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과 인권] 진실은 외롭다: 테러지원국과 KAL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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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청산과 인권] 진실은 외롭다: 테러지원국과 KAL858
  • 박강성주(『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저자)
  • 승인 2008.07.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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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우리는 북한이 처음에 어떻게 명단에 오르게 되었는지(how it was the DPRK got on the list in the first place)에 대한 약간의 역사적인 측면들도 논의했다(미 국무부 홈페이지, 2007년 3월 6일).”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이 끝난 날,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한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처음에 어떻게 명단에 오르게 된 것일까? 바로 1987년 KAL858기 사건 때문이다. 미국은 이 사건이 일어난 뒤인 1988년 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이후 KAL기 사건은 미 국무부에서 발행하는 테러지원국 명단의 북한 지정사유 1순위로 거의 매년 언급된다. 다시 말해, 테러지원국 문제는 KAL기 사건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힘든 사안이다(자세한 내용은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참고).
힐 차관보의 말은, 바로 이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조심스럽지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과 북한은 어떤 형태로든 KAL기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사건의 진실규명과 관련해 중요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건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북한은 사건에 관한 입장을 밝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입장이란, 시인과 부인의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 시인을 했다면, 이제까지의 공식입장을 뒤집는 것(자백)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만약 부인을 했다면, 이제까지의 공식입장을 재확인하는 것(결백)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곧, 미국과 북한이 이 사건의 논의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유보)이다. 왜냐하면, 현재 시점에서 테러지원국이란 핵문제, 나아가서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큰 틀에서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개별사안으로는 일본인 납치문제가 KAL기 사건보다 중요하게 언급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KAL기 사건과 같은 민감한 사안을 논의하는 것은 북미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앞에서 소개한 힐 차관보의 발언에 근거한다면, 양쪽이 아주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형식적인 논의를 했을 수는 있다.
결국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진실규명과 관련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적으로 말해, 현재 이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가 움직여야 한다. 상당히 어렵겠지만, 진실위가 테러지원국에 관한 논의내용을 어떤 경로로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는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 의무에 최대한 충실해야 한다. 진실위의 정치적 의지와 주변의 협조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한편, 사건의 진실과 관련해 국정원 발전위의 재조사를 근거로 이 사건이 끝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다시 말해, 안기부 수사발표대로 김현희 일행의 폭탄테러로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촛불집회와 관련해, 천주교 사제단을 공격했던 근거 중 하나로 이 부분이 제시되었다. 곧, 사제단은 북쪽의 테러로 결론 난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요구한 적이 있는 “극좌단체”라는 이야기다. 이는 사제단에 대한 악의적인 인신공격이다. 국정원 발전위의 재조사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신뢰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진실위가 조사를 개시하며 지적했던 것처럼, “진실규명에서 가장 중요한 조사대상인 김현희를 비롯한 당시 안기부의 핵심 간부들을 조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세간의 의혹을 전혀 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외롭다. 그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외롭다. 실종자 가족의 말대로 “이남이 했든 이북이 했든” 사건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자는 것인데, 그런 목소리는 극좌로, 친북으로, 아니면 음모론으로 매도된다. 어쩌면 진실은 북한/미국/남한 당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영원히 묻힐 가능성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북미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 과정에서 진실은 많이 외로울 것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계속 감금당하고 있는 것일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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