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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보안관찰법 합헌 결정에 대한 논평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5-12-03 13:20:41  |   icon 조회: 3362
보/도/자/료

보안관찰법 합헌 결정에 대한 논평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과 함께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는 보안관찰법에 대해 10여년 만에 합헌 결정을 내놨습니다. 3일 우리는 이번 결정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별첨1. 논평)

3. 보안관찰제도는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제정한 사회안전법이 1989년 보안관찰법으로 전부개정되면서 보안감호처분은 폐지되었지만 보호관찰처분은 보강되어 신설되었습니다.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기합계가 3년 이상인 자로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받은 사실이 있는 자”를 ‘보안관찰처분대상자’(제3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상자는 출소 전과 출소 후 7일 이내에 △가족 및 교우관계 △입소전의 직업·본인 및 가족의 재산상황 △학력·경력 △종교 및 가입한 단체 △출소후의 거주예정지 및 그 도착예정일 등을 거주 예정지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 또한 법무부장관은 보안관찰처분대상자 중 “보안관찰해당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 재범의 방지를 위한 관찰이 필요한 자”(제4조)는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보안관찰처분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4. 이렇게 피보안관찰자가 되면 7일 이내에 △주거 △본인 및 가족의 재산상황 △가입한 단체 등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 또한 3개월마다 △주요활동사항 △통신·회합한 다른 보안관찰처분대상자의 인적사항과 그 일시, 장소 및 내용 △여행에 관한 사항 등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 주거지를 이전할 경우 △이전예정지 △예정일 △이전사유 등을, 국외여행의 경우 △여행대상국 △여행목적 △여행기간 △동행자 등을, 10일 이상 국내여행의 경우 △여행목적지 △여행목적 △여행기간 △동행자 등을 미리 신고해야 합니다(제18조). 이러한 신고를 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5. 이번 사건의 청구인 이정훈씨는 지난 2007년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가 2009년 만기 출소했습니다. 2012년 법무부 보안관찰심의위원회는 이씨에 대한 보안관찰처분을 의결했습니다. 이씨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보안관찰법에 복종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보안관찰법에 따른 신고를 거부했습니다.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된 이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지난해 7월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신중권 판사는 유죄 판결(벌금 5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남부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오연정)는 이씨의 항소를 기각했고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이씨는 항소심 중 보안관찰법 제18조와 함께 보안관찰처분의 근거 내지 효력규정인 제4조 등을 대상으로 위헌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어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입니다. 한편, 이씨는 법무부장관의 2014년 기간갱신처분에 불복하여 취소 소송을 제기했는데, 지난달 18일 서울고등법원 제5행정부(재판장 성백현 판사)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6.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보안관찰법에 대해 거듭 합헌 결정을 해왔습니다. 1971년 이른바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으로 투옥되어 7년 형기를 마친 후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988년까지 10년 동안 보안감호소에 수용되었다가 석방된 서준식(전 인권운동사랑방 대표)씨가 낸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보안관찰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규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헌법재판소 1997. 11. 27. 선고 92헌바28 결정). 헌법재판소는 2001년에도 출소 후 관할 경찰서장에게 출소 사실을 신고하도록 한 보안관찰법 조문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헌법재판소 2003. 6. 26. 선고 2001헌가17·2002헌바98(병합) 결정).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2003년 이후 10여년 만에 내린 결정임에도 과거 합헌 결정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것입니다.

7.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8.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논평
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1
논평



사상과 양심을 가두는 감시의 족쇄를 풀자
보안관찰법 합헌 결정에 대한 논평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과 함께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는 보안관찰법에 대해 10여년 만에 합헌 결정을 내놨다. 헌법재판소는 “보안관찰법은 우리 국가적 이념이고 우리 헌법의 정치적 기본질서이기도 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보장, 북한공산주의자들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라며 2003년 합헌 결정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우리는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스스로 저버린 헌법재판소를 규탄한다.

