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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국적법 헌법소원 제기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4-11-04 14:53:27  |   icon 조회: 6164
보/도/자/료

국적법 헌법소원 제기
강제철거 저지 벌금형…‘품행 미단정’으로 귀화 불허
명확성·법률유보·과잉금지 원칙 위배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지난달 10일, 법무부로부터 귀화불허가처분을 받은 네팔 출신 티벳인 라마다와파상(한국명 민수)씨가 처분의 근거인 국적법 제5조 제3호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3. 1997년 입국한 민수씨는 2006년 한국인과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이민(F-6)자격으로 지금까지 한국에 주소를 두고 장모님과 아내, 3명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민수씨는 2013년 귀화신청을 해 서류심사와 면접심사까지 통과했지만, 지난 3월 법무부는 민수씨가 ‘품행이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귀화를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법무부는 네팔·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민수씨가 2011년 명동재개발에 맞서 강제철거를 막다가 벌금 500만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핑계로 댔습니다. 지난 4월 민수씨는 귀화불허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소송 계류 중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입니다.

4. 국적법 제5조는 외국인의 일반귀화 요건으로 ‘5년 이상 계속하여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을 것’ 등과 함께 ‘품행이 단정할 것’(제3호)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품행 단정’의 구체적 기준은 국적법이나 같은 법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 법규에 명문화된 규정이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법원은 ‘품행 단정’의 기준에 관해 “당해 외국인의 성별, 연령, 직업, 가족, 경력, 전과관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그를 우리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여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임에 있어 지장이 없는 품성과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추상적으로 판단하고 있을 뿐입니다(서울고등법원 2010. 7. 8. 선고 2009누39027 판결). 이처럼 ‘품행 단정’ 규정은 그 자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이를 구체화한 하위규정도 없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해석될 여지가 크므로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이런 이유로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도 ‘품행 단정’의 구체적인 기준을 법령 등에 마련할 것을 법무부장관에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11-진정-0098500).

5. 더불어 ‘품행 단정’ 규정은 △어떤 행위가 품행의 미단정에 해당하는지 △어느 정도의 범죄경력이 불허대상인지 △한번 불허사유가 되었던 범죄경력은 언제까지 재귀화신청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 귀화허가결정의 본질적인 요소에 관한 일체의 판단을 오로지 행정청인 법무부장관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이는 기본권 실현에 관련된 영역은 행정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는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됩니다.

6. 한편, 귀화요건으로 본국과 한국에서의 범죄경력 중 파렴치범죄나 중범죄를 범한 경우가 아닐 것을 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도 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품행 단정’이라는 매우 불명확한 요건만을 규정한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위반하여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됩니다. 민수씨에게 유죄 판결을 한 1심 판사도 판결문에 “이 사건 범죄는 방어적이어서 반사회적이거나 파렴치한 것은 아니므로 비난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피고인을 위하여 지적해 둔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7. 한국인의 경우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경우 적극적으로 항의할 수 있고,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형사처벌을 당하더라도 강제퇴거나 이로 인한 가족들과의 생이별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귀화신청자는 민수씨처럼 한국에 장기간 체류하며 형성한 생활터전이 있고 한국인 배우자와 가족을 형성하고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귀화신청이 불허되면 언제든지 강제퇴거 위험에 처할 수 있어 매우 불안한 위치에 있게 되고 행동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 이는 귀화신청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품행 단정’ 규정은 내국인에 비해 귀화신청인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으로, 국가안보와 사회질서의 보장이라는 공익과 침해되는 기본권 사이에 적정한 비례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됩니다.

8. 한편, 지난 9월 5일 서울행정법원 제1부(재판장 이승택)는 민수씨가 제기한 귀화불허가처분 취소소송의 1심 판결에서 “원고의 범죄사실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재산권 행사를 부당하게 방해하고, 불법으로 집회를 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들의 공무집행을 방해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대한민국의 법적 안정성과 질서유지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이라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또한 민수씨가 제기한 국적법 위헌신청에 대해서도 “귀화 요건을 구비한 경우에도 법무부장관에게 귀화허가에 관한 폭넓은 재량권이 인정되는 점을 감안할 때 귀화 요건을 규정한 법규정은 명확성의 원칙이 완화되어 보다 폭넓게 불확정 개념 내지는 가치개념이 사용되는 것이 허용된다”며 기각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과의 생이별을 걱정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는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가진 권리라는 관점에서 헌재의 전향적인 결정을 기대합니다.

9.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10.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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