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립희망원 인권침해 비리와 천주교대구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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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희망원 인권침해 비리와 천주교대구대교구
  • 임성무 도미니코 (전 대구정평위 사무국장)
  • 승인 2016.11.30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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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쇄신 연속기고③
10월 24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립희망원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엄중한 조치를 촉구했다.ⓒ에이블뉴스

  

루가복음 16장에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가 나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중략)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중략)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부자는 라자로에게 자신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만 먹게 했다는 것이다. 부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먹을 것을 나누어주지 않았으며, 밥상은 차치하고서라도 밥그릇에 담아서 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나눔이나 자비의 문제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생존권을 침해한 것이다.

 

최근 노숙인과 장애인 복지시설인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침해 등으로 혼란스럽다. 그것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할 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대구시민이 준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설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의 밥에서 뒷돈을 남겼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일도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인권침해의 숨은 원인인 돈 욕심에서 비롯되고 있다. 돈에 눈 먼 이들이, 가난한 이들의 밥그릇을 빼앗을 수 있는 인간이 가난한 이들의 복지시설을 운영해온 부정과 비리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신부가 원장이고, 수녀가 회계 담당 책임자인 곳마저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세상에 믿을 곳이 어디란 말인가?

교구 일부에서는 희망원 운영 수탁을 대구시에 반납해버리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문제의 팩트를 밝혀내고, 관련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고,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 원인을 찾아서 고치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기본이 아닌가? 원인이 관료주의인지 사람인지, 관리감독 소홀의 문제인지, 감사시스템의 문제인지, 복지에 대한 썩어빠진 정신의 문제인지, 가난한 이들을 존중하는 태도의 문제인지 찾아내고 제대로 책임을 지려고 해야 하지 않는가?

 

가장 가난한 이들의 밥에서 뒷돈을 남겼다는 것

 

희망원에서 7년째 조리사로 근무 중인 김미경 공공운수노조 대구시립희망원지회 부지회장은 처음 입사할 당시 입소자가 1,200여 명이었고 조리사가 9~12명이었다. 우리 인력으로는 식사를 준비하기 힘들었는데, 생활인 아저씨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분들 임금이 당시 7만 원이었다며 새로운 임금 착취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국민의 당에 희망원이 낸 식단표를 보니 컵라면과 식은 밥이 나갈 때는 꼭 소불고기라고 기재돼 있더라. 소불고기는 우리가 원장님께 의문을 제기한 후 딱 한 번 나왔다우리가 물품을 받고, 검수하고, 조리했기 때문에 제가 한 말은 진실이 100%. 대구시에서 지금까지 성의없는 감사에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 분명히 밝혀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뉴스민 2016. 10. 20)

 

“10년 이상 근무하면서도 희망원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곳이라 여겼습니다. 저는 복지사인데, 생활인 개인 용돈 사용할 때 사전 허락도 받아야하고, 영수증 처리나 10원 틀려도 엄청 주의를 받았습니다. 선풍기를 하나 구매하는데도 비교 견적서 요구하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시설에서 과거 부원장이 있을 때 희망원의 실세는 부원장이었고, 그 뒤로 간부들은 줄을 서서 살았고, 관료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는 대구시 공무원들이 운영했던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했습니다.

특히 가톨릭 신부님과 수녀님, 간부, 공무원 등의 인맥으로 채용된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복지 마인드를 갖고 살아가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윗선에 눈치만 보고 대충 편하게 지내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새로운 직원들도 그 분위기에 동화되고 생활인들에 대한 서비스보단 직원들 간의 관계가 더욱 중요한 분위기... 생활인들이 시설병에 걸린 것보다 직원들이 더 심각한 시설병에 걸렸습니다. 다른 생활시설과 달리 노숙인시설의 열악한 인력문제가 면죄부가 되어 생활인들의 인권문제는 허공의 메아리 같은 소리였습니다. 저도 희망원 구성원이기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희망원 노동조합원이 보낸 글)

 

죽은 이들도 살려내는 예수님은 보지 않고, 죽을 때가 된 사람들이 들어와서 많이 죽었고, 그 중 겨우 몇 명이 인권침해로 죽은 것을 가지고 시민단체나 언론이 부풀려 이야기 한다는 말을 퍼트리고, 사제나 교구의 잘못을 지적하면 먼저 삐지거나 투덜거리고, 교회에서 평신도들에게 말하듯이 시민들과 언론을 상대로 품격도 없이 막말하는 사제들이 있는 교구. 회계과장인 수녀가 이중장부를 꾸미고, 원장인 신부가 결재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밥그릇에서 수억을 횡령했는데도 이를 밝혀내지 못하고 보호하는 교구.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조를 만들고 문제를 제기하자 노동조합 간부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정직 3개월 징계를 하면서, 교구정평위 사무국장에게 노조를 막고 노사협의회를 하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하는 사제들이 있는 교구. 기껏 자료를 제출했음에도 잘못의 일부만 인정하고, 그것도 인권침해는 일부 직원들의 잘못이고, 썩은 사과는 어쩌다 나온 것이고, 횡령은 납품회사가 빼돌린 것이며 영양사는 그걸 잘 몰랐을 뿐이라는 시설을 관리하는 교구. 골프장을 운영하고, 신부들이 언론사 사장이나 기관장이 되면 지방 정부 기관장과 어울리기 위해 골프를 배워둬야 한다면서, 그렇게 만난 세상 권력과 어울려 호가호위하고, 문제가 생기면 이들 권력들의 힘을 빌려 막고, 그러면서 신자들에게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그러냐며 변명하는 교구. 문제가 생기면 모두 교구장에게 떠넘기고 침묵하고 뒤로 숨어서 교구장 입만 쳐다 보고, 심지어 뒤에서 욕만 하고, 아무도 나서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교구. 그러면서 교구 권력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사제들의 말만 들으려 하는 교구장이 있는 교구.

