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부산고등법원의 조작간첩 신귀영씨일가사건 재심신청 기각결정을 규탄한다.
icon 천주교인권위원회
icon 2008-09-29 14:20:06  |   icon 조회: 7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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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법원이 2001. 8. 31. 99재고합4결정으로 재심개실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부산고등법원은 2002. 7. 19. 검사의 즉시항고를 수용하여 재심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재심신청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본건 재심청구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소정의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하지 않고 원심이 인정한 형사소송법 제422호, 제420조 제2호 소정의 "원판결의 증거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재심이란 유죄의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을 경우 당해 판결을 시정하여 무죄를 얻어내고자 하는 것으로서, 법적 안정성을 희생해서라도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특히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에서는 당해 확정판결에 의해 피고인이 인신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형벌을 받게 되므로 재심사유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재심조항을 사문화 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재심대상판결이 내려진 시기가 군사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해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이 발생했던 때이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간첩이라는 등의 이유로 억압하던 시대라면, 또한 유죄의 증거들이 고문, 위증 등에 의해 조작된 허위의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면 재심을 통해 잘못된 판결을 시정해야 할 당위성은 더욱 커진다.

이번에 내려진 재심청구기각결정은 이러한 요구를 도외시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는 우선 당시 유죄의 증거로 쓰였던 진술이 허위임을 자인하는 진술이 제시된 것에 대해 그것이 다른 증거들에 비해 증명력이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그 증명력의 '객관적' 우위성의 판단이 지극히 '주관적'이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형사사건의 재심사유로서 새로운 증거의 증명력을 그 정도까지 강하게 요구해서는 안되며 유죄의 증거가 갖는 증명력이 오히려 떨어진다고 보이는 객관적 정황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

또한 재판부는 유죄의 증거로 쓰였던 자료들이 허위였음을 밝힐 수 있는 객관적 사실 조회 자료들에 대해 이미 당시에 '어렵지 않게'제출될 수 있었던 것들이라는 이유로 배척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정권이 몇번 바뀌고 변호인과 인권단체가 총력을 기울여 수집하고서야 밝혀진 그 사실들을 당시의 피고인측에서 제출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가'?라는 논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당시에 존재하는 것이기만 하면 제출할 수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적 가능성을 외면한 형식논리의 극단이며 재심제도를 형해화시키는 처사이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들의 자백이 고문 등에 의해 임의성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재심청구사유에 대해 고문이 있었다는 점에 대한 확정판결이나 법 제422조 소정의 사유가 없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자백이 고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에서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재판부의 이런 논지는 재심의 존재의의를 부정하고 진범이 잡히지 않는 한 재심자체가 불가하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재심에 대한 회의를 부추길 뿐이다.

사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온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조작간첩사건에 대해 재심이 개시될 가능성 자체를 봉쇄해버린 이번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7월 31일

천 주 교 인 권 위 원 회
위 원 장 김 형 태
2008-09-29 1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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