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음은 반복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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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음은 반복되는 걸까?
  • 심채린(멍멍)
  • 승인 2017.12.2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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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동갑이다. 나처럼 밀레니엄 베이비 언저리에 태어나 다른 학년보다 반도 많고, 수도 많았을 거다. 나와 같은 날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테고, 중학교에 다니면서는 세월호 사고도 만났을 거다. 아직은 진입하지 않은 어른들의 세상이 미덥지 못했고, 무언가 문제가 많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 봤자 우리에겐 아무런 힘도 없었다. 나도 저항하느라 학교도 그만둬 봤고, 대안 교육도 받았고, 혼자 놀기도 했지만 결국 가을부턴 수능 시험을 준비한다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민호의 죽음을 알고 마음이 떨렸지만 꾹 참고 학원에 갔다. 수능이 코 앞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다음 날, 민호의 학교가 있고 내 집이 있는 서귀포시 일호 광장에 나갔다. 지난겨울 촛불 집회가 열렸던 장소다. 어떻게 피켓을 쓸까 고민하다 애도만으론 무언가 분이 풀리지 않아 대한민국 청소년, 청년에게 미래는 있습니까?’라고 썼다. 엄마와 엄마 친구 몇 분이 민호의 일을 자세히 적어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붙이고,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포스트잇을 두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자보를 읽었고, 추모하는 메시지를 남긴 다음 떠났다. 어떤 학생들은 손난로와 따뜻한 음료수를 사 주기도 했다.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민호는 나와 같은 서귀포에 산다. 그 친구가 다니는 학교는 집에서 멀지 않다. 어쩌면 우린 이 광장 사거리 분주한 틈에서 한 번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원예를 전공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런데 왜 생수 공장에서 기계 관리하는 일을 했을까? 현장 실습이면 전공의 연장이어야 하지 않았나? 너무 늦은 질문이 들었다. 문제는 그렇게도 많은데, 이유는 이렇게도 어이가 없다. 전공도 아닌 일을 고작 일주일 정도 배워서 정규 직원 없이 혼자 일을 도맡았다고 한다. 당연히 교대도, 쉬는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고장도 잦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위험한 현장이 만으로 18세도 안 된 청소년 혼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비극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회사는 설마 사고를 예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회사는 운이 나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듣기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노동 현장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항상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넘어가는 노동은 얼마나 많을까?

 

나와 함께 피케팅을 했던 엄마는 구의역 사고에 관한 글을 적었다. 그때도 청소년은 혼자 일하고 있었고, 이번에도 혼자였다. 죽었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실습생의 안전을 관리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 현장도, 학교도, 교육청도, 정부도 모두 자기 탓이 아닌 것처럼 외면했다. 오직 처지가 비슷한 시민들만이 사고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질문했다. 이번에도 제주도 교육청은 성실하지 않았다.

 

11월28일 故이민호군 추모제ⓒ제주녹색당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과 사고는 항상 1, 2위다. 살기 힘들어 스스로 죽고, 한번 살아 보려다 사고로 죽는다. 어떻게 해도 희망은 어른들의 입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실습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고된 노동, 저임금 등 인권 문제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한 학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습을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왜 출산율과 함께 이야기되지 않는 걸까. 애 좀 낳으라고 말하는 사회도 우습고, 애를 낳아도 안전하게 길러 줄 능력도 없는 사회는 정말 무책임하다. 아이들에겐 그저 교통비 조금 싸게 해 주면 그만이고, 술과 담배를 못 사게 주민 등록증만 검사하면 그만인 걸까. 너희들은 생각이 여물지 않았으니 투표는 좀 더 나중에 하라며, 노동 현장의 대체 인력으로 마구 갖다 쓰면서 시민의 권리는 주지 않는다. 단언컨대 나는 이러한 사회가, 이러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어른들의 욕망이 민호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서귀포 일호 광장에서 피켓을 들었을 때, 포스트잇에 본인이 하고 싶은 말 적기를 했다. 나중에 보니 아무 말도 적히지 않은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다. 많은 문화권에서 할 말이 너무 많아 자신이 가진 종이에 다 옮기지 못할 때 빈 종이를 건넨다고 한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런데 너무 많아서, 할 말을 못 하겠다. 아마도 많은 내 친구들이 그럴 것 같다.

 

민호야, 잘 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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