 

하느님께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가 아니라

교구를 구원하실 예수를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 할 형편이다

 

지금 이 교구는 교구 100년사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고 꾸짖고 가난한 이들과 정의를 위해 핍박받는 이들을 보호해 주어야 할 교회가- 자신들이 행한 비리와 인권침해로 국가인권위 조사를 받고, 지방정부의 특별감사를 받고,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급기야 세상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왜 사제들은 책임지지 않는가? 왜 아무도 예수가 되려 하지 않는가? 평신도들은 좌불안석이다. 교구가 스스로 이를 쇄신하지 않는다면 교황님께 감독관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느님께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가 아니라 교구를 구원하실 예수를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 할 형편이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대구대교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이 부끄러움을 이겨낼 구원자를 보내 주소서.

 

나는 대구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주요 원인들을 가톨릭과 매일신문이 주도하고 심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교황청과 마피아들과의 관계를 걱정한 것처럼 대구가톨릭 커넥션을 의심하고 있다. 나는 6년 전부터 작년까지 이름뿐인 대구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교육운동을 하는 동지들에게 미안했지만, 교회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이 소임을 맡고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교회가 특수사제직인 신부들로만 이끌어지는 것이 아니라, 귀족 평민으로 불렸던 시절의 언어인 평(?)신도가 가진 말을 넘어 보편사제로서의 평신도의 소명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정의평화위원회에 참여하는 어느 신부의 SNS에 댓글로 우리가 나서야 할 때라고 썼더니 나서서 뭐 할건데요?”하고 물으셨다. 나는 교구 욕이라도 실컷 해주어야지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대구 정평위는 급기야 정평위 활동을 하는 신자들에게 희망원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분들은 모두 SNS 소통방이나 모임을 그만두고 가만있으라는 것을 결정해서 통보 했다. 정평위조차도 아무런 말을 못하는데 평신도인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질 수 있으려면,

비판하고 비판받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냉철하고 엄격하고 단호하다. 하지만 친한 사람이거나 친한 조직이 잘못을 한 경우에는 지나칠 정도로 너그럽거나 비판을 하더라도 이리저리 추상적이거나 에둘러 표현한다. 바로 분리불안 때문이다. 심할 경우에는 이런 이들이 리더로 있으면 사적관계에서 겪는 분리불안이 공적 판단까지 흩트려 버린다. 그런 상태에 있으면서 냉정하게 공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더 불안을 느끼며 방어하기에 바빠지고 흥분한다. 바르게 비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오히려 온정을 앞세워 그러지 말라거나 당장 그만두라고 말한다. 이런 관계 분리불안을 겪는 사람들이 마음이 홱 돌아서면 누구보다 심한 배신감을 겪으면서 온갖 욕을 쏟아 내거나 크게 상처를 입는다. 이혼하는 부부나, 정치인들이나 자본권력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가톨릭 커넥션이라는 말에 집중하면서 시립희망원이나 매일신문, 대구교육청을 살펴보면 가톨릭이라는 관계가 그런 것 같다. 하느님의 말씀이나 교회의 문헌은 사라지고 오직 관계가 어떻게 될까 싶어 할 말도 못하고, 심지어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비호하고 과대 포장하고, 모른 척 해버린다. 물론 착한 시선으로는 더 온순한 방법이 없나하고 신중하게 모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이나 정의는 사라져버리고, 진리는 그저 불의한 관계를 유지하는 포장지로만 쓰고 있다. 분리불안이 장애가 되어 문제해결을 그르치거나 악한 행위를 덮어버리게 되어 정의나 약자가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버린다. 정의를 위해서는 결국 이런 분리불안장애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한 관계일수록 누군가 불의한 일을 행하거든 두려워하지 말고 공동선과 정의 평화 생명의 가치를 우선하여 당당히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관계도 회복될 수 있다.

 

최근 대구시립희망원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그 여진이 매일신문을 강타했다. 매일신문 41기 이하 46명의 기자 전원이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처지가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경영진을 비판하고 나섰다. 기자들은 지난 1년 간 침묵으로 일관했던 시립희망원 문제에 대한 첫 보도가 일방적인 해명기사였다교구의 입장 대변이 언론 윤리와 매일신문 구성원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기자들은 이어 매일신문은 대구대교구의 사적 재산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무슨 해석이 필요할까?

최근 대구평화방송에서도 편성을 책임지던 피디가 사장 신부로부터 감봉 3개월 징계를 받았고, 제 발로 나가라고 한 뒤에 나가지 않자 보직을 강제로 빼앗더니, 이제는 업무태만으로 징계를 하겠다고 하고 있다는데, 나는 할 말이 없다.

 

대주교님은 교구민과 시민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사과의 진정성은 눈에 띄지 않는다. 몇 달간 교회와 세상의 문 역할을 해 온 나로서는 이제 별 방법이 없다. 이제는 내가 교회를 떠나든지, 하느님께 매달리는 길 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