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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있다"라는 외침으로 존재하는 삶의 고단함
문지혜(인천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팀장)  |  chr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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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2  17: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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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떤 것들도 우리를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 참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많이 힘들게, 20분이면 올 길을 5시간을 걸어왔는지요. 여러분 기억하며 연대하며 이겨냅시다. 감사합니다. - 신우리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폐회선언 발언 중에서

(2018.9.8. 20:55)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새벽부터 시작된 혐오세력들의 점거와 방해, 폭력에 시달리다 우리는 마침내 남광장에서 퀴어퍼레이드를 마쳤다. 예정된 거리의 1/4도 안 되는 짧은 거리 500여 미터.. 그 거리를 걷는 데에 무려 5시간이 걸렸다. 남광장에 도착하여 폐회선언을 들으면서 우리는 엉엉 울었고 또 서로를 안아줬다. 마침내 힘들었던 인천퀴어문화축제를 마쳤지만, 온몸을 가득채운 패배감과 무기력, 모멸감은 나의 존재감을 뒤흔들었다. 속상해서, 분해서 눈물이 북받쳤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두 발로 이 땅에 서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로, 퀴어로, 함께 여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퍼레이드를 함께 마친 동료들을 서로를 안아주고 위로하며 그제서야 안심했다. 그렇게 우리는 고단함을 간직한 채 간신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주고 또 확신해주었다.

 

아침 일찍부터 혐오세력은 이미 모든 길목을 차량으로 막고 광장 곳곳을 점거하고 있었다. 준비한 차량에 무대와 음향, 부스 등 행사 짐이 있었지만, 차량이 광장 근처에 접근조차 할 수 없이 막았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노려봤다.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한 채.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더러운 존재를 처리하고자 하는 그 눈빛으로 우리를 뚫어지게 보았다. 스크롤을 짜서, 길에 누워서, 차량 아래로 들어가서.. 그들은 우리가 가는 길을 막았고, 우리를 장시간 고립시켰다. 뜨거운 햇볕 아래, 광장의 가장 구석에, 우리를 몰아놓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고립된 상황에서는 화장실을 갈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면서 단체로 집에가를 외쳤다. 그리고 몇 명 목소리 큰 사람들은 동성애가 어쩌구 저쩌구.. 에이즈가 어쩌구.. 어떻게 며느리가 남자냐 등의 루머와 거짓정보, 비합리적인 말들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냈다.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게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말할 때마다 몽둥이로 매를 맞는 느낌이 들었다. 칼로 내 신체 어딘가가 훼손되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하고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종일 그 말을 강제로 들으니 우리는 어느새 오염되어 너덜너덜해졌다. 나는 누구고 또 여긴 어딘가.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곳이 집이라면 나는 그 집을 찾아온 것인데, 이들이 이야기하는 집은 어떤 곳일까. 내가 그렇게나 잘못 만들어지고 자라난 존재일까. 어떻게 신의 이름으로,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라는 피켓을 들 수 있을까.. 복잡한 생각과 슬픈 의문들이 자꾸 내면에서 떠올랐고 지쳐만 갔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소수자 단체 회원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이 플래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2018.09.08). 연합뉴스

고립된 가운데 우리는 여기에 있다라고 외치며 우리는 존재하고자 했다. 동성애반대라는, 성소수자란 없다는, 우리는 신을 거스른 죄인이라는.. 말과 피켓문구 속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 그리고 우리는, 그 누구도 반대하거나 지울 수 없다.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더 크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적은 숫자지만 서로를 다독이며 고립된 채 그 오랜 시간을 버티고 버텼다.

 

인천퀴어문화축제는 한국의 퀴어퍼레이드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확인받기위한 투쟁의 현장임을 알게 해주었다. 애초에 공연과 퍼레이드, 평화적인 축제로 퀴어를 드러내고자 했으나 혐오세력들은 점거와 폭력적 반대집회를 통해 우리의 존재를 손쉽게 밀어내고 제거했다. 또한 모멸감을 주고 두려움을 갖게 하여 다시는 거리에 퀴어의 모습으로 나오지 못하겠다며 폭력을 행사하였고, 공권력(경찰과 인천 동구청)은 침묵했다. 하지만 이러한 혐오와 폭력 가운데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을 결의하며 우리는 축제를 마쳤다.

 

축제 이후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와 폭력으로 인한 상처와 후유증을 앓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날 확인하게 되었다. 퀴어가/성소수자가/우리가, 이 광장에 설 수 있는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서로를 지켜내고 존재했다는 것을. 우리는 앞으로 전국의 각 지역에서 우리의 존재를 외칠 것이고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것이다. 평등한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때 까지 외침으로 존재하는 이 고단함을 버텨낼 것이다. 이 고단한 삶에 함께 할 동료들이 간절하다. 같이 울어주고 버텨주며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누군가가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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