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야학, 20년의 기록
상태바
노들야학, 20년의 기록
  •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 승인 2016.09.13 0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 '노란들판의 꿈'

언젠가부터 올해의 책이라는 걸 뽑기 시작했다. 다독가도, 유명인도 아닌 내가 올해의 책이라니. 특별한 기준도 아무 파장도 없는 일이지만 몇 해가 쌓이다보니 아 그 해하는 마음이 몽실 책과 함께 떠오르는 재미에 연말이면 늘 한권씩 추려봤다. 2014, 마음 둘 곳 모르고 흘러가던 애도의 시간을 채워준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까치수염)였다. 2013년의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봄날의 책)2015년의 <재난, 그 이후>(알에이치코리아)의 사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는 희망과 절망이 롤러코스터처럼 교차하는 일상의 치열함에 대한, 입으로만 달고 살았던 배움과 공존에 대한 묵직한 고민을 던져준 책이다. 노들야학 20년의 이야기를 품은 이 책이 올해 <노란들판의 꿈>(봄날의 책)이란 이름으로 새 단장을 했다.

 

노들야학. 듣기만 해도 설레고 벅찬 이름이다. 노들야학이 언젠가부터 내게 익숙한 이름이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선명한 것은 90년대 말 2000년 초기, 군부 정권과 절연한 정권의 등장과 함께 대부분의 시민사회운동이 정책 중심의 합법화된 운동을 지향했을 때, 하여 거리에선 불법과 비합법의 운동이 철지난 운동인냥 손가락질 받았을 때, 노들은 유행에 한참 뒤쳐진 사람처럼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폴리스 라인을 넘었다. “, 박경석은 정말 또라이야!”라며 귀찮은 듯 궁시렁거리던 말과 달리 회심의 미소를 짓던 선배와 함께 찾아갔던 서울역 광장의 이동권 농성장은, 매주 대학로 로타리에서 진행했던 중증장애인 버스타기 캠페인에 일반 시민인척 기사아저씨, 좀 기다렸다가요를 외치곤 했던 그 순간은, 내게 설레임이었다.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 장애인들이 몸을 통해 날리는 한방이 통쾌했고, 반듯한 셔츠에 구두로 갈아입은 운동사회에 여전히 티 쪼가리와 운동화를 고수하던 우리가 옳다는 증명 같았다. 취재차 검정고시를 보는 노들 식구들의 뒷꽁무니를 하루 종일 쫒아 다녔던 날도, 욕창으로 입원한 이들을 병문안하고 나와 병원 바로 앞 포장마차에서 아 이 좋은 술을 같이 못 마시네하고 중얼거렸던 시간도, 한 겨울 대학로의 천막 야학에서 시린 발 구르며 나눴던 정담도 내겐 잊지못할 노들과의 추억이었다. 하지만 내 설레임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내 추억 뒤에 선 그들의 일상은 어떠했는지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인권활동가였던 나는 그들을 안다고 생각했고, 그들과 평등하다고 믿었고,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울고 웃었었기에 한편이라 생각했다. <노란들판의 꿈>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낭만으로 함께 살 순 없다

 

무지로 여문 낭만은 쉽게 깨어졌다. 채 서문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자 홍은전은 이 책에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노들의 일부이면서 전부인 그 이야기들을 기록하면서 최대한 많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노들에서 굴러다니는 온갖 말들을 엮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적었다. 나를 설레게 했던 노들 식구 중 그 누구의 이름을 나는 알았던 걸까? 세어보니 채 열 몇 손가락. 대부분 상근자로 채워진 이 목록 속엔 가파른 언덕을 올랐던 학생들은 이름보단 그들의 장애로, 표정으로 각인돼 있었다. 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묻지 않았을까? 아니 분명 묻고 들었을텐데 왜 기억하지 못할까? 사람에겐 태어남과 동시에 이름이 붙여진다. 이름을 통해서야 비로소 고유성을 가진 존재로, 사회적 존재로 호명되기 때문이다. 노들엔 긴 백발의 교장선생님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내 무의식의 밑바닥에도 노들을 구성해온 건 상근자들이었다고 생각해왔던 건 아니었을까? 좀 더 쉽게 의사소통 가능한 이를 대화상대로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자신의 인생 위에 노들을 얹은 사람만큼이나 청춘의 한마디를 끊어서 야학에 바친 이들을 있었기에 노들이 지금 여기까지 왔음을 잊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 안에 무수한 으로만 남겨진 그이들의 얼굴에 가슴이 벌렁였다.

