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일본국가에 의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자행된 참혹한 성폭력 피해를 겪은 여성들은 이제 머지않아 한 세기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고통을 껴안은 채 모두 삶을 마감해야 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반면에 가해자인 일본정부는 피해자들과 국제사회의 기대와는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특히 2012년에 아베 총리가 재집권한 이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각료와 공인들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 거듭됐다. 아베 총리는 공식적으로 '위안부' 강제성을 부인하고, 내각결의를 통해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으로 결의했다. 교과서 검정 기준을 바꾸어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는 일도 감행했다.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피해자들의 권리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
그런데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간 외교장관회담이 열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양국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결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피해자 중심의 접근(victim-centered approaches) 원칙과 국제사회의 권고가 무시당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이며, 일본정부는 마땅히 피해자들에게 범죄인정과 진상규명,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 책임자처벌과 역사교육, 추모사업, 망언에 대한 반박과 재발방지조치 등을 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한일 합의에는 이러한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합의에는 피해자가 배제되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이 전혀 수용할 수 없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모호한 인정과 사과가 이루어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가적 범죄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성노예제였다는 사실도, 불법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군이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주체'였음을 확인하는 문서를 일본정부에 제시했지만 일본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즉, 무엇에 대한 정부의 책임인정인지 확인할 수 없는 그런 합의였던 것이다. 모호한 인정 위에서 이루어진 대독사과 표명 역시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법적 책임이 결여된, 배상이 아닌 '돈' 10억 엔 재단출연금은 제2의 ‘아시아여성국민기금’ 방식이었다. 이것은 이미 1995년에 피해자들이 반대했던 것이었다. 기시다 외무상은 회견 후 재단출연금에 대해 "배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하면서 법적 책임을 부인했다. 일본정부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도, 따라서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지도 않은 것이다.
넷째, 후속조치는 없고 향후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위한 재단을 한국정부가 설립하고 일본정부가 자금을 출연하기로 함으로써, 그 후속 조치의 의무를 피해국 정부에 떠넘기고 있다.
다섯째, 가해자가 내건 부당한 조건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조건이 되어버렸다. 피해자를 형상화한 평화비 앞에서 진심으로 사죄하기는 커녕 그 역사를 제거하라고 요구하면서 협의를 진행한 것 자체가 부당하다. 더불어 이번 합의에서는 양국 정부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비판과 비난을 자제하겠다는 약속도 이루어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이와 같은 비극의 재발을 방지해야 할 책임이 가해국과 피해국 쌍방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조차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더욱이 양국정부가 이 부당한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결국 이번 합의가 일본정부의 조건부 사과이자 양국 간 정치적 담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여섯 번째, 국제사회의 권고와 인권원칙에 비추어서도 이 합의는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 그동안 유엔인권기구들과 국제 전문가 및 NGO들이 일본정부에 요구했던 사항들은 이번 합의에 반영되지 않았다.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제사회가 규정하고 결의한 인권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번 합의는 피해자들을 다시 한 번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정부는 합의 이후에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보고서로 제출하는 등 지속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실을 부정하고, 법적 책임을 부정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피해자들과 정대협이 국내외 여론을 형성하며,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의 인권회복을 위한 모범사례를 만들며 활동해 온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놓고 말았다. 광복 70주년에 피해자들에게는 해방의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벽 앞에, 더 깊은 질곡 속에 빠지게 된 것이다.
12.28 일본군‘위안부’ 한일합의 무효화와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활동
이처럼 12.28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의 인권을 저버린 정치적 담합일 뿐이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으며 이를 결코 일본정부의 사죄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대협을 비롯하여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YMCA, YWCA 등을 비롯한 400여 개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많은 시민들은 이렇게 피해자들을 배제하고, 피해자들의 요구를 무시한 이번 합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한일 일본군‘위안부’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전국행동”을 결성하여 전국 각지에서 12.28한일합의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 지원과 진상규명 및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 등을 시민의 손으로 해나가겠다는 결의를 모아“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약칭:정의기억재단)을 출범시켰다. 약 100만여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10억여 원의 성금이 모였으며, 그 힘을 바탕으로 하여 지난 8월 22일 국가인권위원원회로부터 재단법인 인허를 받았다. 이 뿐 아니라 전국 60개 지역에는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평화비 및 기림비를 건립하였거나 현재도 추진 중이며, 대학생들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막기 위해 소녀상 옆에서 매일 노숙을 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연일 한국정부의 굴욕외교를 지탄하며, 12.28한일합의의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지난 12.28 한일합의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피해자들의 외침을 들으며 할머니들과 함께 손을 잡았다.
피해자들은 외친다. “우리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고, 우리가 배제된 12.28한일 합의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일본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여 배상하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피해자들과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일본정부에게 10억 엔의 위로금을 받기 위해 ‘화해와 치유재단’을 설립하였고, 일본정부에게서 돈을 수령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종결지으려 하고 있다. ‘성노예’라는 표현이 일본에 대한 비방중상이라는 아베총리의 발언 이후, 한국정부의 어떤 자료에도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라져 버렸으며 연구, 기념사업 등도 사라지고 있다.
할머니들과 손잡는 20만 동행인
어떻게 해야 지난 12.28한일합의를 무효화하고, 정의로운 해결을 이루어 피해자들에게 명예와 인권이 회복되고, 다시 해방을 이룰 수 있을까? 70년 전, 불처벌로 침묵되고 은폐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이를 통해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법적 배상의 권리가 있음을 확인시키며, 재발방지에 대한 희망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바로 ‘손잡기’이다. 지난 25년 전, 일본군 ‘위안부’라는 중대한 전시여성인권침해를 역사와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낸 것은 한국정부가 아닌 피해 당사자들과 여성들이었다. 25년 동안 일본으로, 유럽으로, 미주지역으로, 유엔으로 각국 의회와 정부로 직접 찾아다녔다. 1992년 1월 8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첫 번째 수요시위는 어느 새 24년이 지나 25년째 진행되고 있다.
나비기금을 만들어 콩고와 베트남 등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 성폭력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으로 같은 아픔을 겪은 여성들과 손잡았으며, 일본지진피해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는 여성들을 위해서도 속옷과 생리대(15,000달러) 등을 지원하며 손잡았다. 이제, 그 긴 세월동안 포기되지 않았던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피해자들과 우리 모두가 손을 잡을 때이다. 다시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전국행동, 세계행동이 필요하다. 정의기억재단 활동으로 정부가 하지 않아도 시민이 한다는 기적을 열어갈 때이다. 유엔의 요구를 무시한 한일합의에 대해 다시 유엔 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운동이 필요한 때다. 손잡기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이루어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이루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다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같은 전시성폭력 피해자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연대가 힘이라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지난 25년 동안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라시다 만주(Rashida Manjoo) 유엔인권이사회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은 그녀의 보고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을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배상운동 중 가장 체계적이고 충분히 입증된 운동”으로 평가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에 대한 무시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하였다. 이제 우리 손잡기로 그 차별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배상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