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성명서] 형법 업무방해죄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을 규탄한다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0-04-30 19:29:48  |   icon 조회: 12891
[보도자료]

[성명서]

형법 업무방해죄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을 규탄한다

□ 수 신 : 각 언론사
□ 발 신 : 인권운동사랑방, (사)천주교인권위원회
□ 제 목 : [성명서] 형법 업무방해죄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을 규탄한다
□ 발신일 : 2010년 4월 30일(금)
□ 문 의 :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02-365-5363)
강성준((사)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017-344-5808)


1. 인권운동사랑방과 (사)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7월 23일 형법상 업무방해죄(제314조 제1항)를 쟁의행위에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등의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바 있습니다.

2. 청구인(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은 2007년 7월 27일 홈에버 월드컵몰점 앞에서 이랜드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하여 매장점거를 시도함으로써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약식기소되어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했습니다. 청구인은 1심(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 판사 김선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했고, 항소심 계속 중인 2009년 6월 9일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위헌이라는 취지로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6월 11일 재판부(서울서부지방법원 제1형사부, 재판장 김정학)가 기각함에 따라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이 사건은 청구인의 상고로 대법원 제2부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3. 어제(29일)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규탄하며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 성명서


[성명서]

형법 업무방해죄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을 규탄한다


어제(29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의 업무방해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자본의 영업의 자유를 노동기본권보다 우위에 둔 것으로,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를 자임하는 헌재가 오히려 헌법 정신을 위반한 것이다.

쟁의행위는 노동조합법에 따라 민사상, 형사상 책임을 면제받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따르면, 쟁의행위는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구성하되 노동조합법이 정하고 있는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이라는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관문을 통과할 때만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자본은 이런 좁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대다수 쟁의행위에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참가자들을 형사처벌함은 물론 민사책임까지 지우고 있다. 여기에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것이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법의 업무방해죄이다. 노동조합법 전체를 통털어도 가장 무거운 형벌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므로 업무방해죄를 활용하면 손쉽게 무거운 형벌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판례에 대해 헌재는 “헌법상 기본권의 보호영역을 하위 법률을 통해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점잖게 지적하기는 했다. 하지만 “헌법에서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취지에 적합한 쟁의행위만이 면책된다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며 “헌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는 행위…에 대하여…(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는 아무리 평화적인 쟁의행위라 하더라도 정권과 자본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손쉽게 ‘불법 파업’으로 규정할 수 있는 법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의 계기가 된 이랜드 투쟁도 교섭 요구와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 찬반투표와 파업돌입 선언까지 다 거친 합법 파업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거듭 거절하며 수백명을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해고했다. 게다가 사측은 용역경비를 고용해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폭행했고, 파업 중에도 영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런 막다른 골목에서 노동자들이 선택한 매장 점거는 생산의 중단이라는 파업권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정당한 쟁의행위였다. 그럼에도 법원은 사측이 낸 가처분을 받아들여 이를 불법으로 만들었고, 심지어는 매장 주변에서 현수막이나 피켓 게시, 유인물을 배포하는 행위마저 금지했다. 그리고 이를 한 번이라도 위반하면 노동자의 월급보다 많은 돈을 회사에 물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처럼 법이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을 들면서 노동자의 마지막 수단인 파업마저 범죄가 되는 현실이 헌재가 보기에는 “헌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는 말인가?

헌법이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취지는, 쟁의행위가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한다는 점을 원칙적으로 용인하면서 일단 정당하고 적법하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권력 관계가 비대칭적인 현실에서 대화나 협상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노동자들이 협상의 상대방이 되려면 자본의 업무를 방해하여 재산상의 손실을 가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업무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하위법률인 형법이 쟁의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정당하다고 보는 것은 집단적인 노무 거절 자체를 범죄로 보던 구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는 사고이다. 단체행동권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규정한 지금 시대에는 용인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의 잣대로 형법을 해석하지 않고 역으로 하위 규범인 형법의 시각에서 헌법상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애초 업무방해죄는 일본 형법에서 들여온 것으로 한국과 일본 외에는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처음부터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제정된 일종의 치안입법으로서 국가의 자의적인 탄압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이제는 일본에서도 쟁의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 이 법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인권기구는 노동쟁의를 비범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2002년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채택한 ‘최종견해’에서 한국정부에 대해 “파업을 관장하는 법률이 투명하지 않고 파업의 합법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관련기관에 과도한 재량이 부여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 이 점에 있어서, 파업행위를 범죄시하는 정부의 접근방식은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위원회는 판단한다”라면서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형사소추를 중지할 것을 한국정부에 촉구”한 것이다.

헌법이 파업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것은 사측의 재산권보다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파업은 인사권과 경영권을 가진 사측에 맞서 노동자들이 노동을 중단함으로써 사측에 재산상의 손해를 입히는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어떠하든 기본권 행사를 범죄로 여기는 시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2010년 4월 30일

인권운동사랑방
(사)천주교인권위원회
2010-04-30 19: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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