 

추억 속에서 내가 기억하고 있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30분 늦는 것을 이유로 우리의 선로점거가 비난 받아야한다면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30년 넘도록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우리 사회는 함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차별에 저항하라”, “장애인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와 같은 구호가 아니었을까? 그 속에서 장애인들의 일상은 어디쯤 있었을까? 차별을 넘어 공존을 외쳤지만 공존은 무엇으로 실천 가능했던 것일까? 노들에서 가장 건네기 어려운 말이 식사했어요?”라는 흔해 빠진 일상의 안부였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알았다. 활동보조가 없거나 절대적인 활동보조 시간의 부족에 노들에서 하루를 보내야했던 학생들은 일상적으로 밥을 굶었다. 수업과 업무에 치인 상근자들은 늘 상 활동보조를 자임할 수 없기에 도둑 밥을 먹거나 아예 밥 먹기를 포기했다. “저기라는 장애인의 풀 죽은 부름에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했던 비장애인이 함께 치러야했던 화장실 전쟁. 하루가 아닌 일 년 365일 곱하기 스무 해. 그 수 천 일을 함께 살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애인의 속도를 인정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경쟁과 효율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장애인이 노동할 공간을 만들고, ‘느린 사람과 함께 활동하기 위해 비장애인들이 더 빨라져야하는 현실을 수긍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함께 신나게 놀자며 모꼬지를 기획했건만 상근자는 봉사로 하루가 다 가고, 학생들은 그림의 떡이 되어버린 해수욕장 혹은 놀이시설 앞에서 모꼬지의 후일담은 학생과 상근자들이 법정에서 서로 원고와 피고로 만나야했던 살벌한 경험이 되었다. 이들이 함께 살아내야 하는 노들의 일상엔 낭만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모두가 안녕하지 못했으므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설 자리가 없었다는 노들의 교실과 복도에 떠돌았을 수많은 말들과 마음들. 그것들 중 나는 무엇을 알고 공존을 외쳤던 걸까? 우리는 한편이라 말했던 걸까?

 

일상과 배움 그리고 운동의 합주

 

홍은전은 노들을 관통했던 일상에 대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실패를 시인한 것, 그 조건 위에서 결코 함께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것 뿐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그리고 평등하게 함께 놀고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서로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덜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구조적 차별에 대한 저항을 시작했다. “끈끈한 관계가 아니라 단단한 구조를 만들기 위한 모의. ‘마음의 변덕스러움을 견딜 근육을 길러야한다는 어떤 의지들이배움을 교실 밖으로 나서게 했다. 일상을 바꾸는 실천들은 매 순간 노들이 선 모든 자리를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투쟁은 배움을 실천하는 장이 되었다. 하지만 교육이 절대 눈감지 말아야할 것과 운동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을 마주하며 노들이 걸어왔던 시간들은 늘 단단했던 것이 아니다. 매 순간 흔들리고 머뭇거렸고, 주저앉고 돌아서다 다시 정면을 응시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이어온 길이었다. 하여 <노란들판의 꿈>에 촘촘히 담긴 이야기들은 노들야학 20년의 이야기를 뛰어넘는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마주한 일상에 대한 증언이며, 공존을 고민하고 실천해온 수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헤쳐나온 값진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사람다운 삶과 공존을 고민하는 이라면 꼭 한번 손에 쥐고 깊이 음미해야할 이야기다.

 

, 이 소중한 기록이 장애 활동가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도 힘주어 말해야겠다. 학자들이 장애를 학문적 성취의 사다리로 삼는 사이, 현장의 실천적 개입보단 프로젝트에 골몰하는 사이, 배움과 실천은 하나여야한다 믿어온 장애 활동가들은 그 바쁜 틈새를 쪼개 그들 스스로를 기록했다. 김도현의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2007, 메이데이), <차별에 저항하라>(2007, 박종철출판사)가 진보적 장애인식과 장애운동에 대한 기록의 포문을 열었다면, 홍은전의 <노란들판의 꿈>은 그 결실 위에 더욱 깊은 성찰과 생동하는 인간의 향기를 더했다. ‘장애를 주제로 한 논문은 수 만권에 이르지만 변변한 장애 관련 책이 없는 사회에서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에 이은 <노란들판의 꿈>은 누구의 손에 들려도 좋은 매우 훌륭한 장애 입문서이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읽을 수 있는 명서처럼 말이다.(내 말이 과해보이지만, 당신도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내 말에 깊이 동의할 수 있으리라)

 

책 군데군데 밑줄과 메모가 쳐졌다. 노들과 장애운동 20년에 대한 경의지만, 볼펜 끝엔 노들야학 교사 홍은전에 대한 존경이 함께 배었다. 그의 솔직하면서도 유쾌한 시선, 완숙하면서도 담백한 글쓰기는 이 책을 통해 발견한 또 다른 수확이다. 재능 있는 이야기꾼 홍은전이 책 곳곳에 숨겨놓은 교육과 운동, 일상과 공존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당신도 이 책을 통해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