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 기자회견문 - 천주교 조작간첩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발족에 즈음하여
icon 천주교인권위원회
icon 2008-09-29 13:53:13  |   icon 조회: 7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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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전세계에서 증오와 대결의 냉정 시대가 마감되고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민족 분단의 한반도에도 닥치고 있습니다. 이제 남북한은 북미 핵 협상 타결 등 새롭게 변화된 조건에 부응해 통일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혈육을 만날 날만을 기다려 온 이산 가족들은 다시금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하지만 분단의 희생양은 이산 가족만이 아닙니다. 조작 간첩은 분단 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희생양입니다.
역대 군사 독재 정권들은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국민들에게 반공, 반북 의식을 고취시켜 왔습니다. 우리는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거세질 때마다 독재 정권들이 간첩 사건을 내세워 국민의 관심을 돌리고 저항 의식을 잠재워 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권의 필요에 의해 조작된 간첩들은 문민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억울한 옥살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군사 독재 정권 아래서 간첩으로 조작 당해 아직까지 감옥에 남아있는 사람은 무려 수십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단지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북한에 살고 있다거나 조총련계의 제일 교포 친지를 만났다는 이유로 또는 납북되었다가 송환된 어부라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사형 또는 무기 징역등의 중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왜 옥살이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는 채 벌써 십 수년씩 기약 없는 옥살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 1993년 8월부터 약 20건의 일본 관련 간첩 사건을 일본 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와 공동으로 조사 활동을 벌였고, 이장형, 강희철, 손유형, 신귀영씨 일가 사건 등 4가지 사건에 대해서는 3차례에 걸친 일본 현지 조사 활동을 마쳤습니다. 조사 활동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이 사건들이 조작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군사 정권이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발표했던 간첩 사건의 상당 부분이 조작 간첩 사건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조작 사건이 그렇듯이, 이 사건의 피해자들 또한 예외없이 영장도 없는 상태로 불법 연행되어 두세 달씩 밀실에 감금된 채 수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가족들은 물론 변호인조차 면회 할 수 없었고, 온갖 유형의 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인권의 신성 불가침성을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인권이란 없다는 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따라서 불의한 국가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된 인권이 있다면, 교회가 그 인권을 보호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교회의 뜻을 모아 ‘천주교 조작간첩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책위원회’는 앞으로 천주교인은 물론 뜻 있는 분들의 힘들 모아 지난 불행했던 시대 인권을 천저하게 유린당한 조작간첩사건 관련자의 조속한 석방과 명예회복을 위해 힘쓸 것입니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게 위한 활동은 물론 재심 청구, 특례법 제정 운동 등 가능한 모든 법률적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관련 기관들을 방문, 이들의 억울한 누명을 호소하고, 석방 서명 운동을 전개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구명 운동을 벌여나갈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올바른 통일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 냉전 논리를 바탕으로 빚어진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서는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작 간첩 사건 역시 바로 잡혀야 할 과거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제 조작간첩사건 관련자들은 석방되어 그들의 가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국민 모두가 분단 시대 독재 정권의 희생양인 조작 간첩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보여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조작간첩 사건 관련자들의 구명을 위한 우리의 활동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앞당기는데 작으나마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1994년 11월 1일

천주교 조작간첩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2008-09-29 13:53:13
222.111.210.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