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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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 박동호 (서울 이문동성당 주임신부, 천주교인권위 이&
  • 승인 2017.01.1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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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쇄신 연속기고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이러려고 대한민국의 시민이 된 것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을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국체가 민주국체이며 정체가 공화정체인 나라라 한다. 다시 국체를 찾아보았다. 나라의 사정 · 상태나라의 체면국가 주권의 소재에 따라 구별한 국가의 형태(민주 국체 · 군주 국체로 나눔)”라고 나와 있다. 절묘하게 우리의 현실을 모두 담았다. 우선 나라의 사정 · 상태가 엉망이다. 그리고 나라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마침내 민주국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속았다. 뼛속까지 군주 국체를 믿는 이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리가 직접 내세운 인물과 그가 간택한 무리들이 말이다. ‘민국으로 적고, ‘왕국이라 불렀단 말인가?

다시 정체를 찾아보았다. 국가의 조직 형태. )민주정체통치권의 운용 형식. )입헌 정체라고 나와 있다. ‘공화를 찾아보았다. 공동 화합하여 일을 함두 사람 이상이 모여 공동으로 정무를 시행함. )전제라고 나와 있다. 다시 공화국을 찾아보았다. “공화 정치를 하는 나라라고 나와 있다. ‘공화정치를 찾아보았다. “주권이 국민 합의체의 기관에서 나오는 정치라고 나와 있다. 한마디로, 국체건 정체건 오늘의 우리 상황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역시 사전은 사전일 뿐인가? 상식은 몰상식 때문에 빛을 발하는 법인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흔히 우리 사회를 고도압축성장을 이뤘다고 평가하는데, 바로 여기서 그 근원 가운데 하나를 찾고 싶다. ‘고도압축이란 말은 과정을 생략했다는 뜻이다. 모든 분야에서 정당한 과정상식이 누락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정이 생략되니 지혜를 모으기 어렵다. ‘지혜를 모으는 과정을 낭비라고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다버린다. 그 대신 수단방법가리지 않는 일이 상식이 되어버린다. 목표만 달성하면 그만이다.

 

고도압축성장 사회- ‘고도압축이란 말은 과정을 생략했다는 뜻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다. 교회는 믿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일련의 규범을 형식적으로 준수한 결과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 존중, 정치생활의 목적이며 기준인 공동선에 대한 투신과 같이 민주주의 발전에 영감을 주는 가치들을 확신 있게 수용한 열매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07)

우리는, 아니 정직하게는,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인간의 존엄인권그리고 공동선이라는 가치 실현을 내다버렸다. 대신 경제성장을 노래하라고 다그쳤다. 그런데 인권과 존엄, 그리고 공동선은 경제성장으로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으로 다른 사람의 품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하다. ‘헬조선이니 금 수저흙 수저니 하는 말들은 으로 사람을 저울질하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며 실재이다.

 

수단에 불과한 권력이 그 자체로 목표가 되어버린 형국

 

모든 사람 그리고 전인으로서 한 사람의 귀함은 시민의 의식과 신념뿐만 아니라 문화와 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시켜야 할 정신적 가치, 숭고한 가치이다. 인간의 존엄과 인권, 그리고 공동선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믿음이 확고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사회의 정의로운 질서’, 혹은 인간 존엄함 증진을 통한 공동선의 실현라고도 한다. 이는 모든 시민의 책임이다. 특별히 그 임무를 맡은 사회 영역을 우리 교회는 정치라고 한다. 정치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정치를 두고 고도의 사랑의 예술이라고까지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의 정치는 그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기보다는 오로지 권력의 정치만을 쫓았다. 수단에 불과한 권력이 그 자체로 목표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그러니 겉으로는 민주주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데도 과 그 왕을 섬기는 신하들이 군림하는 시대를 겪는 것이다.

 

부패는 보통사람의 희망을 꺾고, 가장 약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게다가 이들은 경제적 이익권력에의 욕망이 결합하여 경제 및 정치권력을 독점하려 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소수의 폐쇄적 지배집단을 형성하여 다수의 시민을 주변인으로 내몰았다. 마침내 시민은 전근대로 유폐되어 평민과 천민으로 전락된다. 물론 그들은 불법적수단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다. 결국 극단의 이기적 개인주의로 무장한 폐쇄적 지배집단이 우리 정치공동체(나라)를 점령한 것이다.

이를 교회는 정치적 부패라고 하고, 세상에서는 정치의 실패라고 한다. “민주주의 제도의 가장 심각한 결함 가운데 하나는 도덕 원칙과 사회 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는 정치적인 부패이다. 정치적 부패는 국가의 올바른 통치를 위협하며,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간추린 사회교리, 411)

 

부패와 맞서려면 현명함과 분별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부패를 두고 하느님의 보복을 불러오는 중죄라고까지 단언하며, 정의의 길로 돌아오라고, 법정에 자수하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이 부패와 맞서려면 현명함과 분별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격려하면서, 부패와 맞서지 않는 것이 곧 공범이라고 경계한다. 교종이 부패를 단죄하는 이유는 그 부패가 보통사람의 희망을 꺾고, 가장 약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는, 선량한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과 연민과 연대의식 때문이다.(칙서 자비의 얼굴, 19)

 

정의에 의해 통치되지 않는 국가는 강도떼다

 

우리는 국가의 실패, 정확하게는 정부의 실패, 더 정확하게는 관료의 실패, 더 정확하게는 소수의 관료, 특히 소수의 권력자들의 실패를 목격하고 있다. 실패의 원인으로는 무능탐욕의 부패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그들의 무능과 탐욕 곧 권력에의 욕망은 경제 권력과 손을 잡았다. 경제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불법과 탈법의 수단까지 동원했다. 교회는 이를 두고 죄의 구조들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가 구조화되어버릴 때,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시민’, 하느님의 백성이 짊어진다. 이 부패와 죄의 구조가 일상이 된 그 곳에서 인간의 존엄과 인권, 그리고 공동선은 숨을 쉬기 어렵다. 이것이 우리가 고통스럽게 겪고 있는 현실이다. “정의에 의해 통치되지 않는 국가는 강도떼다라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시민은 강도떼를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길거리에 내버려진다.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나 있을 수 없으며, 비켜나서도 안 된다.”

 

이 때 우리의 고결한 몫이 있다. 소극적으로, “교회는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을 위하여 국가체제를 점령하고 폐쇄된 지배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도와주면 안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406)

적극적으로, 이 시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과 행실이 우리의 모범(영성)이 되어야 한다.(바오로 6, 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연설 중)

보다 더 적극적으로,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나 있을 수 없으며, 비켜나서도 안 된다.(베네딕토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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