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보도자료]故황인철(세바스티아노) 변호사님 15주기 추모미사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08-01-18 11:51:08  |   icon 조회: 7561
(100-809)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19 천주교인권위원회
전화:777-0641~3 팩스:775-6267 메일:chrc@chollian.net 홈페이지:http://www.cathrights.or.kr문서번호:천인2008-0118-01수 신: 각 언론사 기자발 신: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제 목:故황인철 변호사 15주기 추모미사문 의: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016-706-8105 / 02-777-0641~3

1. 안녕하십니까. 각 언론사 기자님들께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오는 1월 20일(일), 불의와 부정, 억압에 온몸으로 맞선 인권변호사, 故황인철(세바스티아노) 변호사님의 15주기 추모미사가 있습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며 故황인철 변호사님께서 보여주신 신념과 정의로운 실천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3. 신자유주의가 온 나라를 뒤덮고, 경제논리가 모든 가치 위에 있는 요즈음, 故황인철 변호사님을 기억하고, 그 분을 기억하는 분들이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4.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 일시 : 2008년 1월 20일(일)
▶ 장소 : 천주교 수원교구 안성공원 묘원(묘소 41번) 031-672-3701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북가현리 산 49-1
▶ 일정
오전 8시 30분 명동성당 후문(남산 1호 터널방향) 전세버스 출발
오전 10시 30분 천주교 수원교구 안성공원 묘원 도착
오전 11시 故황인철(세바스띠아노)변호사 15주기 추모미사 (함세웅 신부 집전) ▶ 주최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 문의 :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 02-777-0641~3

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 김형태


황인철 변호사 활동 연보

1970(30세) : 작고한 고재호 변호사, 석은만 변호사, 송영규 변호사 등과 덕수합동법률사무소 개설하다.
1974(34세) : 민청학련의 구속자 변론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인권 변론을 시작하다.
1975(35세) : 재 구속된 김지하의 변론을 맡다. 12월, ‘문학과지성사’ 창사에 참여하다.
1976(36세) : 김대중 등이 구속된 3·1구국선언 사건 변론에 참여하다. 동아투위·조선투위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을 변론하다.
1978(38세) : 동일방직 노동사건, 이영희·백낙청 등 지식인 수난 사건의 변론에 적극 참여하다.
1979(39세) :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에서 이돈명·홍성우·조준희 변호사 등과 함께 변론에 참여하다. YH 사건을 변론하다. 김재규를 변론하다.
1980(40세) : 7월,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정보부에 조준희 변호사와 함께 강제 연행되다. 그 자리에서 김대중 사건 변론을 맡지 않기로 강요당하여 각서를 쓰다. 뒤에 합수부측이 나빠진 외국 여론의 무마를 목적으로 황인철 등에게 변론을 부탁하였으나 거절하다.
1981(41세) : 장남 대하가 유아자폐증으로 진단받다. 이 일로 ‘전국자폐아부모회’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다. 전국민주학생연맹 사건 변론에 참여하다.
1982(42세) :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원풍모방 사건, 강원대 성조기 방화사건, 오송회 간첩 사건 등을 변론하다.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다.
1985(45세) :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으로 임명되다. 대우어패럴 사건 등 각종 노동사건, 삼민 특위, 서울 미 문화원 사건 등을 변론하다.
1986(46세) : 건국대 사건을 변론하다. 대우어패럴 사건을 계기로 시국 사건을 변호해오던 30여명의 변호사들이 ‘정법회(政法會)’를 창립하다.
1987(47세) :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단을 구성하게 하여 함께 참여하고, 권양을 변론하다.박종철군 유족의 부탁으로 국가를 상대로 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다. 박종철 추모 사업회 대표로 위촉되다.
1988(48세) : 5월 28일, 정법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창립하다. 한겨레신문사 창사에 참여하여, 초대 감사가 되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로 위촉되다.
1989(49세) :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창설하여 공동대표가 되다. 8월, 임수경·문규현 신부 방북 사건을 변론하다.
1990(50세) :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대표간사가 되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직장암 진단을 받고 첫 수술을 받다.
1991(51세) : 보안사령부 소속 방위병을 근무하던 중 군무 이탈하여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사건을 변론하다. 직장암 재발로 다시 입원하여 재수술을 받다.
1992(52세) : 자폐아의 교육과 복지를 목적으로 한 사회복지법인 ‘계명복지회’를 설립하여 회장이 되다.
1993(53세) : 1월 20일 오전 11시 37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영면하여 경기도 안성 천주교회 묘지에 안장되다. 그가 선종을 한 1월 20일은 그의 주보성인인 세바스티아노의 순교일, 즉 승천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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