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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침묵의 선거’ 강요하는 공직선거법 헌법소원 청구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7-02-07 14:20:31  |   icon 조회: 1699
보/도/자/료

‘침묵의 선거’ 강요하는 공직선거법 헌법소원 청구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선거 시기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반대하는 문서 배부와 현수막·피켓 게시, 확성장치 사용 등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이 2월 2일 헌법재판소에 청구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의 청구인들인 용산참사 유가족과 활동가 등 7명은 제20대 총선에서 경북 경주에 출마한 김석기 당시 예비후보(현 국회의원)의 새누리당 공천을 반대하기 위해 2016년 1월과 3월 각각 경주역과 김석기 선거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면서 인쇄물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설치하며 확성장치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2016년 8월 불구속 기소된 바 있습니다.

3. 김석기는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목숨을 잃은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진압 책임자인 서울경찰청장이자 경찰청장 내정자였습니다. 그는 진압 당시 집무실의 무전기를 꺼놨다며 책임을 회피해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습니다. 사퇴 후 일본 오사카 총영사를 지내다가 8개월 만에 사퇴하고 2012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이후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취임했으나 중도 사퇴하고 2015년 12월 제20대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했습니다.

4. 공직선거법은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현수막 등의 게시(제90조 제1항 제1호) △피켓 등 표시물의 착용(같은 항 제2호) △인쇄물의 배부(제93조 제1항)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헌법재판소는 위 조항들에 대해 여러 차례 합헌 결정을 하면서 “선거운동의 부당한 경쟁 및 후보자들 간의 경제력 차이에 따른 불균형이라는 폐해를 막고, 선거의 공정성과 평온을 해하는 결과의 발생을 방지”하므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무분별한 흑색선전으로 인하여 선거의 공정성과 평온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는 등 폐해를 규제하는 것이므로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14. 4. 24. 선고 2011헌바17, 2012헌바391(병합) 결정 등).

5. 그러나 위 조항들은 표시된 의견의 내용이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의견 표시 행위 그 자체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표출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고 다만 표현 행위를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처벌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원천 봉쇄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걱정하는 흑색선전에 대해서는 허위 사실의 유포나 명예훼손, 비방 등에 대한 별도의 금지와 처벌 규정이 이미 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선거의 공정성은 후보자에 관한 여러 견해를 내놓고 그에 관한 토론과 논증이 벌어지는 등 후보자에 대한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희생하여 ‘침묵의 선거’를 치르고 그러한 ‘침묵’이 공정한 것이라고 자위하는 것은 선거가 생동감 있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정의 과정이라는 점과 정치세력의 형성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무시한 것입니다.

6. 위 조항들이 선거 시기에만 적용되는 한시적인 제한이라는 합헌론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의 청구인들은 김석기가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후에야 출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 조항들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인쇄물의 배부 등을 금지하고 있어, 선거일 전 120일부터인 국회의원 예비후보 등록 시점에서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인쇄물의 배부 등은 이미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후보자에 대한 의견 표명의 욕구가 높아지는 선거 시기에 오히려 의견 표명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는 ‘향유할 가치가 별반 없는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자유’라는 모순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헌법재판소는 오프라인과 달리 인터넷에서의 선거운동은 기간에 상관없이 언제나 가능하다고 판단(헌법재판소 2011. 12. 29. 선고 2007헌마1001, 2010헌바88, 2010헌마173ㆍ191(병합) 결정)한 바 있음을 감안하면, 위 조항들은 기본권의 보편성과도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7. 게다가 공직선거법은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사진 또는 그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한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제90조 제1항)고 규정하여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체적인 사회적 해악을 발생시키지도 않고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없는 표현까지 모두 형사처벌하는 것으로 그 규제 범위가 지나치게 넓습니다. 기본권 제한 조치를 하더라도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최소침해의 원칙에 반하는 것입니다.

8. 한편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위한 확성장치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제91조). 이는 심각한 소음 공해의 유발을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확성장치는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것이 곤란하여 전파 범위의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되며 그 전파 범위는 증폭되는 음량에 따릅니다. 공직선거법은 확성장치의 음량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금지하고 이를 사용하기만 하면 처벌하고 있어 과잉금지 원칙에 반합니다.

9. 지난 1월 13일 대구지법 경주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권기만)는 이번 헌법소원의 본안 사건인 형사 사건의 1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에게 각각 벌금 70만원~90만원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과 검사가 모두 항소했고 사건은 현재 대구고법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피고인들은 1심 계류 중 공직선거법 제90조 제1항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재판부가 기존 합헌론을 되풀이하며 기각함에 따라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공직선거가 후보자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통해 진정한 공정성이 보장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할 것을 기대합니다.

10.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11.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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