보안관찰법에 따라 피보안관찰자가 되면 3개월마다 주요 활동 사항, 연락하거나 만난 보안관찰처분대상자의 인적사항과 일시·장소·내용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사를 할 때는 그 이유를 신고해야 하며 국외여행이나 10일 이상 국내여행을 할 때도 여행 목적과 기간, 동행자 등을 미리 신고해야 한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검찰과 경찰은 재범방지라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나 연락을 금지할 수 있고 집회·시위 장소 출입을 금지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처벌을 하는 것이 보안관찰법이다. 이처럼 보안관찰법은 사생활 전반에 관여함으로써 사상과 양심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법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철창만 없을 뿐이지 오히려 자발적인 복종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보안관찰법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철창이자 엄청난 감시권력이다.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보안관찰처분이 “내심의 작용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보안관찰처분대상자가 보안관찰해당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성이 내심의 영역을 벗어나 외부에 표출되는 경우에 재범의 방지를 위하여 내려지는 특별예방적 목적의 처분”이라며 보안관찰법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보안관찰법은 일제의 사상범보호관찰법의 취지와 형식을 계승한 법으로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친북적’ 또는 ‘용공적’ 사상과 관련된 정치 범죄를 특별히 단죄하고 사상 전향을 강요하고 있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 태생적으로 사상범을 관리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대상자에 대한 권력의 끈질긴 추적과 통제가 주된 목적이다. 게다가 보안관찰처분 면제 신청을 위해서는 이미 2003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된 준법서약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경찰이 피보안관찰자를 조사하면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그 대답이 보안관찰처분 갱신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의 생각을 억지로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을 고백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헌법재판소가 외면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도 두 차례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통해 정부에 보안관찰법의 폐지 또는 단계적 완화 계획 수립을 권고한 바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아시아의 대표적 비정부기구인 아시아인권위원회(AHRC)가 보안관찰법의 개폐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보안관찰제도는 이미 처벌받은 사람에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추측하며 불이익을 가하다는 점에서 헌법이 금지하는 거듭처벌에 해당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보안처분은…형벌과는 다른 독자적 의의를 가진 사회보호적인 처분이므로 형벌과 보안처분은 서로 병과하여 선고한다고 해서 그것이…이중처벌금지원칙에 해당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견해”라는 기존 견해만 되풀이했다. 이는 당사자에게 미치는 인권침해의 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행한 ‘보안관찰대상자 인권침해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담당 형사가 민가협 주최의 집회나 모임은 가면 안 된다고 강요한 사례, 출소 후 목장에 가서 한달 가량 일을 했는데 담당 형사가 목장 주인에게 “이 사람은 사상이 불순하고, 독침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해서 쫓겨난 사례도 있었다. 게다가 보안관찰법은 법무부차관이 위원장인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와 법무부장관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법원의 판결이 없어도 보안관찰처분을 부과할 수 있어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되고 법관에 의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심지어 보안관찰법은 보안관찰처분의 기간을 갱신할 수 있다고만 규정할 뿐 갱신 기간의 횟수나 최대한을 정하고 있지 않아 절대적 부정기 보안처분을 허용하고 있다. 2년마다 갱신되기만 하면 대상자는 사망할 때까지 보안관찰처분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형사제재 기간의 한정을 요구하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징역 3년 6월을 선고 받고 복역한 최기영씨는 신고 의무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지만 지난해 7월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노역장에 유치되는 등 보안관찰법에 대한 불복종이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8월에는 정부의 승인 없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복역한 한상렬 목사가 출소 후 보안관찰법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긴급체포 되기도 했다. 2013년 기준으로 2000여명의 보안관찰처분대상자와 40여명의 피보안관찰자가 공안기구의 감시를 받으며 고통 받고 있다.

우리는 이번 합헌 결정에 절망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보안관찰법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과 양립할 수 없다. 우리는 보안관찰법에 불복종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보안관찰법,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을 끝내 열어갈 것이다.

2015년 12월 3일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진보연대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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