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11조는 폐지되어야 한다
상태바
집시법 11조는 폐지되어야 한다
  • 서영섭(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 승인 2019.04.02 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 서 신부님에게만 나오죠?” 지난 5년간 동료 신부들에게 참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집회만 참석하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경찰 출석 요구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다른 동료 신부들보다 내가 집회 현장에 적극 참석하기는 하지만 그 적극성만으로 출석 요구서를 계속해서 받는 건 수긍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사실 연행, 유치장, 약식기소, 구형, 선고, 1, 항소심, 상고 등 이런 법률 용어는 나와 상관없는, 아니 굳이 알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낯설기만 느껴지는 법률 용어가 익숙해진 계기는 201344일 대한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분향소 강제철거 항의를 하다가 연행되고서이다. 이후 같은 해 610일 역시 대한문 쌍차 해고노동자 분향소 강제철거 맞서다가 두 번째 연행이 되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연행된 후에 대한문에서 상주하던 경찰들은 내 얼굴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는 경찰기동대 한 간부는 나를 볼 때마다 네가 신부냐?”는 온갖 조롱과 멸시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경찰들은 한 개인에 대한 인격뿐만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의 자유의 기본권마저도 폭력으로 방해하며 훼손하였다.

 

이러한 기본권을 가장 심하게 침해받은 날이 있었다. 20131228철도민영화반대 민주노총 총파업 지지 결의대회장소인 광화문 가는 길마다 막혔다. 이 날도 마찬가지로 내 얼굴을 아는 몇몇 경찰들은 길을 가로막고 참석을 저지하였다. 결국 인도가 아닌 이미 차량통제가 이뤄진 상태에서 그 차도를 통해 집회 장소인 광화문으로 갈 수가 있었다.

 

광화문 집회 참석 후 정말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 번에는 연행이 아니라 처음으로 경찰서에 출석하라는 우편을 받았다. 약속된 날짜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의 채증 기술에 깜짝 놀랐다. 수많은 집회 인파 중에 얼굴이 겨우 보일까? 말까? 하는데 크게 확대하여 내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채증 당해 조사를 받게 됐는데 경찰은 어떻게 내 사진만을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주소지로 출석 요구서를 보낸 걸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찰이라고 여길 만큼 강한 의심을 품었지만 그저 의심으로 끝난 채 결국 대한문 쌍차 분향소 강제철거와 광화문 집회 참석과 관련해서 작년 항소심에서 300만원 벌금형을 받아, 나와 검찰이 서로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하여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후 나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라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충실하였고 신앙의 양심에 따라 적극적으로 연대했다. 연대를 하는 동안 변함없이 경찰 출석 요구서를 받았다. 추측하건데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채증을 당한 게 아닌가 싶다. 여하튼 경찰이 조사하겠다는 내용은 201525일 희망연대노조 오체투지, 2015411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문화제, 2015919일 민주노총 노동개악저지대회, 20151114일 민중총궐기이다.

 

경찰은 여러 차례 거쳐 출석 요구서를 보냈지만 나는 출석에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집회, 시위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 받은 부당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계속 불응하자 경찰은 어떻게 알고 20171월 중순 경에 새로 인사이동 된 내 근무지까지 찾아와서 엄포를 놓았다. 더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집행하겠다는 고지와 함께 지명 통보서를 내게 주고 갔다. 역시 나는 출석하지 않았고 그 결과 2015411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 20151114일 민중총궐기 관련해서 경찰로부터 지명통보를 받은 상태이다.

 

그리고 201525일 희망연대노조 오체투지는 국회 앞에서 발언했다는 이유로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 위반, 그리고 2015919일 민주노총 노동개악저지대회는 일반교통방해죄로 검찰에서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 하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나는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재판 중이었고 지난 126일 목요일 검찰 구형이 있었다.

