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1999년 희년맞이 평신도 선언문
icon 천주교인권위원회
icon 2008-09-29 16:05:17  |   icon 조회: 8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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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희년맞이 평신도 선언문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
이제 싹이 돋아나 그것이 보이지 않느냐”(이사야 43;18-19)

새로운 천년기를 맞는 길목에서 고난으로 얼룩진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노라면, 그분은 민족의 피눈물과 한숨에도 함께 하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쉼 없이 나아가는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해방하시는 그분의 역사(役事)하심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천 년 전 예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는”(루가 4;18)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선포하셨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낮아지고 함께 하심으로써 가난한 자들의 벗이 되셨고, 고통받는 이들의 치유자가 되셨으며,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자가 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을 통해 폭력과 거짓과 억압의 현실에서 참된 평화를 이루시고 참 생명의 길이 되셨습니다.
한국교회는 우리 선조들에 의해 자발적인 신앙공동체로 세워졌고, 200여 년의 신앙전통 속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세계교회의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산업발전과 더불어 본격화된 양적 팽창주의와 물량주의에 교회가 편승함으로써 개인 신심만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분리된 신앙과 삶, 공동체성의 상실 등 부정적 측면들이 교회 안에도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이 때에 나와 공동체를 포함한 교회가 지난 시기동안 무슨 역할을 해 왔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희년맞이 평신도선언을 하고자 하는 것은 21세기, 삼천년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교회인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함입니다. 또한 이 신앙고백을 통해 하느님과 역사 앞에 당당하게 나서고 교회의 끊임없는 쇄신을 통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자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고백
1. 하느님 나라는 사랑과 자비에 근거한 하느님의 정의가 넘쳐흐르는 곳이며, 창조 때 주신 축복이 온전히 실현되고 온 우주만물의 상생과 창조가 이루어지는 현장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곧 구원이며 평화이며 기쁜 소식입니다. 이 기쁜 소식은 민족 안에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이룰 희망과 도전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공동체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땅 한반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우리들은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없이(이사야 65;23)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땅에서도 이루어지길(마태오 6;10) 갈망합니다.
2. 하느님 나라가 이땅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세기라 넘도록 갈라진 민족의 아픔을 서로 치유하며 하나된 새 민족을 이루어 평화가 이룩되는(에페소 2;16) 새 하늘 새 땅이 서야 합니다. 또한 인권의 완전보장과 참된 민주주의 구현 속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새 민족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른 교회쇄신의 과제
3. 교회는 세상과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써 섬김의 귀감이 되신 것처럼 교회인 우리도 세상과 민을 섬기는 공동체가 되고자 합니다. 또한 하느님 백성으로서 서로가 평등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어 성직자 중심의 차별과 관습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4. 새로운 시대의 사목은 평신도 수도자 사제가 함께 하는 공동사목이 되어야 합니다. 사목은 이웃에 대한 개방과 만남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만큼 사제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웃에 대한 봉사직이며 제자직입니다. 공동사목을 위해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서로 협력함으로써 이 시대의 새로운 교회상을 정립하고자 합니다.
5. 교회 내 평신도들의 자각과 참여, 연대를 일굴 애정어린 비판과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교회 내 여러 매체가 있지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비판하는 언론은 없는 현실입니다. 이에 교회의 제 문제에 대한 다양하고도 투명한 논의를 통해 복음적 시각으로 시대의 징표를 읽고 평신도들의 참여와 연대를 도모할 언론을 일구고자 합니다.

인도적 삶의 실현과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과제
6. 우리는 인권을 억압하는 모든 불평등한 법률이나 규정이 인권을 유린하지 않도록 감시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또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 등 악법의 폐지와 이 법으로 인해 고통 당해온 이들의 권리회복, 양심수의 석방 등 양심과 자유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7. 새로운 통일시대를 맞아 분파주의, 지역주의, 학연주의 등 나라와 민족을 분열하는 낡은 요소들을 청산하고 모든 사회, 경제, 정치문제 등에 대한 민의 참여와 연대를 정착시켜 남북의 대결의식과 지역주의와 정치적 냉소주의에서 벗어나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창조 질서 보존과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과제
8. 우리는 온갖 만물의 생명터인 자연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앞으로 모든 생명체에 관심을 갖고 존중함으로써 주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창조 질서를 보존하는데 앞장설 것을 다짐합니다.
9. 우리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경제정의를 이루는 것이 희년 정신임을 믿습니다. 이 희년 정신을 따라 가난한 이웃에게 우리의 영적, 물질적 자원을 함께 나눔으로써 더불어 사는 가치를 증거하는 교회의 일꾼이 되고자 합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여자와 남자가 창조되었음을 고백하며, 삶과 신앙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가부장적 구조와 성차별의 문화를 청산하고, 동등한 제자직을 부여받은 여성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동선을 향해 열려지며, 특히 타종교의 전통과 문화도 함께 존중되는 열린 교회를 지향합니다.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하느님의 선물로 존중하며 개방과 대화를 통해 보다 성숙해 가는 교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현실적인 제약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이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임을 믿으며, 새 천년기를 맞아 고백하는 우리의 선언을 실현하는데 교회인 우리가 먼저 앞장서고자 합니다.


1999년 10월 31일
희년맞이 한마당 참가자 일동

이 선언문은 지난 10월 31일 서강대학교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주최로 진행되었던 ‘희년맞이 한마당’ 행사를 마치면서 모든 참가자가 함께 결의한 것입니다. 대희년을 맞으면서 평신도들이 새 천년에 함께 이루어내고자 하는 바램들을 담아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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