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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트랜스젠더 수용자 행정소송 승소에 대한 논평 -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없음을 확인한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4-10-02 17:03:39  |   icon 조회: 6228
보/도/자/료

트랜스젠더 수용자 행정소송 승소에 대한 논평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강제이발 지시 거부로 징벌 받은 트랜스젠더 수용자가 교도소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2일, 광주지방법원 행정부(재판장 박강회 판사)는 소측의 이발 지시를 거부했다는 등의 이유로 징벌방에 감금되었던 광주교도소 트랜스젠더(MTF) 수용자 김아무개씨 사건과 관련된 징벌 취소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징벌 원인 가운데 미허가 물품을 소지한 규율 위반은 인정되지만, 김씨가 이발 지시를 따르지 않은 데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 이를 따르지 않은 규율 위반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같은 날 우리 위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별첨1. 논평)

3. 지난 1월 17일 오전 9시 40분쯤 광주교도소 수용관리팀장이 위생을 위해 필요하다며 이발을 강요하자 김씨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약 35분 후인 10시 15분쯤 갑자기 기동순찰팀이 김씨가 수용된 독거실에 들어와서 거실검사를 시행하여 △보온물병덮개 1개 △모포 3개 △부채 1개를 발견했습니다. 소측은 지시불이행과 미허가 물품 소지 혐의로 김씨를 조사수용했고, 1월 29일 징벌위원회를 열어 금치 9일의 징벌을 의결했습니다. 이는 현행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아래 형집행법) 시행규칙 제215조 제4호에 따른 징벌 부과기준(9일 이하의 금치) 가운데 가장 엄중한 징벌을 결정한 것입니다. (별첨2. 징벌집행 통지)

4. 이에 따라 김씨는 조사수용된 때로부터 징벌이 종료된 2월 6일까지 21일간 징벌방에 감금되었습니다. 또한 김씨는 징벌기간 중 △공동행사 참가 △신문 열람 △텔레비전 시청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을 제외한 자비구매물품 사용 △작업 △전화통화 △집필 △서신수수 △접견을 제한 당했습니다. 이에 김씨는 지난 4월 10일 광주교도소장을 상대로 징벌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5. 이번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이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별첨3.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많은 취재와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논평
2. 징벌집행 통지 (별도 파일)
3.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1. 논평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없음을 확인한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트랜스젠더 수용자 행정소송 승소에 대한 논평


강제이발 지시 거부로 징벌 받은 트랜스젠더 수용자가 교도소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2일, 광주지방법원 행정부(재판장 박강회 판사)는 소측의 이발 지시를 거부했다는 등의 이유로 징벌방에 감금되었던 광주교도소 트랜스젠더(MTF) 수용자 김아무개씨 사건과 관련된 징벌 취소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징벌 원인 가운데 미허가 물품을 소지한 규율 위반은 인정되지만, 김씨가 이발 지시를 따르지 않은 데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 이를 따르지 않은 규율 위반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애초 강제이발은 현행법에서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형집행법 제32조는 “수용자는 자신의 신체 및 의류를 청결히 하여야 하며, 자신이 사용하는 거실·작업장, 그 밖의 수용시설의 청결유지에 협력하여야 한다”(제1항), “수용자는 위생을 위하여 두발 또는 수염을 단정하게 유지하여야 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정이 없는 한 두발이 길다고 해서 곧바로 위생 등에 해롭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므로 이는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

한편, 법무부령인 교도관직무규칙 제33조 제1항은 “정복교도관은 수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와 의류를 청결하게 하고, 두발 및 수염을 단정하게 하는 등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도’란 권력적·법적 행위에 의하지 않고 행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정객체에 협력을 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 또한 수용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는 될 수 없다. 강제이발은 법적 근거 없이 수용자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위법하며 따라서 교도관의 강제이발 지시도 정당한 지시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소측은 부당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씨에게 금치 징벌을 결정했던 것이다.

구 행형법 제23조는 “수형자의 두발과 수염은 짧게 깎는다”고 하여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를 뒀다. 당시 법무부예규 ‘수용자 이발 등 지침’에 따라 남자 수형자는 앞머리 10㎝, 뒷머리·옆머리는 각 2㎝, 여자 수용자의 경우 단발카트형 또는 파마웨이브형으로 이발해야 했다. 하지만 강제이발은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구 행형법이 2007년 형집행법으로 전면개정되면서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는 삭제되었다. 이미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도 구치소 수용자에 대한 강제이발 사건에서 “타인에게 위해를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진정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고 “신체의 외형적 형상이 물리적인 힘에 의해 침해당하지 않을 자유 즉 진정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09진인4676).

재판부도 “(형집행법은) 수용자는 위생을 위하여 두발 또는 수염을 단정하게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구 행형법과 같이 두발의 길이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수용자는 성별에 상관없이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두발을 길게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반드시 두발의 길이가 짧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두발의 길이가 길더라도 관리 여하에 따라서는 충분히 단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교도관은) 수용자 본인의 의사에 반하면서까지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하게 한다는 목적으로 두발을 짧게 자를 것을 지시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없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없음을 확인한 이번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한편, 우리는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가 미허가 물품 소지에 따른 규율 위반은 인정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재판부는 “교도소에서 관련 기준에 따라 공식적으로 지급한 물품 이외에는 소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미허가 물품은) 그 자체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고 피고의 허가 여하에 따라 충분히 소지가 가능한 물품에 해당하므로…수용시설의 안전과 질서 유지에 직접적으로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소측이 사건 당일 시행한 거실검사는 이발 요구를 거부한 김씨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징벌의 핑계를 찾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김씨가 이발 요구를 거부한지 35분 만에 갑자기 거실검사가 시행되었다. 미허가 물품으로 적발된 보온물병덮개 1개는 출소자로부터 받은 것으로 배급받은 모포를 잘라 주머니 모양으로 이어 붙인 것이었다. 이는 배급받은 온수병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난방이 잘 되지 않는 낙후한 건물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김씨 뿐만 아니라 다른 수용자들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포 3개는 김씨가 입실할 당시부터 이미 거실에 있던 것이며 부채 1개 또한 김씨가 안양교도소 수용 당시 에너지 절약을 위해 소측에서 나눠 준 것이다. 비록 소지 허가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위 물품은 교정시설의 안전과 질서를 해치거나 수형자의 교정교화와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칠 우려와는 무관하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는 항소심에서 적극적으로 다툴 것이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교정시설에 만연한 강제이발 조치를 근절하고 수용자를 부당하게 복종시키기 위해 소측이 징벌 권한을 남용하는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4년 10월 2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별첨3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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