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예멘 난민들과 제주사람들 그리고 의로운 사람들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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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멘 난민들과 제주사람들 그리고 의로운 사람들을 위한 기도
  • 신강협(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 승인 2018.08.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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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들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시작된 지 2달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 수많은 대화를 지켜본 많은 이들이 점차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한편 그 장면 이전에, 낯설게 이 땅에 엉거주춤 걸쳐 서 있는 예멘 난민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어색하게 서 있는 제주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눈이 날카롭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도 못했고,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들이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그 이전 장면에서 서 있던 낯선 이들과 이들을 낯설게 받아들인 사람들의 제주지역 이야기는 묻혀 버렸다.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사람들은 제주에 있는 낯선 사람들에게 온갖 죄명을 다 뒤집어씌우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멸시하며 진실로 의로운 사람들과 사이를 갈라놓았다. 오해는 깊어지고 불신이 생기고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실상 매우 다르다. 제주에 있는 사람들은 과연 지금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사람들의 이야기만큼 두려움에 떨고 있을까? 항간에는 제주 전 지역을 경찰이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무슨 전쟁터를 연상시키는 온갖 상상이 전파되고 전파된다. 낯선 이들은 본색을 감추고 뒤편에서 무슨 테러나 범죄를 준비하는 듯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들은 자신들을 두려워하는 한국 사람들이 두려워 자신의 거주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깨는 처지고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하지만 언론들이 다가설 때, 그래도 순수하게 인터뷰에 응해 준다. 제주 사람들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나, 생활하는 데 크게 뭐 달라진 것은 없어서 의아해 한다. 몇몇 사람은 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으나 난민들로 인한 소동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이 불안한 분위기가 빨리 정리되고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길 바라고 있다. 예멘 난민에게 탓을 하고 있지는 않다. 실제 예멘 난민들을 대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아주 편안한 얼굴이고 난민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훈계하기도 한다. 알고 보면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제주 교회의 노력 때문일까? 내가 만나는 분들 중에는 그래도 구제할 사람은 구제해 놓고 봐야지. 그건 잘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꽤 된다.

예수께서 격려하신다. “언제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루카복음 18장의 첫 이야기는 사회에서 멸시당하고 곤경에 처해 있는 이들의 권리를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재판관에게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과부는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을 찾아가 끊임없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재판관은 그녀의 권리를 찾아주려고 마음먹게 된다. “그분이 그들을 두고 주저하실 것 같습니까?(루카 18,7) 재판관의 독백을 보면 과부의 저항이 끊임없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에서 괴롭힘이라는 그리스어를 번역하면 눈을 시퍼렇게 멍들게 때리다라는 뜻이다. 결국 나약하고 허약한 과부의 끊임없는 노력이 재판관을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수께서는 약해 보이지만 기도의 도구가 얼마나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는지 제자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 같다.

또한 예수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선함과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려 노력하며, 타인을 비난하고 배제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이야기하신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이다.”(루카 18,14) 그리고 또한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계명도 다시 강조한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수많은 이야기를 드렸고 또 드렸다. 이제 그만 지칠 때도 되었다. 진실로 의로운 사람들이 제주 사람들과 제주에 낯설게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촛불혁명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냈던 수많은 진실로 의로운 사람들이 다시 모습을 보여 주면 좋겠다. 그리고 기도해야겠다. 나약한 과부의 기도, 나약한 난민들을 위한 기도, 진실로 의로운 이들을 위한 기도 그 기도를 드려야겠다.

 

다시 보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루카 18,42)

 

최혜영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