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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사형수 검정고시 응시 불허 헌법소원 제기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8-09-13 14:11:57  |   icon 조회: 700
[보도자료]
사형수 검정고시 응시 불허 헌법소원 제기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검정고시에 응시하려던 사형확정자(사형수)가 교도소 자체 평가시험 성적이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응시를 불허당하자 9월 4일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3.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 A씨는 중학교 졸업 학력자로 B교도소 수용 중 지난 8월 시행된 고졸 검정고시 응시 신청을 했습니다. 수용자가 검정고시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미리 교육대상자(학사고시반)로 선발되거나 독학으로 응시해야 하는데, A씨는 독학으로 응시했습니다. 형집행법 시행규칙 제107조 제2항은 “작업·직업훈련 수형자 등도 독학으로 검정고시·학사고시 등에 응시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자체 평가시험 성적과 수형생활태도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4. 소측은 위 규정에 따라 자체 평가시험 성적이 평균 60점 이상인 수용자에게만 검정고시 응시를 허가해왔습니다. 그러나 6월 7일 치러진 자체 평가시험에서 평균 60점 이상인 사람이 없자 기준을 평균 50점 이상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A씨는 평균 40점을 받아 검정고시 응시를 불허 당했습니다.

5.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권은 국민 각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신장하고 인격을 발현하는 토대가 됩니다. 국가는 국민이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교육시설 및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지며, 국민은 국가로부터 차별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집니다. 검정고시는 정규학교 등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학력을 인정해주는 최소한의 제도입니다. 교육권은 국가가 검정고시 응시를 불허하거나 응시 자격에 부당한 차별을 두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는 구금시설 수용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6. 구금시설 수용자에 대한 기본권 제한은 도주와 증거인멸의 방지라는 구금의 목적과 관련된 신체의 자유 및 거주이전의 자유 등으로 한정되어야 하며 그 역시 필요한 범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용자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가 일반인의 그것보다 낮고 이 점이 범죄율 또는 재범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수용자에 대한 교육과 검정고시 등을 통한 학력 취득 보장은 행형의 주목적인 교정교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A씨에 대한 검정고시 응시 불허는 기본권 제한의 목적이 정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방법도 부적절합니다.

7. 교정시설의 수용 질서 유지를 위해 응시자의 숫자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B교도소의 자체 평가시험은 기본권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최소 침해 원칙을 위반했습니다. 검정고시의 합격선은 평균 60점 이상으로 B교도소 자체 평가시험의 합격선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검정고시의 경우 평균 60점에 미달하여 불합격하더라도 60점 이상인 개별 과목의 경우 희망에 따라 다음 시험에서 응시를 면제받을 수 있는 과목합격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자체 평가시험이 검정고시를 2개월이나 앞두고 시행됨에 따라, 남은 2개월 동안 공부를 통해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는 수용자들은 부당하게 응시 기회마저 박탈당한 셈입니다. 자체 평가시험의 형식과 내용도 검정고시의 그것과 다릅니다. 검정고시 과목은 필수 6개(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한국사)와 선택 1개(도덕, 기술·가정, 체육, 음악, 미술 중 선택)이며 각 과목의 문항은 25개(수학은 20개)이고, 시험시간은 과목에 따라 40분 또는 30분입니다. 그러나 자체 평가시험 과목은 4개(국어, 영어, 수학, 과학)이고 각 과목의 문항은 20개이며 시험시간은 30분에 불과합니다. 자체 평가시험의 난이도가 검정고시의 난이도와 비슷하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B교도소가 자체 평가시험으로 검정고시 응시자를 선별하더라도 그 과목과 시험일을 조정하여 A씨의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8. 자체 평가시험이 추구하는 공익은 응시자가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하여 수용질서를 유지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검정고시 시험장소가 외부가 아니고 B교도소 내부여서 도주의 우려나 이에 따른 호송의 부담이 없습니다. <2017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수용자 618명이 검정고시에 응시하여 533명이 합격(합격률 86.2%)하여 응시자가 전체 수용자의 1% 남짓에 불과합니다. 과거에 비해 전체 국민의 학력이 높아짐에 따라 교정시설 수용자의 학력도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자체 평가시험을 치르지 않더라도 검정고시 응시를 원하는 수용자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은 적습니다. 설사 응시자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하더라도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검정고시 응시 금지가 아니라 응시를 장려하기 위한 시험장소 등의 확대입니다. 이처럼 자체 평가시험은 추구하는 수용질서 유지라는 공익에 비해 검정고시 응시 불허에 따른 교육권 등의 침해가 더 크다는 점에서 법익균형성의 원칙에도 위배됩니다.

9.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이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10.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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