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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용산참사 유가족 등 한국공항공사(2013년 사건 당시, 사장 김석기) 앞 연행 사건 항소심, 집시법 및 업무방해 모두 “무죄” 판결에 대한 논평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6-09-22 19:27:14  |   icon 조회: 2066
보/도/자/료

용산참사 유가족 등
한국공항공사(2013년 사건 당시 사장 김석기) 앞 연행 사건
집시법 및 업무방해죄 모두 “무죄” 판결에 대한 논평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22일 서울남부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강태훈)는 용산참사 진압 책임자 김석기(현 새누리당 국회의원)가 낙하산 사장으로 있었던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2013년 유가족들과 활동가들이 강제 연행된 사건 관련 업무방해 등 사건의 항소심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해산명령 불응)과 업무방해에 대해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2일 우리는 이번 판결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별첨1. 논평)
앞서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서영효 판사는 2015년 11월 집시법 위반(해산명령 불응)에 대해서는 무죄로 업무방해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하면서, 100만 원~300만 원의 벌금에 처한 약식명령을 깨고 1명의 활동가에 대해서는 선고유예를 다른 4명에 대해서는 벌금 30만 원을 선고했으나, 오늘 항소심 재판부는 업무방해 역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3. 본 사건은 2013년 11월 13일 용산참사 진압 책임자 김석기(2009년 당시 서울경찰청장)가 낙하산 사장으로 있는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유가족들과 활동가들이 피켓시위를 하던 중 주차장 차단기 부근에서 한국공항공사 직원이 용산참사 유가족을 폭행하여 넘어뜨린 데 대해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한 행동을 경찰은 해산명령에 불응했다며 업무방해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연행했었던 사건입니다. 이후 검찰은 유가족과 활동가들에게 벌금 100만원~300만원(3명 각 300만원, 2명 각 100만원 총 1100만원)에 약식기소했습니다. 이에 약식명령에 불복한 피고인들이 2014년 9월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을 진행해 왔습니다.

4. 법원은 집회에 대한 해산명령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진행된 집회 또는 시위가 ‘신고의 목적, 일시, 장소, 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에 해당하여야 하고, ‘집회 또는 시위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여야 하는데, 이 사건 당시 경찰의 해산명령은 “신고범위를 현저히 일탈한 행위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집회·시위에 대하여 발령된 것이 아니”므로 적법한 해산명령이 아니라고 보아 해산명령 불응에 대해 무죄라는 원심의 판결을 인정하고,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5. 또한 주차장 차량출입 차단기 앞에서의 피켓시위를 업무방해로 판결한 원심에 대해서는, 피고인들이 적극적으로 차량 진입을 막는 행위를 하지 않았고, 다른 출입구로 한국공항공사 직원 등이 차량을 출입할 수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사회상규에 위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로 판단해 업무방해도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6.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7.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논평
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1
논평



용산 살인진압, 김석기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용산참사 유가족 등 한국공항공사(2013년 사건당시 사장 김석기) 앞 연행 사건
집시법 및 업무방해죄 모두 무죄 판결에 대한 논평

22일 서울남부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강태훈)는 용산참사 진압 책임자 김석기(현 새누리당 국회의원)가 낙하산 사장으로 있었던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2013년 유가족들과 활동가들이 강제 연행된 사건 관련 업무방해 등 사건의 항소심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해산명령 불응)과 업무방해에 대해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심(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서영효 판사 / 2015년 11월)에서는 집시법 위반(해산명령 불응)에 대해서는 무죄로 업무방해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결했으나, 오늘 항소심 재판부는 업무방해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집회에 대한 해산명령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진행된 집회 또는 시위가 ‘신고의 목적, 일시, 장소, 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에 해당하여야 하고, ‘집회 또는 시위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여야 하는데, 이 사건 당시 경찰의 해산명령은 “신고범위를 현저히 일탈한 행위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집회·시위에 대하여 발령된 것이 아니”므로 적법한 해산명령이 아니라고 보아 해산명령 불응에 대해 무죄라는 원심의 판결을 인정하고,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또한 주차장 차량출입 차단기 앞에서의 피켓시위를 업무방해로 판결한 원심에 대해서는, 피고인들이 적극적으로 차량 진입을 막는 행위를 하지 않았고, 다른 출입구로 한국공항공사 직원 등이 차량을 출입할 수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사회상규에 위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로 판단해 업무방해도 무죄를 선고하였다.

본 사건은 2013년 11월 13일 용산참사 진압 책임자 김석기(2009년 당시 서울경찰청장)가 낙하산 사장으로 있는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유가족들과 활동가들이 피켓시위를 하던 중 주차장 차단기 부근에서 한국공항공사 직원이 용산참사 유가족을 폭행하여 넘어뜨린 데 대해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한 행동을 경찰은 해산명령에 불응했다며 업무방해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연행했었던 사건으로, 이후 검찰은 유가족과 활동가들에게 벌금 100만원~300만원(3명 각 300만원, 2명 각 100만원 총 1100만원)에 약식기소 했다. 이에 약식명령에 불복한 피고인들이 2014년 9월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을 진행해 왔던 사건이다.
당시 김석기는 언론을 통해서는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애도의 뜻을 표명할 용의가 있다”고 하고선 오히려 유가족들에게 한국공항공사 출입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기만하고, 아침마다 공항공사를 찾아가는 유가족들을 사설 경비용역까지 동원해 공항공사 주차장에조차 접근을 막으며 폭력적으로 끌어내기 일쑤였다. 결국 사건당시 1인 시위를 하던 유가족들을 끌어내고 폭행해 119까지 실려 간 상황에서 항의하는 유가족과 활동가들을 사설 용역을 부리듯 경찰력까지 동원해 강제 연행했던 사건이었다.

이번 판결은 용산참사 살인진압 책임자 김석기의 사과를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투쟁이 정당했고 이에 대한 경찰과 검찰이 과잉 대응을 하여 경찰력과 기소권을 남용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용산참사와 관련한 경찰과 검찰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김석기는 공기업 낙하산 사장의 임기를 채우지도 않고 중도 사퇴하며, 새누리당의 텃밭인 경북경주에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와 20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기가 막히고 원통할 노릇이다.

용산참사, 이제 몇 개월 후면 8주기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비록, 김석기와 국가폭력의 책임자들이 승승장구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김석기를 비롯한 살인진압, 살인개발의 책임자들을 반드시 정의의 법정에 세울 것이다.

2016년 9월 22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천주교인권위원회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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