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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전주교도소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 <작은책> 원고 발송 불허 및 서신 검열 사건 국가배상청구 소송 1심 패소 판결에 대한 논평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5-02-26 12:55:09  |   icon 조회: 5204
보/도/자/료

전주교도소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
<작은책> 원고 발송 불허 및 서신 검열 사건
국가배상청구 소송 1심 패소 판결에 대한 논평

1. 법원이 월간지 연재 원고의 발송을 불허 당하고 서신을 검열 당한 양심수가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놨습니다.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1단독 현용선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8년형을 선고 받고 전주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2500만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에 우리 단체들은 26일 이번 판결을 규탄하는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별첨1. 논평)

2. 형이 확정되어 2010년 8월 전주교도소로 이감된 이씨는 2012년 6월경부터 월간 <작은책>에 수필 형식으로 북한을 방문한 에세이를 연재했습니다. 이씨는 편지 봉투에 출판사에 보내는 원고라는 취지를 기재하여 발송했고 이는 <작은책> 2012년 6월호부터 10월호까지 다섯 차례 연재되었습니다. 이씨는 2012년 10월과 11월 ‘평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연재글 6회분과 ‘평양개구리, 똑같습니다’라는 제목의 연재글 7회분을 소측에 발송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소측은 연재글을 검열하고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아래 형집행법) 제43조 제5항의 ‘형사 법령에 저촉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때’(제3호)와 ‘수형자의 교화 또는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칠 우려가 있는 때’(제6호)에 해당한다며 발송을 불허하고 서신을 교도소에 영치했습니다. 이에 이씨는 2013년 1월 연재글 6회분에 대한 소측의 서신 검열, 발송 불허 및 교정시설 영치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냈고, 같은 해 10월 전주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김현석)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놨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집필문이 이씨가 약 20년 전 인도에서 북경을 경유하여 평양을 방문하였을 당시 느꼈던 개인적인 감상을 수필형식으로 기재한 것으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체제나 통치자, 주체사상, 반미주의 등 북한이 내세우는 핵심 사상을 직접적·무조건적으로 찬양·고무하거나 선전·선동하는 내용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주교도소장이 항소 및 상고했으나 2014년 5월 대법원 제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의 상고 기각으로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3. 2013년 11월 6일 이씨는 위 행정소송의 담당 변호사와 지인 3명에게 각 1통의 등기우편을 발송했는데, 서신담당 직원은 편지가 검열된 사실을 이씨에게 구두로 통보했습니다. 직원은 어떤 서신이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 검열되었는지 특정하여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씨는 소측에 서신 검열 절차 등에 관한 자료 및 그해 1월부터 11월까지 서신 검열 정보처리 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공안(관련)사범 관련 수용관리 및 처우에 관한 비공개 정보”라는 비공개 결정을 받았습니다. (별첨2. 정보비공개 결정 통지) 이에 이씨가 이의신청을 하자 소측은 이를 기각하면서 “총 115건 서신 검열한 후 검열 사실을 지체 없이 청구인에게 직접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별첨3. 정보공개청구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 통지) 그러나 서신 검열 사실을 구두로 통보 받은 것은 2013년 11월 6일이 처음이라는 것이 이씨의 주장입니다.

4. 2014년 5월 이씨는 소측이 △2012년 2월 헌법재판소가 수용자의 발송 서신을 봉함하지 않은 상태로 교정시설에 제출하도록 규정한 형집행법 시행령 제65조 제1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이후에도 발송 서신의 개봉 제출을 요구했고 서신 내용을 검열한 후 발송을 불허하겠다며 스스로 포기할 것을 강요했고 △2012년 6월경부터 월간 <작은책>에 연재한 원고 중 2건의 발송을 불허했으며 △2013년 한해에만 115건의 서신을 검열했고 현재까지도 검열이 계속되고 있으며 △2013년 11월 6일까지는 서신 검열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문서 통보를 요구했음에도 구두로만 통보했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5.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소속 변호사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별첨4.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많은 취재와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논평
2. 정보비공개 결정 통지 (별도 파일)
3. 정보공개청구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 통지 (별도 파일)
4.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1
논평



