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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공안(관련)사범 교화지침 정보공개 소송 제기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8-02-08 12:17:52  |   icon 조회: 1208
[보도자료]
공안(관련)사범 교화지침 정보공개 소송 제기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2월 7일 법무부 훈령 ‘공안(관련)사범 교화지침’(아래 교화지침)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이 서울행정법원에 제기되었습니다. 법무부는 2017년 11월 교화지침을 공개하라는 우리 위원회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교정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공안(관련)사범의 건전한 사회복귀 및 효율적인 교화활동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공안(관련)사범 교화전담직원의 직무수행 상 특별한 보호를 요하여 대외비로 분류한 지침으로써,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거나 형의 집행 및 교정 등의 공정한 업무수행을 곤란하게 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2호와 제4호를 근거로 비공개한 바 있습니다.

3. 공안(관련)사범의 정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공개된 대통령 훈령인 ‘공안사범자료관리규정’의 개정 전후 규정과 비슷하다면, △형법 제87조(내란)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등 위반자인 공안사범과 △집시법(제22조 중 제5조·제8조 위반에 한함) 위반자 등 공안관련사범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 교화지침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공안(관련)사범의 동정 파악이나 서신·도서·접견·집필의 감시 및 제한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실제로 2010년 12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서울구치소 교도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한상렬 목사의 일상생활을 한 시간 간격으로 엄중관리대상자 동정기록부에 기록했습니다. 2012년 4월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임창훈 판사는 “동정기록 사실이 원고에게 인격적 존재로서의 자유로운 의사발현과 행동구현에 대하여 상당한 정신적 타격을 주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인정된다”며 국가가 한 목사에게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한편, 정보공개법에 따라 법무부가 공개하고 있는 정보목록에는 ‘공안사범 특이서신 발송 보고’ 등의 제목으로 일선 교도소에서 법무부로 보낸 보고서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만약 교화지침에 교도관에게 위법적인 사찰을 지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법무부는 이를 공개하고 공안(관련)사범에 대한 인권침해를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5. 교화지침에는 1998년 폐지된 사상전향제나 2003년 폐지된 준법서약제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2011년 12월에는 서울구치소 교도관이 이른바 ‘왕재산 사건’ 구속자 5명에게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972년 사형당한 김질락 씨의 옥중 전향 수기 <어느 지식인의 죽음>을 나눠줬다가 구시대적 전향 공작이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공개된 교정 관련 법령을 모두 살펴보아도 공안(관련)사범에 대한 특별 규정을 둔 다른 법령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형집행법 제5조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형집행법은 수형자의 개별적 특성에 알맞은 개별처우계획을 수립·시행(제56조)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공안(관련)사범의 교화에 관한 규정을 하위 법령에 두도록 위임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수용자의 교화 관련 규정인 ‘수용자 교육교화 운영지침’은 이미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법무부가 교화지침을 비공개한 이유는 지침에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내용이 법적 근거도 없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6. 그 외에도 교화지침에는 △작업·운동 등 공동처우 제한에 관한 사항 △교화전담 교도관의 지정 및 감시 역할 △불식(단식) 중단 강요 △교정시설 인근 집회·시위 대처 등이 규정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편 법무부 사회복귀과가 2009년 6월 대구교도소 등 6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도점검에서 공안(관련)사범 수용 및 교화활동 실태와 함께 특수활동비 집행내역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던 점을 보면, 교화전담직원에 대한 특수활동비 지급의 근거가 공안(관련)사범의 동향 정보 수집 명목으로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7. 대법원은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4호의 ‘형의 집행, 교정(矯正)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정보’의 의미를 “당해 정보가 공개될 경우 재소자들의 관리 및 질서유지, 수용시설의 안전, 재소자들에 대한 적정한 처우 및 교정·교화에 관한 직무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수행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장애를 줄 고도의 개연성이 있고, 그 정도가 현저한 경우를 의미한다”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4.12.9. 선고 2003두12707 판결). 이에 따라 교화지침과 비슷한 명칭의 법무부 예규인 ‘공안(관련)사범 수용관리 지침’(예규보일 제593호)에 대해서는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바 있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소송에서 서울고법 제4행정부(재판장 정장오)는 “평소 또는 유사시 교도직원들이나 교도기관이 준수하거나 시행하여야 할 것으로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도 원칙적인 사항들을 담고 있어 재소자들이 교도직원들의 행위를 예측하여 이에 대비하는 등의 방법으로…형의 집행, 교정업무 수행을 현저하게 곤란하게…할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하”다는 원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한 바 있습니다(서울고법 2008. 4. 1. 선고 2007누32756 판결). 이 판결은 법무부가 상고하지 않아 확정되었습니다. 원심 판결문에 따르면 위 지침의 주요 내용은 “공안사범의 상호접촉 차단, 집회시위의 대처, 정보수집분석, 규율위반조치, 전담반 운영 등 공안사범의 형의 집행과 교정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입니다.

8. 법무부가 법령의 일부인 훈령마저 공개하지 않음에 따라 공안(관련)사범은 자신에게 적용되는 처우의 기준과 내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법무부는 국정의 투명성 제고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은 물론 공안(관련)사범이 자신의 수용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재판청구권 행사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교화지침을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9.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10.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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