자본도 침범할 수 없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인권이 절실하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과정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고 변화를 이끌 힘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 위에 군림하는 권위적인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한다고 끊임없이 당부하시는 교종 프란치스코가 한국 가톨릭교회에 던져 준 쇄신의 기회는 교회 내에서부터 사람을 섬기는 인권을 실천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 교회와 인권은 이 글을 시작으로 5회에 걸쳐 사제, 수도자, 평신도 그리고 교회 밖의 목소리를 통해 교회 쇄신에 대한 진단과 제언을 들어보고자 연속 기고를 기획했다. 아마 초대교회부터 화두였을지 모르는 교회 쇄신에 대해 한번 더 깊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