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논평] 구금시설 수용자 출정비용 징수 관련 헌재의 위헌결정을 환영한다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2-04-02 15:27:54  |   icon 조회: 8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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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번호
:
천인2012-0402-01
수 신
:
언론사 사회부
발 신
:
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제 목
:
[논평] 구금시설 수용자 출정비용 징수 관련 헌재의 위헌결정을 환영한다
담 당
:
이은정(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02-777-0641, 010-8558-3678
발신날짜
:
2012년 4월 2일(월)


[논평]
구금시설 수용자 출정비용 징수 관련
헌재의 위헌결정을 환영한다
법무부는 수용자의 재판청구권 침해하는 출정비용 징수지침을 당장 폐기하라!


지난 3월 29일 헌법재판소는 교도소 수용자의 법원 출정을 불허한 교도소장의 행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2010헌마475). 우리 위원회는 지난 2년 동안 법적 근거도 없이 단순한 법무부훈령에 의하여 수용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해 온 「민사재판 등 소송 수용자 출정비용 징수에 관한 지침」을 즉시 폐기할 것을 법무부에 요구한다.

이번 위헌결정사건의 청구인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에 출정하는데 소요되는 호송차량의 차량운행비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정을 거부당했다. 이 수용자가 제기한 소송은 결국 3회 불출석으로 취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어이없는 사건의 배경에는 법무부가 2010년 2월 내부 훈령으로 제정한 「민사재판 등 소송 수용자 출정비용 징수에 관한 지침」이 있다. 이 지침은 교도소․구치소 등의 수용자가 민사․행정․가사소송으로 법원에 출정할 때 교정시설 측이 해당 수용자에게 호송차량의 연료비와 도로통행료를 미리 징수하도록 하고, 수용자가 비용을 납부하지 못하면 일단 수용자를 출정시키되 나중에 수용자의 영치금에서 상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시 법무부는 제도 시행의 이유로 수용자들이 소송을 남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핑계를 댔다. 또 수용자가 아닌 일반인은 자신의 소송에 출석하는 경우 교통비를 본인이 부담하므로, 수용자도 본인의 민사소송 등을 위한 비용은 본인이 부담하는 것이 형평에 맞는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이번 위헌결정에서 헌재는 청구인이 출정하기 이전에 여비를 납부하지 않았거나 출정비용과 영치금과의 상계에 미리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정을 제한한 것은 청구인이 직접 재판에 출석하여 변론할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형벌의 집행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를 벗어나서 청구인의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출정비용 징수제도는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이다. 수용자들은 구금시설의 인권침해나 부당한 처우에 대해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경우에 출정비용을 부담시키게 되면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아예 소송을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교도소 측은 소송을 제기한 수용자를 다른 구금시설로 이송해버리는 일이 허다하므로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해당 법원에 출정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수용자들이 가진 영치금이 너무나 적고 작업수입도 쥐꼬리만 한 현실에서 판사의 면전에 출석하는 비용마저 개인적으로 부담하라고 하는 것은 소송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법무부가 이 제도를 통해 노리는 것은 수용자를 위축시킴으로써 구금시설 인권침해에 대한 재판청구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제도는 법무부 훈령에 근거한 것으로, 국회가 제정한 그 어떤 법률에 직접 규정되거나 법률로부터 위임받지도 않은 것이다.

누구든지 소송을 제기하고 법정에 출석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구금시설 수용자의 입장에서 이런 권리는 교도소 측이 실제로 수용자를 법원에 이송해주지 않는 한 무의미하므로. 수용자가 법원에 출석할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의 상식에 부합한다. 게다가 수용자는 민사소송 등을 직접 제기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소송을 당하는 피고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 위원회가 출정비용 징수제도 1년을 맞은 2011년 2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국 47개 교도소․구치소의 출정건수는 약 1400여건이었고, 수용자가 청구당한 금액은 5500만원이 넘었다. 출정 1건당 약 4만원의 연료비와 통행료를 청구한 셈이다. 같은 시기 영치금이 1만원 미만인 수용자의 수는 전체 수용자의 10%가 넘는 5800여명에 이르렀다. 재판 1건당 여러 번의 출정이 필요함을 감안하면, 돈이 없으면 소송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출정비용 징수제도이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출정비용 징수제도 자체가 위헌임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해당 수용자가 출정비용 납부를 거부하고 영치금 상계에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도소장이 출정을 불허한 점이 위헌임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교도소장이 수용자를 일단 출정시키고 나중에 출정비용을 수용자의 채무로 남기는 행위까지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결정의 의미는 간과할 수 없다. 그동안 헌재는 출정비용 징수제도가 “수용자로 인해 소요된 비용을 반환받는 것으로, 사경제 주체로서 행하는 사법상의 법률행위에 불과”하므로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라면서 아예 위헌심사의 대상에서 배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용자에게 수갑과 포승을 채우고 계호를 담당하는 교도관이 동승하여 수용자를 법원에 출정시키는 것이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위원회는 헌재가 수용자의 법원 출정이 재판청구권을 행사하는데 핵심적인 권리임을 명백하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돈이 없으면 재판에 출석할 권리조차 없는 수용자의 현실이 뒤늦게나마 헌재의 시야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을 환영한다.

그러나 이번 헌재 결정은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구금시설 인권침해를 은폐하기 위해 수용자에게 호송버스의 연료비와 통행료를 물리는 졸렬한 꼼수가 더 이상 용인될 수는 없다. 법무부는 수용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출정비용 징수지침을 당장 폐기하라!


2012년 4월 2일
천주교인권위원회
2012-04-02 15: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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