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있지만 없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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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있지만 없는 아이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1.11.1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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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숨 쉬는 아이들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어릴 때 엄마나 선생님께 혼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모르고 그랬어 아님 알고 그랬어?”라는 말이었다. 난 이 질문이 참 싫었는데 몰랐다고 해도 잘못한 것 같았고, 알고 했다고 해도 잘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어차피 혼나는 상황에 그냥 몰랐다고 하는 편이 조금 혼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언제나 나의 답은 몰랐다였다.

 

이렇게 회피형 인간으로 살다보니 세상도 회피형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방법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도 다 아는데 차라리 모르는 하는 것이 욕도 덜 먹고 여러모로 더 편하니 세상이 시끄러워질 때까지 모르는 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인간이나 세상이나 똑같이 말이다.

 

모르는 은 외면이다. 차라리 정말 모른다면 배우기라도 하면 되는데 모르는 하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작가 은유는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지만 마치 없는 사람처럼, 유령처럼 지내온,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자의로 이 세상에 없는 척살아오지 않았다. ‘의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가족들도 한국에서 언제든지 쫓겨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 숨 쉬는 소리조차 내지 않기를 강요당하며 살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문제는 그들의 부모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불법체류자’. 미등록 이주아동 부모가 처해있는 상황은 이 단어 하나로 정리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이탁건 변호사는 “‘불법체류라는 말이 애초에 법을 어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있다존재 자체가 불법이니까 또다른 불법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꼬집는다. 또 이러한 고정관념의 확대재생산은 영화를 비롯한 대중매체도 부당한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을거라 말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그들의 부모에게서 끝나는 게 아니다. 연좌제도 이런 연좌제가 없다. 미등록 이주아동 부모들이 다른 죄를 저지르지 않았어도 언제나 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의 낙인은 미등록 이주 아동들에게도 이어진다.

 

많은 수의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릴 때 한국으로 이주해 온 경우라고 한다. 때문에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고국의 언어는 알지 못하거나 부모와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로만 할 수 있다고 한다. 미등록 이주아동들 부모의 국적과 신분 때문에 한국이 되지 못한 것이지 사실 한국인과 다름없다.

 

가끔 뉴스를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의 소식을 접하곤 한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서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처한 현실과 문제들이 하루 이틀 뉴스거리로만 등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걸 미등록 이주아동 당사자들과 그들의 부모, 또 그들과 연대해 권리를 함께 찾고 있는 사람들(활동가, 변호사)의 인터뷰를 통해 알린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문제는 단순히 보호의 영역을 넘어 굉장히 일상적이고 복잡하다. 나의 신분을 증명할 번호가 없어 이메일을 만들지 못하고, 청와대에 견학을 가도 혼자만 들어가지 못하며, 부모의 통역사가 되고, 자신이 처한 신분의 현실을 깨닫고 미래를 포기하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 마음 편히 아프지도 못하고, 혐오와 차별의 발언을 들어도 꾹 참고 속으로 삼키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 그렇지만 그들을 괴롭히기만 하는 사람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꿈 꿀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땅에서 버틸 수 있다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도 있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 결국 마음의 연대를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이 절망과 희망 사이에 커다란 다리 하나를 놓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결국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것. 내가 나임을 인정받는 것. 제가 원하는 건 그런 최소한의 것들이에요.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p58. 이주아동 마리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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