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환호 속에 시작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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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환호 속에 시작된 비극
  • 정규석(녹색연합 정책팀장)
  • 승인 2018.02.27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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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정신은?”

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는?”

당신에게 평창동계올림픽이란?”

여러분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이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올림픽이 인류 화합과 평화를 위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서구 열강의 우월한 민족의식을 뽐내고, 식민지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직되었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입니다. 백인우월주의를 기본으로 유럽 중심의 패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올림픽이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시작이 그랬다고 지금도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올림픽이 매번 그늘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올림픽 표어 중 하나인 지구촌 한마당이 상징하듯 세계를 더 가깝게 만든 역할은 톡톡히 해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세계사의 변방에 머문다는 자격지심도 일소할 수 있습니다. 금메달이 국위선양이고, 지상과제인 것 같은 분위기가 문제긴 해도 개발도상국들은 올림픽 개최를 통해 잠시나마 지구촌의 중심에 섭니다. 올림픽은 세계사라는 대하드라마에서 매번 조연이었던 누군가에게 깜짝 주연 자리를 보장합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때때로 참혹합니다. 굳이 먼 과거를 들추지 않더라도 최근에 치러진 리우올림픽을 보면 파산, 난민, 폐허의 흔적이 선명합니다. 평창올림픽을 치러낸 우리는 어떨까요? 아직도 찾지 못한 신규 경기장들의 사후활용 계획, 강원도의 재정적자 등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림픽에 열광한 우리가 치러야할 비용은 사실 만만치 않습니다. 한 번 망가지면 되돌리기 어려운 자연 역시 물어야할 값비싼 대가 중 하나입니다.

 

한아름에 안을 수 없는 나무들이 가득합니다. 여느 숲과는 풍기는 기운이 다릅니다. 숲에 들면 한 여름에도 고드름을 볼 수 있습니다. 풍혈지형이라는 특이 지형이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 가리왕산입니다. 우리나라 산 중 자연림을 품고 있는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곤궁했던 50년대~60년대를 거치면서 식량을 위해 잘려나가고, 땔감으로 잘려나가고 도통 산은 남아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간혹 그 엄혹한 시대를 견뎌낸 산들이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가리왕산입니다. 조선의 세종 때부터 나무를 벨 수 없는 봉산(封山)으로 정해져 보호되고, 지금에 와선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산나물 채취도 금지된 곳입니다. 남한에서 유일하게 주목이 자연의 힘으로 새롭게 뿌리를 내리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가리왕산의 비극은 오로지 올림픽 때문입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생태자연도 1·2등급지역, 녹지자연도 9·8등급지역 등 사실 가리왕산은 현행법으로는 개발 자체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하지만 올림픽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법은 모든 법제도를 무너트렸습니다. 10만 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려나간 자리에 지금은 스키 슬로프가 자리합니다. 축구장 110개 규모의 500년 보호림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난 후 복원하는 것이 계획인 1회용짜리 스키장입니다. 최근 강원도, 환경부와 산림청을 비롯한 중앙부처, 학계 전문가 등이 포함된 가리왕산 생태복원추진단에서 가리왕산 복원 범위를 확정했습니다. 곤돌라를 철거하고 슬로프 전 구간을 복원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논란이었던 사후활용 계획에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전히 폭탄돌리기의 연속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복원 예산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올림픽 끝났는데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습니다. 사후 계획이 없기는 다른 올림픽 시설도 마찬가지지만 황폐해진 가리왕산이 방치될까봐 걱정입니다. 그나마 재앙이 교훈이 되기 위해서라도 가리왕산은 무조건 복원되어야 합니다. 비상식적이고 엉뚱한 결정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분명히 직시해야 합니다. 가리왕산의 미래가 우리에겐 분명 교훈이어야 합니다.

 

한강을 거슬러 오르면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갈라집니다. 그리고 남한강을 다시 거꾸로 오르면 정선의 아우라지에 이릅니다. ‘단종애사로도 유명한 아우라지는 두 개의 물길이 만난다는 양평의 두물머리처럼 두 개의 물길이 합쳐진다는 뜻입니다. 바로 대관령의 황병산에서 시작한 송천과 태백의 검룡소에서 시작한 골지천입니다. 이 두 곳이 남한강의 발원지 그리고 한강의 발원지입니다. 송천이 시작하는 황병산은 우리나라 산줄기의 중심인 백두대간 복판입니다. 당연히 보호지역이고 당연히 함부로 개발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름하야 평창 식수전용 댐입니다. 역시나 올림픽 때문입니다. 사실 인구 4000명 남짓인 평창군 횡계리에 식수를 대기위한 댐을 만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입니다. 보름짜리 행사인 올림픽에 제 아무리 사람이 몰려도 그렇지 보호지역에 댐을 만든다는 것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인 아리수를 그 보름동안만 공수해도 충분할 텐데, 백두대간보호지역인 한강의 발원지에 댐을 만든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 역시 올림픽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법으로 초래된 비극 중 하나입니다.

 

20117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외면한 동계올림픽을 대한민국은 환호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총회는 ‘PYEONGCHANG 2018’을 선언했습니다. ‘삼수만의 쾌거’, ‘대한민국의 승리등 언론의 수사들은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합니다. 우리의 그 환호가 이 땅의 자연에겐 분명 비극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올림픽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할 대가들은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들은 부끄럽지만 우리세대를 넘어 미래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쯤에서 여러분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올림픽 정신은?”

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는?”

당신에게 평창동계올림픽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