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테러방지법, 무엇이 문제인가?
icon 천주교인권위원회
icon 2008-09-29 15:29:08  |   icon 조회: 7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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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무엇이 문제인가? - 최 병 모 변호사(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1. 들어가는 말

지난 11월 12일 국가정보원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안은 여론의 반대가 극심하자 두 번에 걸쳐 수정되었으나, 수정된 정부안 역시 자유민주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법안의 가장 큰 첫 번째의 문제는 국정원이 대테러센터를 비밀조직으로 운영하면서, 위 대테러센터를 통해 테러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문제는 테러 및 테러단체의 개념이 너무 불명확하여 일반적인 집회나 시위, 점거 등의 행위가 테러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의 문제는 이 법안에 의하면 국가대테러대책회의, 동상임위원회, 대테러센터, 분야별테러사건대책본부, 국외사건테러대책본부 등 수많은 기구가 국가정보원의 주도아래 결성, 운영될 것이고, 국정원은 국내외의 정보를 모두 독점하고 있으므로 결국 국정원이 이러한 모든 기구를 장악하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하고 국정의 합리적 운영을 저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에 이와 같은 방대한 조직과 기구의 신설 및 운영을 위해서는 막대한 국고를 낭비하게 될 것이다. 네 번째의 문제는 계엄선포 없는 군병력의 출동과 불심검문, 외국인에 대한 차별대우, 불고지죄, 통신제한조치의 확대 등 인권침해를 초래할 규정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2. 테러행위, 테러단체의 개념(제2조)

국정원은 테러행위의 개념에서 사회적목적을 삭제하고 정치적, 종교적 목적 등만을 남겼으니 시민사회단체의 집회나 시위 등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나, 도대체 정치적목적과 사회적 목적은 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목적 없는 집회나 시위란 생각하기 어렵다.

3. 대테러센터의 수사권(제5조, 제16조)

법안에 의하면 국정원이 대테러센터를 비공개, 비밀조직으로 운영하면서 테러사건에 대해 독점적인 수사권을 갖겠다는 것이다. 범죄수사란 본래 인권침해의 위험이 있는 것이어서 그 자체가 가장 엄격하게 법적 규제를 받는 공개된 형사소송절차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수사는 공개된 공식적 조직인 경찰과 검찰의 몫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대외정보 및 대내보안정보의 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 비밀첩보기관일 뿐이다. 첩보기관이란 속성상 비밀리에 도청, 미행, 감시, 위협, 심지어는 불법감금이나 고문과 같은 극단적인 불법행위마저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비밀첩보기관이 수사를 담당하도록 한다면 과연 무엇이 테러인가 하는 것부터 국정원이 입맛대로 판단할 것이다. 과거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나 안기부가 공안사건 수사에서 사건을 조작하고 고문행위까지 저지른 경우가 허다했는데, 그것은 비밀정보기관이 수사를 담당한 당연한 결과이다. 최근에 문제된 수지 킴 사건도 그와 같은 하나의 표본일 뿐이다.
국정원은 “테러범 처벌시에는 행위의 결과가 국가안보,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중대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때로 한정”하고 있으므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없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이러한 요건은 너무 불명확하여 규제대상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 참고로 정부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결정 이후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이적행위 등을 한 때에 처벌하는 것으로 위 법을 개정하였으나, 개정 전후에 걸쳐 그 적용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4. 테러대책기구의 신설 및 국정원의 장악(제4조 내지 제8조)

법안에 의하면, 국가대테러대책위원회, 동상임위원회, 대테러센터, 분야별테러사건대책본부, 국외테러사건대책본부, 지역 및 공항, 항만별 대테러대책협의회 등을 조직 운영하게 되어 있는 바, 이와 같은 기구의 수는 적어도 3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구들은 결국 정보와 수사권을 독점한 국정원의 주도아래 설치, 운영될 것이고, 국정원의 권한은 막강해질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구의 설치 운영은 막대한 국고지출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대테러대책에 대한 통일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수립과 지휘계통의 확립에는 장애가 될 것이 분명하다.

5. 계엄선포 없는 군병력 출동, 외국인에 대한 차별대우, 불고지죄(제11조, 제15조,
제21조, 부칙 제2조)

계엄선포 없이 대책회의 또는 상임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건의하는 것만으로 군병력을 출동시켜 불심검문, 보호조치 기타 경찰의 직무를 행하게 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 그밖에 외국인에 대한 감시, 출국조치, 통신제한조치 등의 확대 역시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

6. 합리적인 테러방지대책

그러면 테러방지법이 없으면 테러를 예방하거나 진압할 수 없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찰은 모든 범죄에 대해서 예방, 진압 및 수사할 권한이 있고, 테러방지를 위한 특수부대까지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경찰의 관할아래 지휘명령계통을 통일하고, 특수부대의 기량을 높이며, 국정원은 대외정보를 충실히 제공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대테러대책이 될 것이다.

7. 결 어

지난 9월 11일 미국 무역센터 테러사건 이후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 주도하의 공안정국이 형성된 상황이다. 국정원은 이 시기를 틈타 테러방지법을 제정함으로써 과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국가보안법 외에 또 하나의 칼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이와 같은 기도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국정원은 테러방집법안을 철회하고 정보기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2001년 12월 7일
2008-09-29 15: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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