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선거에서 혐오를 내쫓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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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선거에서 혐오를 내쫓을 때
  • 장예정(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 승인 2018.06.2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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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대한 기억

#1.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대치동에서 대입 논술 특강을 들었다. 3번째 수업에서 지문에 어떤 시가 한 편 나왔다. 시의 제목이나 다른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으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문제를 풀이하며 강사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휴, 안산은 아주 밤에 돌아다니지도 못해, 어두워지면 외노자들이 너무 많아서 무섭거든.” 당황스러웠다. 10명 남짓 되는 학생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어떤 학생은 , 정말요? 와 그런 곳에서 보통 사람은 어떻게 살아요?” 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교실에는 나만 빼고 아무도 이 발언이 불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당장 책을 덮고 선생님 말씀 그렇게 하시는 거 아닙니다.’하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특강은 한 번이 더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엄마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까지는 버스로 1시간정도 걸렸다. 집에 오는 내내 고민했다 이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나. 집에 와서 엄마에게 남은 수업 안가면 안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무슨 일이냐 물었고, 문제지를 꺼내어 이 시에 대하여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다음 수업 가지마.’ 하고는 당장 원장선생님께 전화를 하여 따져 물으셨다. 아무리 사교육이라지만 학생들에게 이런 교육 하셔도 되느냐고. 원장선생님은 사과하셨고 학원 규정상 다음 수업 환불은 어렵고 유료 대입 컨설팅으로 해드릴테니 학원에 한 번 오라고 하셨다. 이것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주민 혐오에 대한 기억이다.

 

#2. 아직 스마트폰이 제대로 출시되기 전 나의 학창시절, 우리는 대체로 인터넷 포털들과 친구의 말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고등학교 시절, 여름이면 N사와 D사의 첫 화면에는 이런 기사들이 걸렸다. ‘변태퍼레이드도 표현의 자유? 퀴어퍼레이드 문제없나?’, ‘눈쌀 찌푸려지는 노출쇼’, ‘아이들볼까 두려워...부모들 걱정이 태산그렇다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었다. 그때는 그래서 그런줄 알았다. 퀴어퍼레이드가 굉장히 음란하고 유해한 행사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퀴어퍼레이드에 가본 사람은 안다 이런 기사들이 얼마나 악의적인지 말이다. 진짜인줄 알았다. 동성애자 때문에 한국에 에이즈가 퍼지는 건줄 알았다. 그 시절에 내가 접한 정보는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혐오가 선거를 만날 때

혐오발언은 손쉽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나와 함께 논술특강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이주민, 외국인 노동자는 어떤 이미지로 머리에 남아있겠는가. 혹은 나처럼 속으로 이 발언을 곱씹고만 있었던, 속으로는 괴로웠던 학생이 이에 대해 반박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넘어간 것이었다면 그에게 혐오발언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겠는가. 감사하게도 나는 그때 엄마의 반응을 통해 잘못된 것은 잘못 되었다 반박해도 된다는 어떠한 가르침을 받았지만 말이다.

혐오가 선거를 만나면 혐오는 큰 힘을 갖는다. 그들은 혐오발언의 힘을 알고 있다. ‘우리를 동성애자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이주민들로부터 우리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이슬람테러종자들로부터 우리의 안위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명목으로 그들은 혐오발언에 국민의 힘을 얹어 달라 호소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런 호소는 늘 일정 정도의 지지를 받는다. 당장 지난 총선에서 혐오를 당론으로 앞세운 기독자유당은 2%대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했다. 불과 1년 전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동성애에 찬성하느냐?’는 질문과 동성애자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에는 반대한다.’는 수준의 대화를 전국민이 생방송으로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대화를 한 이들은 나란히 득표율 1,2위를 기록했다. 이 정확히 똑같은 대화는 며칠 전 제주도지사 후보자 토론회에서도 반복되었다. 그들은 축적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발언이 얼마나 잘 먹히는지 말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주민을 감시해야 한다.’ 등의 발언은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주민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미국에서 재미교포 학생이 총기 난사를 일으켰을 때 미국의 한인유학생들이, 재미교포들이 일종의 배척분위기에 얼마나 압도되었던가. 일제강점기 관동대지진 때에 조선인 때문에 지진이 발생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루머가 퍼지며 공포에 떨었던, 실제로 죽어갔던 무고한 조선인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을 배척하는 말은 실로 폭력적인 힘으로 발현되어 왔다.

 

주님께선 서로 사랑하라 이르셨거늘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 애석하게도 오늘날 혐오발언의 선두에는 예수님을 섬기는 종교가 있다. 그들에게 성경이란 무엇일까. 성경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하느님은 저마다의 흠이 있는 인간들을 아끼고 사랑하신다. 자기 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분을 섬기는 어떤 이들은 세밀한 어떤 대목들을 입맛대로 골라 뽑아 하느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있다. 주일예배(미사)를 한 번이라도 빼먹은 적 없는 자, 사주나 타로를 본 적 있는 자, 돼지고기를 먹는 자, 헌금을 아까워 해 본 자...이들 모두 성경이 지목하는 죄인이다. 주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이르셨건만 그들은 왜 심판자를 자청하며 누군가를 단죄하는 오만을 저지르나.

 

혐오가 선거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면

혐오세력이 혐오선동을 계속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편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의견에 지지의사를 밝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는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에 대해 찬반을 묻는 행태에 대하여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선거철에 혐오선동이 계속 되는 이유가 간단하듯 그들을 쫒아내는 방법도 간단하다. 시민들이 혐오에 항의하고 그런 발언을 하는 후보를 외면해야 한다.

 

지금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를 발족했다. 이번 선거에서 혐오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의 힘으로 이들을 몰아내야 한다. 아니, 시민의 힘만이 이들을 몰아낼 수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2년 후 총선 때도 이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의 선거문화도 혐오발언의 난립과 이에 대해 대응하느라 진을 빼는 수준을 넘어 정책과 비전을 이야기하는 선거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혐오를 몰아내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5월14일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한 성소수자에게 하신 말씀으로 글을 맺는다.

신은 당신을 이 모습 그대로 만들었고 이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행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