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두 번째 무죄선고와 검찰의 재상고를 지켜보며
icon 천주교인권위원회
icon 2008-09-29 15:24:00  |   icon 조회: 7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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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무죄선고와 검찰의 재상고를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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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 지 어언 6년.

그 동안 재판을 지켜보면서 검찰 측에서 주장하는 논리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경마장에서 달리는 말이 옆을 보지 못하도록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앞만 보고 달리도록 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수많은 재판을 통해 검찰 측 논리의 불합리와 모순을 지적했건만,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는 모습은 이 시대 검찰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하여 참담하다 못해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일반 민초들의 눈에도 빤히 보이는 것을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는 저의는 무엇일까? 한 개인의 욕심만은 아닐진대 정말이지 검찰 수뇌부의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일부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기자들의 자질이 의심스럽고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듯 추측하고 흥미위주의 기사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재판부의 판결문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정확한 사실전달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무죄보다는 유죄가 더 흥미롭다고 생각하며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복선을 깔아놓은 부정확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이 사건이 OJ 심슨 사건과 유사하다느니, 변호사를 잘 만나서 무죄를 받을 수 있었다느니, 핑퐁재판이니, 고법이 판결했다 하여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는 등 밑도 끝도 없는 불분명한 논조를 일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론의 그릇된 횡포로 말미암아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 근거 없는 불신에 휩싸이게 될까 두렵습니다. 국민들이 그에게 내리는 최종 결심에 그릇된 영향을 주게될까 두렵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런 억울함이 반복될까 두렵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역시 처음 이도행 씨를 알게되었을 때 '이 사람이 범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이 사람이 범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하고 의심했었습니다. 그러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이도행 씨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러한 나의 생각은 점점 바뀌어 갔고 귀가 얇아 언론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한 사람을 판단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한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은 한계를 지닌 부족한 존재이기에 그 누구를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대화하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이도행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굴이 많이 밝아지고 평화로운 것 같다'고 했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함께 해 주는 많은 분들 덕분입니다. 하지만 겉은 그럴지 몰라도 속은 시커멓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시린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마도 죽은 아내와 아이가 스쳐지나갔나 봅니다.

이도행 씨는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범인으로 몰려 6년 동안 재판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사형, 무죄, 파기환송, 두 번째 무죄, 그리고 검찰의 재상고, 또 얼마의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까.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이러한 사태를 보며 "아! 이 사람은 재수가 없는, 독특한 팔자의 사람이구나."라고 흘려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와 같이 억울한 일은 우리 나라에서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제도적 모순들 때문에 말입니다.


여러분께 간곡하게 말씀드립니다.

선입견을 버리고서 먼저 사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잠시 시간을 내셔서 고법 무죄 판결문을 읽어봐 주십시오. 조금 더 시간을 내셔서 저희 홈페이지(http://org.catholic.or.kr/chrc)를 방문해 주시고, 그래서 일부 무심한 언론에서 가볍게 말하는 "의심의 여지가 남아 있는" 구석이 있나, 이번 고법 판결에 부당한 구석이 있나 살펴봐 주십시오. "나는 이런 일 과는 상관이 없다!"고 한 발 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 아무렇지도 않은 사건의 하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우리의 관심과 노력 없이 조금도 바뀌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온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요, 온 세상의 사랑도 결국 한 사람을 통해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일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서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객관적인 눈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건전한 시민정신이 필요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이 일을 지켜본 저희들도 평범한 소시민들이었습니다.

저희의 모임은 이제 이도행 한 사람 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들은 '이도행 사건'을 옆에서 지켜보며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제도와 관행 속에 지나치고 묻혀있던 의문들과 억울한 무수한 생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희생이 있어서는 안되겠기에 다시 눈을 뜨고 다가오는 문제들을 직시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다가가서 호소할 곳이 있는 세상, 그리하여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부디 함께 해 주시고, 지켜보아 주십시오.

2001년 4월

이도행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 김영욱(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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