자의적인 서신 검열에 면죄부를 준 법원 판결을 규탄한다
전주교도소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
<작은책> 원고 발송 불허 및 서신 검열 사건
국가배상청구 소송 1심 패소 판결에 대한 논평


법원이 월간지 연재 원고의 발송을 불허 당하고 서신을 검열 당한 양심수가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놨다.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1단독 현용선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8년형을 선고 받고 전주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2500만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소측이 서신 검열 권한을 남용하는 관행에 손을 들어준 것이자 교정시설에 만연한 서신 발송 금지 조치에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다.

법원은 서신 검열에 대해 “형집행법 및 그 시행령에 따른 것으로 판단되고, 달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만 판단했다. 구 행형법은 원칙적으로 서신 검열을 허용했고 집필에 대한 사전허가제를 규정했다. 그러나 이미 자유를 박탈당한 수용자로부터 편지를 쓸 자유마저 박탈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드디어 2007년 전면개정된 형집행법은 “수용자가 주고받는 서신의 내용은 검열받지 아니한다”(제43조 제4항)고 규정하여 서신 무검열 원칙을 선언했다. 다만, 그 예외로 개별 서신이 ‘시설의 안전 또는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출 때에만 검열을 허용하고 있다.

시설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서신 검열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는 개별 서신에 대해 극히 예외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 정당성에 대한 입증 책임도 소측이 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른바 ‘공안사범’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보내고 받는 모든 편지를 무제한 검열하는 것은 현행법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형집행법의 서신 무검열 원칙을 무시한 이번 판결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1심 중 소측이 서신 검열을 인정한 건수는 2013년 115건, 2014년은 9월까지 83건에 달했다. 그러나 소측은 이씨의 서신에 시설의 안전 또는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등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소측은 검열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수용자의 최근 동정이나 담당 교도관의 경험칙을 바탕으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증인으로 나선 교도관들도 봉투의 수신자가 인권사회단체 등이면 검열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이렇다보니 검열 대상에 인권사회단체와 언론사 기자는 물론이고 이씨의 가족과 지인도 포함됐을 정도로 검열이 자의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됐다. 이씨가 행정소송과 언론중재신청 사건의 담당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도 검열 당했다. 게다가 검열 결과 실제로 발송을 불허한 서신이 없는데도 서신 검열은 입소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서신 검열의 진짜 목적이 이씨의 동향을 파악하고 내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게다가 법원은 대법원 판결로 그 불법성이 확인된 월간 <작은책> 연재 원고의 발송 불허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집필문의 내용과 불허처분의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며 소측의 손을 들었다. 이씨의 원고 내용이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까지 깔아뭉갠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소측이 이씨의 원고 발송을 또 다시 불허하더라도 책임을 추궁할 길이 없게 된다.

법원은 소측이 서신의 개봉을 요구하고 발송 포기를 강요했다는 이씨의 주장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증인으로 나선 한 교도관은 이씨 뿐만 아니라 조직·마약·공안사범에게 개봉 제출을 요구하는 소내 방송을 했음을 인정했다. 이미 2012년 헌법재판소는 수용자의 발송 서신을 봉함하지 않은 상태로 교정시설에 제출하도록 한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놨다. 그럼에도 소측은 공안수들은 서신을 검열해야 한다면서 무조건 서신을 개봉하여 제출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위헌 결정 이후 이씨에게 서신을 개봉하여 제출하도록 강제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이를 강요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마저 무시한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 통신의 자유에 감옥 수용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이번 판결을 항소심에서 바로잡을 것이다.

2015년 2월 26일

구속노동자후원회, 국제민중투쟁연맹(ILPS) 한국위원회,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아시아다문화소통센터,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APWSL) 한국위원회,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의 석방 추진 모임,
예장민중교회선교연합 일하는예수회, 오산다솜교회,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전북인권교육센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경기남부/군산/김제/익산/전주),
평화와 통일을 열어가는 오산 노동자문화센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별첨4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2015-02-26 12: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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