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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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 윤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 승인 2017.07.10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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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이라고 줄임말로 많이 부릅니다)는 장애인의 자유와 평등, 지역사회에서의 존엄한 삶을 위해 2007년부터 활동해왔습니다. 2007년 이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했던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20128월부터 시작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지하역사 농성을 1700일 가까이 진행하며 나쁜 두 제도를 없애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4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하지만 365일 중 이 날 하루만 장애인을 배경 삼아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사진 찍는 날을 거부하고, 동정과 시혜를 넘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이 권리로 보장되기 위해 우리는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로 선포하고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을 꾸려 싸워왔습니다.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선언한 3대 적폐 폐지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장애인의 몸에 1~6급의 등급을 매기는 것이 장애등급제입니다. 한국에만 있는 장애등급제에는 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장애인의 필요와 욕구는 삭제된 채 의료적 관점의 신체정신적 손상만으로 수급 여부와 양을 결정합니다. 장애인복지예산이 OECD 국가 평균의 1/3도 되지 않는 한국에서 장애등급제는 장애인복지예산을 늘리지 않고 선별적 복지서비스를 극대화하려는 복지코르셋입니다. 이 나쁜제도는 사람을 죽입니다. 20년이 넘게 시설에 살던 송국현 씨는 동네에서 살고싶어 탈시설을 했지만,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 신청부터 거부당했습니다. 재심사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그가 장애3급으로 혼자 일상생활이 충분하다고 판정했습니다. 그리고 10일 뒤 혼자 있는 사이 집안에서 불이 났고 도망가지 못해 2014417일 숨졌습니다.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

부양의무제는 가족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 이상일 때 실제 부양여부와는 관계없이 수급자의 수급비를 삭감하거나 수급권 자체를 박탈하는 수급권 선정 기준입니다. 이 제도는 가난한 서로에게 짐이 될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부양의무자가 부양할 수 없다는 것을, 가족관계가 가난으로 완전히 파탄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관계에 대해 공무원에게 수차례 설명하고 증명하여 벌거벗은 나를 드러내게 하는 제도입니다. 복지가 모욕의 대가가 되도록 만들고, 가난을 사회가 아닌 가족에게 책임지우는 가난의 연좌제인 부양의무제는 지금 당장 없애야 할 제도입니다.

 

침묵과 죽음의 공간, 장애인수용시설

대구시립희망원은 지난 6년간 309명이 이름없이 죽어갔습니다. 이런 평균을 내는 것조차 끔찍하지만 희망원에서는 연평균 46.9명이 시설 내에서 죽었습니다. 그 악명 높은 형제복지원의 연평균 사망인원 44.3명보다도 많은 숫자입니다. 현재는 대구시립희망원을 위탁운영하던 천주교 대구대교구 유지재단과 대구시청은 여전히 사건을 축소하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회복지사업법을 제정한 후, 복지법인이 제도화되어 정치권력과 복지권력의 유착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공무원들이 퇴임 이후 복지시설의 임원으로 넘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복지권력은 점점 거대해졌고 사회복지영역을 사유화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정체가 바로 장애인수용시설입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장애인수용시설 내 인권유린 문제에도 문제시설 조차 폐쇄되지 않는 현실이 이를 반증합니다. 거주이전의 자유,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처럼 아주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워지는 공간,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 바로 장애인수용시설입니다. 장애인수용시설을 완전 폐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은 정말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교황 선출 기념미사가 봉헌되고있던 명동성당에서 "천주교는 대구시립희망원 사건 해결에 나서라", "천주교 운영시설에서 2년간 129명 사망.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글이 적힌 현수막을 펼쳐들고 기습시위에 나섰다. (사진_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촛불광장에서 시작된 고민들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이 흘러넘치기 시작했을 때, 온몸이 반응했었습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세상이 당장에 달라질 것 같았고,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싸움들이 어쩌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장애인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장애인운동이 한마디만 던져도 찰떡같이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넘어 중증장애인과 한마디도 나눠보지 않았을 사람들과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었어야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준비되어있었다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촛불의 시기, 전장연은 촛불집회와 여러 투쟁에 연대하고, 이슈가 넘쳐나는 시기에 우리의 이야기가 한 줄이라도 세상에 알려지도록 이슈가 되기 위한선전과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지고 정부와 의회, 정당들에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호소도 하고 압박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100만의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만 소리쳐서 외쳤을까? 왜 광장에 나온 당신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하지 못했을까?’

 

마음이... 급했습니다.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으니 어떻게든 우리의 긴 싸움과 지옥같은 삶과 죽음을 알려내고 싶었지만,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싸움은 규모가 크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집중되는 이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려웠습니다. 100만 촛불 시기에도 이 긴 싸움이 아무 성과없이 다시 휑한 광장에 우리만 남겨질까봐. 그리고 협소했습니다. 조직 테두리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조급함과 두려움, 그리고 협소함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귀를 열고, 바로 내 옆과 저 멀리를 함께 보고, 조직 너머의 사람들에게도 말을 걸고, 서로가 서로를 엮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문제에 맞선다면 세상은 어떤 방식이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촛불에서 얻은 배움입니다.

 

   
 한국천주교의 수장인 추기경 면담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제로 정의된 사람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다시 투쟁을 선언했습니다.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싸우지 않고서는 이 사회가 장애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권력을 이용해 얻은 것은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가난한지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통제와 공포 속에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한 2017420공투단의 3대 적폐 폐지 투쟁은 다시 세상에 건네는 우리의 질문이고, 우리 스스로에게 하는 응답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이 투쟁에 촛불에서 얻은 배움을 잘 녹여내기 위해 역시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지지와 연대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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