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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경찰청의 유치장 표준설계 연구용역 발표에 대한 논평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2-11-26 17:47:35  |   icon 조회: 8611
[논평]
경찰청의 유치장 표준설계 연구용역 발표에 대한 논평


지난 21일 경찰청은 ‘유치인 인권존중을 위한 유치장 표준설계 연구용역 발표회’를 열고 설계안을 발표했다. 유치장의 구조와 시설이 애초에 인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게 설계·건축되어 버리고 나면 유치인 인권보호의 달성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경찰청이 설계기준을 마련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그러나 발표된 설계안에는 유치인의 인권 증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점이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최종안이 확정되기 전에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경찰청 설계안은 1실당 유치인 수를 현행 5인에서 3인으로 축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치인의 혼거수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는 독거수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국제인권기준과 현행 형집행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설계안은 유치인 1인당 최소 면적을 현행 2.64㎡(약 0.8평)에서 3인실의 경우 4㎡(약 1.3평)로 확대했다. 그러나 교도소와 구치소에 적용되는 법무부 ‘법무시설기준규칙’에서도 일반 독거실의 경우 1인당 4.62㎡(1.4평)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계안은 여전히 부족하다. 독일의 경우 이미 1980년대에 7.98㎡의 면적과 22㎥의 용적을 가진 독거실에 2명을 수용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한 독일헌법 제1조 위반이라고 판시한 판례가 있다.

설계안은 이미 10여 년 전에 나온 개방형 화장실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헌재는 하체를 가려줄 만한 높이의 하단부 차폐벽 위에 반투명한 재료를 사용한 차폐시설을 설치하여 어느 정도 그 행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신체부위의 노출과 냄새의 직접적 유출을 막고, 용변을 보는 자로 하여금 타인으로부터 관찰되고 있다는 느낌을 보다 덜 가질 수 있는 독립적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경찰청은 화장실 바닥으로부터 1미터 이하는 불투명한 재질로, 1미터 이상은 투명한 재질의 밀폐형으로 설치하도록 했을 뿐이다. 여전히 하단부 차폐벽의 높이가 너무 낮은 것이다. 설계안에는 화장실 설계 기준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현행 규정에 따르게 된다면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설계안은 유치인의 실외운동 공간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국제인권기준은 구금시설 수용자에게 날씨가 허락하는 한 ‘매일 1시간 이상 실외운동’의 기회를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설계안은 채광 등을 고려한다는 명분으로 경찰서 2층 이상에 유치장을 두면서 유치인의 운동을 위한 공간으로는 ‘실내공간’을 마련했다. 유치인들에게는 실외운동이 유일하게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실외의 운동 공간’을 마련하고 유치인들에게 실외운동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설계안을 변경해야 할 것이다.

설계안이 CCTV의 설치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2007년 전면개정된 형집행법은 구금시설에서 전자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두었지만 거실 내 계호의 경우 자살 등의 우려가 큰 때에만 허용하고 여성 수용자는 여성 교도관이 계호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자살 등의 우려를 따지지 않고 유치장 내부를 24시간 CCTV로 감시하고 있다. 여성 유치인의 경우에도 여성 경찰관의 수가 극히 적은 상황에서 대부분 남성 경찰관이 CCTV 감시를 맡고 있다. 유치장에 대한 CCTV 감시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강도가 매우 높은 반면에 자살 등의 사고방지 효과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자살 등의 우려가 현저한 유치인이라면 대면계호의 방법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유치장 복도나 기타 시설은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유치인의 생활거실에 대해서는 CCTV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도록 설계안을 변경해야 한다.

한편, 우리 위원회는 경찰청 설계안이 현실화되려면 예산 확보와 함께 설계안을 현실화하려는 경찰청의 의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미 2006년 경찰청은 개방형 화장실을 밀폐형으로 바꾼다며 ‘유치장설계표준규칙’을 개정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2012년 8월 현재 유치장이 있는 전국 112개 경찰서 중 70개(62.5%)가 밀폐형 화장실이 하나도 없고, 전체 화장실 925곳 중 밀폐형 화장실은 116곳(12.5%)에 불과하다. 설계표준이라는 것이 유치장의 신축·개축 또는 시설 개선 시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설계안만 만들어 관련 규정만 고칠 것이 아니라 설계안이 빠른 시일 내에 전체 유치장에 실제로 시행될 수 있도록 예산 확보 계획을 포함한 시행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위원회는 이번 설계안을 공개한 경찰청 발표회가 일부 외부 인사를 초청하는 비공개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에 유감을 표시한다. 설계안을 최종 확정하기 전에 관련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위원회는 유치장 설계 변경과 함께 유치인의 인권 보장에 관한 현행 법령의 개선도 함께 추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유치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현행 규정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해당 규정에 따른 설계 변경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기회에 경찰청은 국제인권기준 및 형집행법 규정을 참고하여 유치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 마련 작업도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12년 11월 26일
천주교인권위원회
2012-11-26 17: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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