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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국가보안법 장기 내사 사건 국가인권위 권고에 대한 논평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21-07-05 11:02:50  |   icon 조회: 659
국가보안법 장기 내사 사건
국가인권위 권고에 대한 논평

1. 5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보안법 장기 내사 진정 사건에 대한 결정에서 경찰청장에게 △내사 담당 경찰관에 대하여 경고 조치하고 △내사 사건이 부당하게 장기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적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사의 착수·진행·연장·종결 등에 대하여 정기적인 점검을 실시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 위원회는 이번 권고가 그동안 경찰이 국가보안법을 빌미로 내사를 빙자하여 시민들을 장기간 사찰해 온 행태를 개선할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며 환영한다.

2. 피해자 고 아무개 씨는 2019년 6월 경찰청 소속 이 아무개 경위로부터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집행사실통지’ △‘통신제한조치허가서 집행사실통지’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 요청 집행사실통지’라는 제목의 문서를 우편으로 송달받았다. 피해자는 문서에 기재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과 관련하여”라는 문구와 첫 문서의 상단에 기재된 “귀하에 대한 내사가 종결되었음을 통보 합니다”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자신이 그동안 경찰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를 받아왔고 그 내사가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9년 10월 우리 위원회는 피해자의 요청을 받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사건 진정을 제기한 바 있다.

3.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찰은 2015년 3월 피해자의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 고무 등) 위반 혐의에 대해 내사에 착수해서 2019년 6월 내사를 종결했다. 경찰은 내사 착수 후 2018년 5월까지 △네이버·다음·네이트 이메일, 카카오톡, 밴드에 대한 압수 4회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네이버 로그기록 등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 7회 △네이버 이메일 통신제한조치(감청) 1회 등을 집행했고, 2018년 5월부터 2019년 6월 내사가 종결될 때까지는 내사한 기록이 없었다.

4. 국가인권위는 “내사의 경우 통상의 수사절차에 비해 밀행주의가 강하여 피내사자에 대한 인권침해의 개연성이 크고 광범위하며, 특히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조치가 있는 경우 피내사자에 대한 통신의 자유나 사생활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으므로 수사기관 스스로 내사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 결정에 따르면, 경찰은 2015년 3월 27일 내사착수보고 이후 5월 17일 압수수색검증영장 등을 신청할 무렵에서야 이 사건을 내사사건으로 등재했고, 사건을 등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약 50일간 피해자의 출생 및 가족 상황, 휴대전화 가입사항 등을 확인했다. 내사착수지휘를 받은 내사사건은 지체 없이 기록에 등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경찰 내사처리규칙’(아래 ‘내사규칙’)을 위반한 것이다.

5. 또한 경찰은 내사착수로부터 종결까지 4년 이상 내사를 계속하면서도 내사의 계속 필요성에 대한 보고를 하지 않았다. 이는 내사사건이 장기간 방치되지 않도록 내사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별도의 내사상황보고서를 작성하여 경찰서장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는 내사규칙을 위반한 것이다. 게다가 경찰은 2018년 5월 이후에는 피해자에 대한 내사 활동 없이 약 13개월 동안 사건을 방치하다가 2019년 6월에서야 내사를 종결했다. 국가인권위는 “내사 착수에서부터 내사 종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내사”라고 지적했다.

6. 경찰이 피해자에게 내사가 종결된 사실만을 알린 점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밀행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내사라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내사 대상자 등의 기본권 보호를 위하여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 내사의 착수 및 종결 일시, 구체적인 혐의 내용, 처분의 종류, 처분 이유 등에 대하여 피내사자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 요구된다”며 “헌법 제12조에서 정하고 있는 방어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다만, 국가인권위는 2021년 1월 제정된 ‘경찰수사규칙’이 내사사건을 입건하지 않고 종결하는 경우 △접수일시 △죄명 △결정종류 △주요내용 등을 피혐의자에게 서면 등으로 통지하도록 규정함에 따라 제도 개선에 관한 권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

7. 피해자는 이번 국가인권위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러 통신수사를 통해 경찰이 입수한 본인 정보는 무엇인지, 이 정보가 내사 종결과 함께 폐기되었는지, 경찰이 이를 폐기하지 않고 자신의 사생활을 위법·부당하게 감시하는 데 계속 활용하고 있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다. 만약 경찰이 이 사건 내사를 장시간 지속했으나 수사로 전환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종결한 것이라면, 또는 이 사건 내사가 적법절차 원칙 등을 위반했다는 국가인권위 권고 취지에 동의한다면, 이 사건 내사기록을 피해자에게 공개하고 또 다른 내사나 수사에 활용할 수 없도록 스스로 폐기해야 할 것이다.

8. 우리 위원회는 이 사건 내사가 피해자 본인도 모르게 장기간 진행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국가보안법에 있음을 강조한다. 국가보안법은 형법의 대원칙에서 벗어나 사람의 행위가 아닌 사상을 처벌한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이적표현물 취득죄·소지죄의 목적은 그러한 표현물을 취득하거나 소지함으로 인해 ‘불온한 사상을 갖게 될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른바 ‘심정형법’으로 불리는 국가보안법의 이런 조문은 어떤 사람의 행위의 배경, 즉 사상이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추단하여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국가권력에게 주는 것으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반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다른 범죄에 비해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범죄를 근거로 하면 내사를 개시할 수 있는 단서의 범위를 거의 무제한으로 확장할 수 있다.

9. 국가인권위 결정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자의 페이스북 등에 대한민국을 미국 식민지로 선전하는 이적문건이 게재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내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내사를 장기화하지 않고 최초 시점에서 시급히 수사로 전환하는 것이 이적표현물의 계속 유포 등을 방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4년 넘게 내사를 지속하다가 결국 수사로 전환하지 않고 내사를 종결했다. 경찰의 내사가 합당한 단서에 따른 범죄수사가 아니라 피해자의 사생활 감시라는 위법·부당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사찰이라는 의혹을 주기에 충분하다. 국가인권위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 고무 등)의 경우 수사기관의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범죄 인지 여부가 좌우되어, 통일·군사·안보문제에 관한 개인적인 견해를 자유롭게 표명하거나 정부의 대북정책 및 통일정책을 정당하게 비판하는 경우까지도 북한의 선전내용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내사의 대상이 되는 등 수사기관에 의한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내사가 수사로 전환되지 않고 장기화되다가 결국 종결된 사실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국가권력이 내사를 핑계로 시민을 감시하는 일이 그치지 않을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10.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올해로 73년을 맞았다. 이미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보안법은 그 제정과정에서부터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형법이 제정된 이후에 이루어진 수차례의 개정도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절차적 정당성을 결한 것이어서 법률로서의 규범력이 부족하며,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해할 소지가 많은 반인권적 법률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라며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2011년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 및 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죄)가 인권과 의사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한국 정부에 폐지를 권고했다.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정부에 대한 제4차 심의 후 채택한 최종견해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 폐지를 권고했다. 2017년에는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실무그룹이 국가보안법을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국내법 폐지’ 항목에 포함시킨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국가보안법 폐지안과 제7조를 폐지하는 개정안이 계류되어 있다. 지난 5월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의 서명자가 10만 명을 넘어 청원안이 국회 법사위에 회부됐다. 국회는 더 늦기 전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2021년 7월 5일

천주교인권위원회
2021-07-05 11: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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