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정상가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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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정상가족'인가
  • 박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마드는법 변호사)
  • 승인 2019.06.04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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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일 상암 월드컵 공원에서 '19회 여성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활동가들과 함께 성 평등과 성 소수자 인권을 알리기 위해 지속해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참가 신청 시 나눠주는 기념 티셔츠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이 너무나도 '정상가족' 프레임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여성 마라톤에서 가족을 강조해야 하는 걸까. 대체 가족이 뭐 길래?

 

가족이 뭐 길래

'가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결혼한 부부와 그 자녀로 이루어진 3~4인의 집단일 것이다. 여성 마라톤 기념 티셔츠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 사전적, 법적 정의도 이와 다르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족에 대해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정의하고 있다. 민법 제779조 역시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두고 있다혼인을 통한 배우자 관계와 혈연 또는 입양을 통한 혈족 관계, 이 두 가지를 가족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민법에서 가족은 더는 큰 의미가 없다. 민법에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은 위의 제779조일뿐, 다른 조문들에서는 가족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당장 저 조문을 삭제하더라도 민법의 다른 규정들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족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는 과정에서 현실에 맞지 않는 가족 규정을 삭제하려는 시도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가족 규정의 삭제가 가족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라는 우려로 무산됐다. '법조문 상의 추상적인 규정이 없으면 해체되어 버리는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국회 법사위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결국 현재와 같은 가족 규정이 남게 됐다.

 

그리고 민법의 가족 규정과 마찬가지로 이성애적 혼인과 혈연관계에 기반을 둔 '정상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건강가정기본법'이다.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르면 가족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3조 제1). 건강가정은 이러한 가족 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3조 제3)으로, 나아가 모든 국민은 가정의 중요성(4),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8)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규정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하다. 동거가족, 1인 가족, 무자녀 가족, 한부모가족, 동성 가족 등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가족 관계 중에서 오직 법률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건강한 '정상 가족'만을 국가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가정기본법은 제정 당시부터 이미 차별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는 법률이다.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에 따른 차별

2007년의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위와 같은 정상가족 프레임과 가족 간의 위계와 차별의 문제에 균열을 내는 하나의 계기였다. 법무부가 처음 예고한 차별금지법안에는 19가지 차별금지 사유의 하나로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에 따른 차별에서 말하는 '가족'은 무엇일까? 국가인권위원회의 '2008년 차별판단지침'을 보면 가족은 혈연 또는 비혈연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이러한 규정은 기존의 혈연 중심의 법률 규정보다는 넓은 의미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이와 달리 캐나다 온타리오 인권위원회는 온타리오 인권법에서 이야기하는 가족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모, 자녀 관계로 규정하며 혈연관계 외 입양도 포함한다. 그 외에 돌봄, 책임, 계약 관계에 있는 부모-자녀 '같은' 관계, 장애가 있는 노인이나 친족을 돌보는 성인,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가족도 포함한다."

 

온타리오 인권법은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을 혈연과 법률혼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아닌, 돌봄과 친밀함에 기반한 폭넓은 관계들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 중에 하나의 관계만을 '정상/건강한 관계'로 두고 나머지를 주변화시키는 것은 차별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정상가족으로 대표되는 가족관계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시도였다.

 

한편으로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에 따른 차별은 다른 차별과 결부되어 복합적인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더 깊은 검토가 요구되기도 한다. 가령 동성 커플이 법률혼과 사실혼에서 배제돼 어떠한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면, 이는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이자 가족 형태 등에 따른 차별로서 복합차별에 해당한다. 또한 이주결혼 가족의 자녀가 차별을 받는다면 가족 형태 등에 따른 차별이면서 동시에 이주민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지는 연계차별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상의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에 따른 차별금지는 결과적으로 가족은 무엇인지, 차별은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 다양한 사회적 논의들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익히 알다시피 법무부는 보수개신교와 재계의 반대에 부딪혀 가족 형태 등을 포함해 7가지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해버렸다. 결국 차별금지법은 지금까지도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가족이 차별의 매개가 되지 않기 위해

지난해 12월 여성가족부는 건강가정기본법을 전면 개정해 가족의 범위에 '사실혼'을 추가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전면개정안은 법안 명칭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고, 가족의 정의를 "혼인·사실혼(事實婚혈연·입양으로 형성되고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양육·돌봄·보호·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사회의 기본단위"로 확장했다.

 

법률 및 정책의 개선은 분명 환영할 일이나 한계도 분명하다. 가족의 범위에 사실혼이 추가되더라도 혼인 의사가 없는 동거가족은 여전히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다. 나아가 혼인의 의사가 있더라도 사실혼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 가족 역시 위 법안에서 말하는 가족에서 제외된다. 돌봄에 기반한 두 사람 간의 생활 동반자적 관계도 역시 포괄하지 못한다. 따라서 위 법안처럼 혈연과 혼인이라는 기본 틀을 유지한 채 거기에 사유를 조금씩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가족 형태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차별의 문제에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보다 가족은 근본적으로 무엇인지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친밀과 돌봄, 부양을 실천하는 다양한 결합, 관계들이 어떻게 하면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지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가족관계를 통한 공고한 통치를 허물면서 존엄과 평등에 기초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족 구성권 운동과 차별금지법 제정이 맞닿을 수 있는 지점이며 또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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