 

사실 이날 검사의 구형을 듣고 살짝 당황했다. 이유는 최근 집시법 11조 위반은 헌재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 선고를 내려서 대부분 무죄를 선고하고 있거나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분위기로 무죄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검찰은 당초 약식기소 200만원보다 100만원이 더 많은 300만원을 구형했다. 짧게 최후진술을 마치려고 했는데 검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긴 최후진술을 했다.

 

지난 5년간 나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을 철저히 억압당했고 무엇보다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반교통방해죄의 무분별한 남용의 희생양이었다. 여전히 궁금하다. 대체 동료 신부들이 말한 왜 나한테만 이런 걸까?

 

성당에서의 강론이 아닌 법정에서의 최후진술은 낯설기만 하다. 그 낯선 최후진술을 세 번이나 했다. 최후진술을 세 번하면서 언제나 존경 하올 재판장님으로 시작해야 되는 경어가 과연 합당한지 잘 모르겠다. 적폐 대상이 되어 버린 사법농단의 주역인 이들에게 말이다.

 

혹시 모르겠다. 이 글을 보고 괘씸죄가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두렵지 않다. 지금 나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았다는 양심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 자유로움을 나는 최후진술을 통해 맘껏 표현했다. 독자들과 함께 그 자유를 공유하고 싶다.

 

 

존경 하올 재판장님께

 

방금 벌금 300만원으로 선고해 달라는 검찰 측의 구형을 듣고 좀 당황했습니다. 약식 기소 200만원보다 많아서 입니다. 법 없이도 잘 살아가야 할 수도자인 제가 법정에서 지난 5년 동안 최후진술만 세 번째입니다. 세 번의 최후진술이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진리인 하느님의 가르침을 저버릴 수 없는 신앙의 양심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전과 4범이 될 위기에 처해져 있습니다. 세속의 가치를 뒤로 하고 수도 생활에 전념해야 하는 사제가 골방에서 기도를 하지 않고 왜 세상일에 관심이 많으냐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 질문에는 그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왜 신부가 그런 일에 관여 하냐는 불편함입니다. 그들이 불편하다고 해서 침묵하는 건 비겁한 불의입니다.

 

이윽고 그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대체 그런 일이 뭘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신앙에 비추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가톨릭에서는 다시 오실 아기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대림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기다림은 우리의 상식을 깨 버린 하느님이 비천한 인간이 되어 몸 하나 제대로 편히 뉘일 곳도 없이 말 밥통에서 첫 삶을 보내야 하는 아주 보잘것없는 초라함입니다. 저는 이 초라함에서 희망을 얻고자 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초라함은 바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연대입니다.

 

이렇듯 아기 예수는 그렇게 생애에 첫 하루를 연대로 시작했으며 결국 연대로 십자가에서 가장 굴욕적인 죽임을 당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이는 구태여 저의 신앙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역사에서도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의롭고 선한 제도가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억울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이들에게 소통의 자리가 되어 준 신문고라는 제도가 그렇습니다. 좀처럼 다가갈 수 없는 엄한 궁궐 가까이에서 유일하게 절규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우리는 인정하며 존중해 줬습니다. 국회라는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이들의 울부짖음을 듣기는커녕 법으로 가로막는 건 국회의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는 것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반인륜적이며 반인권적인 행태입니다. 저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을 말살하는 법이 없어졌으면 합니다.

 

제가 위반한 집시법 11조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을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시법의 본질은 참여자의 힘의 행사가 아니라 외침이며 이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마땅히 법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외침입니다. 이러한 본질을 훼손하는 집시법 11조는 결국 헌재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 선고를 내렸습니다. 아울러 집회 시위 표현의 자유를 억압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일반교통방해죄의 남용이 없어졌으면 합니다. 부디 헌재의 결정 선고를 외면하지 않는 정의롭고 공정한 판결을 해주시길 부탁드리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이며 저의 믿음입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저의 최후진술을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바다에서든 육지에서든 그대와 싸울 것이오." (1마카 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